배용준 씨를 파는 것 같아 좀 찔립니다만, 좋았다고요. 반가웠다고요
2018년 여름의 기록입니다.
(단지 앞 벚꽃 만개한 사진, 올리고 싶은 사람 마음 맞쥬? 이뻐서 올려유)
1
턱걸이 200개
를 한다. 한 시간 안에 끝내는 게 목표인데, 한 시간 삼십 분. 어째 점점 느려진다.
팔을 더 펴고 해 봐욧.
경기도 광주 청석공원 다섯 시 반. 한 아주머니는 평행봉에서 다리를 내리찍는다. 바닥에 작은 생수병으로 한 병, 물을 우선 뿌린다. 두 손으로 평행봉을 잡는다. 다리를 엉덩이 높이로 쳐든다. 바닥을 찍는다. 퍽퍽퍽. 꽤 오래, 퍽퍽퍽. 아주머니가 사라진 후에 두 아주머니가 평행봉 양쪽 끝을 잡고 퍽퍽퍽. 아주머니들 사이에서 퍽퍽퍽이 유행인가 봐. 두 아주머니는 몇 번 퍽퍽퍽, 잡담. 영혼을 안 담는다. 2인조 아주머니는 그래서, 가끔 출동한다. 큰 개 두 마리를 데리고 오는 남자가 있다. 청석공원의 왕. 모두 그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한다. 다 귀찮아. 두 마리 개가 풀밭을 껑충거린다. 왕은 개만 보고 싶다. 하찮은 사람동물 접근금지. 50대 후반쯤? 마라톤 완주는 몇 번 해봤겠고, 철인 삼종 경기를 도전 중인 체형이다. 키는 작고, 다부지다. 늘 복장이 화려하다. 셔츠와 반바지가 여러 벌. 두건도 꼭 한다. 그는 굳이 내 철봉을 쓴다. 상중하 높이의 철봉, 두 세트. 즉 여섯 개의 철봉이 있다. 옆 철봉에 같은 높이가 있다. 누가 쓰는 철봉을 쓰고 싶은 사람? 없지? 없다. 그는 굳이 내 철봉(내 거다) 밑에서 무릎을 구부리고, 엉덩이를 뺀다. 10초 정도 그러고 있다. 엉덩이 좀 때려줘잉. 그건가? 내 발끝이 움찔한다. 턱걸이 몇 개를 한다. 간다.
-팔을 더 펴고 해 봐욧.
며칠 그러더니, 마침내, 오늘, 말을 건다. 사라진다.
나는 팔을 더 펴고 한다. 에이씨, 힘들잖아.
-다리를 쭉 펴고 해요. 구부리지 말고.
이번엔 육십 오세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다. 내 옆에서 턱걸이 몇 개를 하고는, 다리를 펴란다. 그리고 역시 사라진다. 해병대 출신이다. 딱 보면 안다.
두 남자 말대로, 한다. 진짜 힘들다.
수다 2인조 아주머니들처럼 운동하면 안 된다. 고독하게, 헐떡대며, 할 수 있을까? 의심하며 채워나가야 200개를 채운다. 무표정하게 턱걸이만 하는 이유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다가온다. 왜 오는지 안다. 지적해주고 싶어서다. 저러다가 불구가 되는 거 아닐까? 걱정하게 만드는 자세, 나다. 자세가 틀려먹은 자들의 운동은, 아슬아슬하다. 자기 딴엔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는 한 남자를 지적하려고, 결심이 필요했겠지. 지적해 주면, 고맙기는 하다. 자존심 하나도 안 상한다. 하마터면 불구가 될 뻔했다. 개 두 마리는 정말 잘 생겼다. 하나는 시베리안 허스키, 하나는 시바견. 너네들의 고향이 궁금해! 너희들 때문에.
2
드라마를 끝까지 못 본다. 넷플릭스도 요즘엔 시큰둥. 오락 영화는 오락 영화다워야지. 오히려 심각하면 질색. 편하게 보는 편이다. 편하게 봐도 지겹다. 집중이 안 된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차분하게, 끝까지 봤다. 울었다. 펑펑 말고, 훌쩍. 인간의 자존심, 꼭 지켜야 하는 마지막 자존심. 먹는 거나, 돈 앞에서 기꺼이 자존심을 팔았던 내게 특히 아픈 영화다. 또 영국 영화다. 런던에서 1년 가까이 머물렀다. 발음할 때, 떡을, 편도선 쪽에 붙여놓고 발음하는 나라, 영국. 미안해. 너희가 원조지. 영국 말. 그래서 영어. 그래서 좋다는 거야. 발음도, 억양도, 사람도.
겨울 연가로 난리가 났을 때, 나는 배용준을 만났다.
만났다고는 하지만, 나는 촬영장의 반사판 정도였다. 할 수 있는 게 있어야지. Old and new라는 의류. 기억하는 사람? Old and new 화보 촬영장. Old and new 사장은 큰 도베르만을 끌고 왔다. 동원참치와 날달걀을 비벼서 도베르만에게 먹였다. 먹고 싶었다. 솔직히! 배용준과 엄지원. 둘은 어색하게 포즈를 잡았다. 베용준은 촬영이 끝나면 비행기를 타야 한다. LG카드 광고를 찍으러 호주로 날아가야 한다. 드라마 촬영 중에 광고라니. 인간이 소화할 수 없는 스케줄이다. 하루 수면 시간 두 시간. 폐렴 기운까지 있다. 사진작가는 더 좋은 사진이 나올 때까지가 아니라, 비행기 놓치기 전까지만 찍어야 한다. 게다가 SBS 한 밤의 TV 연예 팀이 와서 한 시간을 잡아먹었다. 조영구가 인터뷰를 했는데, 분위기 험악했다. 질문이 이상해요. 다시 해 주세요. 그 와중에 배용준은 질문 지적까지 한다. 왕까칠, 배용준. 이미 압도된다. 그래, 주변 스케치 정도나 해가자. 인터뷰는 무슨.
내가 일했던 잡지 유행통신은 톱스타들의 잡지가 아니다. 톱스타들의 잡지는 지큐, 보그, 엘르 , 바자다. 톱스타는 그런 잡지와 인터뷰한다. 국내 잡지로는 쎄씨나 싱글즈 정도. 그래서 굳이 촬영장에 왔다. 멀리서 대충 찍고, 인터뷰한 듯 써넣으려고. 쎄씨 기자가 이미 와 있었다. 업체에서 모신 단 하나의 매체. 인터뷰는 불가능한 상황. 쎄씨 기자는 짜증을 내며 돌아갔다. 나만 남았다. 끝까지 남았다. 불청객이지만, 남겠다. 근성이라도 있어야지.
-배용준 씨 촬영 잘하시고요. 저는 가볼게요.
-어딜 가세요? 우리 이야기 안 했어요.
그가 내 손을 덥석 잡는다. 덥석
-우리 이야기해요.
나와? 무슨 이야기를? 살인적인 스케줄 속에, 감정이라는 게 남아있을 턱이 없다. 지금도 신기하다. 왜 나를 잡았을까? 이런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Lock, stock and two smoking barrels 보셨나요?
어떤 영화 좋아하세요? 이딴 질문은 싫다. 조금이라도 다르게 접근한다. 그가, 굳는다.
-기자님, 그 영화 보셨군요. 그 영화 진짜 대단하지 않아요?
한때 마돈나의 남편이었던, 가이 리치는, 누구의 남편이 아니라 배용준과 박민우를 미치게 한 Lock, stock and two smoking barrels를 만들었다. 트레인스포팅을 만든 영국은, 어바웃 어 보이, 어바웃 타임을 만들었고, 시리즈 셜록을 만들었다. 확실한 건 Lock, stock and two smoking barrels 때문에 우린 더 알고 싶은 사이가 됐다.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나도 배용준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배용준을 어서 빨리 데려가려는 LG카드 CF 제작팀, 더 있게 하려는 Old and New. 배용준이 나를 붙잡고, 더, 더 이야기하자고 한다. 에이 씨팔, 좆같네. 못 해 먹겠네. 어딘가에서 욕설이 터져 나왔다. 그깟 영화 이야기로, 누군가의 애간장은 썰려 나가는 중이었다.
영국 사람은 지구에서 제일 훌륭한 유머감각을 지녔다. 모든 대화에 피식피식이라도 섞여야 한다. 예술은 상처를 먹고 자란다. 웃음도 상처가 뿌리다. 웃음에 숨은 아픔을 나는 상상한다. 너덜너덜 누더기가 된 자들이, 영화를 만든다. 글을 쓴다. 빌리 엘리엇을, 어톤먼트를, 워킹 타이틀(이건 제작사)을. 먹고살만해지면 나올 수 없는 것들, 시, 참회, 무릎 꿇기, 노래. 그리고 나, 다니엘 블레이크.
런던엘 가야겠다. 청소 못 해서(달걀을 훔쳐서) 나를 쫓아낸 식당을 간다. 나비넥타이를 매고, 팁도 두둑이 준비해서 간다. 런던 해크니 쪽에 사는 영국 친구 리치(공연기획자다)와 이미 짜 놓은 계획이다. 옷장에 나비넥타이와 턱시도도 가득하다. 나는 가서 입고, 리치와 간다. 10년이 다 된 계획이다. 실행에 옮길 때가 됐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열심히 산다는 느낌이 좋아서요. 보세요. 또 이렇게, 새로운 분과 인사를 나누게 되잖아요. 안녕하세요. 저야 안녕하죠. 이렇게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이 많아질수록, 더, 더 안녕해질 겁니다. 고3 때도 이리 열심히 안 살았는데 말이죠. 박민우, 장하다. 셀프 칭찬해주고픈 날이네요.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