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비, 싸이버거, 뉴욕, 나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주절주절 무의식과 의식이 경계에서 쓴 일기

by 박민우

(2018년 8월 지독한 더위의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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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네. 비를 본다. 듣는다, 비로 꽉 찬 하루. 이제 라면만 있으면 천국. 왜 비올 때 라면일까? 살갗에 닿는 냉기, 혀 돌기에 닿는 온기. 두 자극의 대비. 피부의 닭살은 더 솟고, 국물은 더 뜨겁다. 라면 김이 모락모락, 바깥은 비. 라면 덕에, 비를 각성한다. 참겠다. 몸에 안 좋으니까. 정말 먹고 싶을 땐, 먹겠다. 한 젓가락, 한 젓가락. 열심히 맛을 느끼며 내 몸을 파괴하겠다.


라면이 뭐? 파괴?


안다. 라면 한 번 먹는다고 안 죽는 거. 그런데 쿠폰을 막 써버린 느낌이 든다. 진짜 먹고 싶을 때, 못 먹을 것만 같다. 환자여서 못 먹으면 슬플 것 같은 음식. 라면, 떡볶이, 짜장면, 까르보나라, 비빔면, 짬뽕, 골뱅이 소면. 폭신하게 찢어지는 따뜻 크루아상까지.


커피도 매일 마시고, 어머니 이웃의 사위(냉동식품 유통업자)에게 받은 유통기한 임박한 소시지, 생선 가스, 프렌치프라이도 먹는다. 한국에 올 때 다짐했다. 깨끗한 음식만 먹기로. 하루 정도만 무너지면, 다 포기. 될 대로 돼라. 맘스치킨 싸이 버거와 프렌치프라이 정도면, 몸 바쳐야지. 싸이 버거는 버거 아니다. 요리다. 농심 조청 유과와 해태 맛동산은 최근에 끊었다. 오뚜기 진짜 쫄면은 처음엔 맛있더니, 너무 세다. 과하게 새콤, 달콤. 지금 마트에 간다면 팔도 비빔면을 사겠다. 내 청춘과 함께한 비빔면아. 왼손으로 비비고, 오른손으로 비비고를 진짜 쫄면한테도 했어. 용서가 되겠니?


나라도 날씨 이야기 그만하고 싶다. 전지구인의 구태의연한 첫인사, 날씨. 맑으니까 어쩌구, 비 오니까 어쩌구. 지겨워. 거기다 2018년 여름은 놀랍게 괴롭고, 더럽게 더워서 다들 날씨, 날씨 얘기뿐. 불지옥, 역대급, 냉방병, 기록, 열대야, 스타성이 남다른 여름이었다. 불지옥의 한가운데서, 몸을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었지. 샤부샤부와 미디엄 레어가 떠오르는 여름. 기억나? 2018년 뒈질 뻔한 그 여름? 공감의 전율. 큰 추억은, 큰 재산. 2019년에도 이런 식이면 곤란하다. 오냐오냐, 추억 추억하니까 내가 만만하냐? 이 여름 새끼야!


2018년 내 여름은 턱걸이로 기억. 새벽 네 시에 눈이 번쩍. 여전히 30도. 잠도 안 오고, 헤롱헤롱. 자전거를 타고 광주 청석 공권. 반은 눈이 풀린 채 턱걸이 하나, 둘, 셋. 힘든데, 몽롱. 무너지지 말자. 이를 악물고, 198, 199, 200. 분노로 이글이글. 분노의 대상은 날씨. 복수는 불가능. 그러니까 나와 싸우기. 더 열심히, 더 뜨겁게, 그렇게 200개.


이제는 운동하기 좋은 날씨. 200개는 껌. 껌일 수밖에 없지. 찜통 날씨에도 했는데. 하나, 둘, 셋. 어라? 힘들다. 찬 바람에 근육이 뭉쳤나? 하기 싫다. 더울 때는 더워서 하기 싫더니, 서늘하니까 그냥 하기 싫다. 그렇게 바라던 꿈의 온도 25도, 나는 하기 싫다.


완벽한 조건은, 더 좋은 결과로 이어질까? 지중해가 일렁이는 서재에 앉아있으면, 날듯이 글을 써재낄까? 내 안의 노예가, 고통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고통은 슬프게도 활력. 안락은 슬프게도 잠잠. 바라던 안락이 오면, 활력은 없다. 부귀영화와 활력 중 무엇을 고르시겠습니까? 나는 활력. 어떻게든 해 봐. 몸부림은 힘.


하천 징검다리가 침수, 슬리퍼 신고, 우산 들고 나왔다. 침수된 징검다리는 건널 수도 있고, 미끄러질 수도 있다. 돌아가기로 한다. 5분 손해다. 이런 태도로 살겠다. 뉴욕에서도 까불지 않겠다. 으슥한 골목, 예술 사진 한 컷. 그런 거 없다. 쏘다니지 않겠다. 미국이, 뉴욕이 엄청나게 좋을까? 그럴 가능성은 적다. 잘 사는 나라, 큰 나라, 전 세계 사람들이 우글우글. 부분 부분 좋겠지. 1883년 유길준은 사절단 신분으로 뉴욕을 간다. 전기를 마귀의 힘이라 생각한다. 엘리베이터는 감옥인 줄 안다. 엘리베이터는 마귀의 힘으로 움직이는 감옥. 감옥이 자신을 가두고 위로, 위로 올라간다, 죽으면 이 궤짝이 관이 되는가? 죽어서도, 관이 되어, 위아래, 왔다 갔다. 잠깐 동안 느꼈을 영원한 폐쇄, 압도적인 공포.


135년 전, 조선인에게 우주보다 경이로웠던 뉴욕. 그 순간의 놀라움을 자주 생각해 보겠다. 뉴욕에 첫 발을 내딛기 전까지.


프렌즈, 섹스 엔 더 시티, 위대한 개츠비, 스파이더 맨, 러브 어페어, 티파니에서 아침을. 뉴욕의 가을, 딘엔델루카, 마크제이콥스, 마놀로블라닉, 브로드웨이, 타임스퀘어, 브롱크스, 42번가, 브루클린, 블루보틀


심장 박동이 가장 빨라지는 지점은? 블루보틀. 그깟 커피. 꼭 마셔보고 싶다.


광주 시립 도서관에서 발견한 책


나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사와키 고타로. 73년, 내가 태어난 해 인도 델리에서 영국, 버스만 타고 가겠다고 나선 남자. 원래 제목은 심야 특급. 우리나라로 들어오면서 ‘나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제목만 보고 눈물이 찔끔. 원래 제목보다 훨씬 그윽하다. 한국인은 대단해. 70년대 인도 델리의 도미토리. 다들 누워있다. 대마를 빤다. 누워있다. 대마를 빤다. 인터넷이 없던 시대, 동공을 비우고, 누워만 있는 여행자들. 자유와 쾌락, 방종이 참 잘 어울렸던 그때의 청춘. 무기력도 멋, 퇴폐는 향수. 이제는 그저 다정한 할아버지, 할머니일 것 같아서, 또 눈물이 찔끔. 한 때, 불꽃. 지금은 꽃. 무릎이 시큰, 누군가는 휠체어를 굴릴 테지. 그때로 돌아가도 대마를 빨고, 세상을 비웃을 건가요? 그들의 답이 궁금하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쓰고 싶은 날도 있고, 쓰기 싫은 날도 있어요. 하고 싶고, 하기 싫고. 아, 저는 살아있습니다. 그거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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