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세요. 우리의 인연이 닿아있으니, 어서 만나야지요
(2018년 여름의 기록입니다)
10시 35분. 태전동 쌍용 아파트 단지 입구. Joybean coffee. 작은 카페. 두 테이블. 10분 앉으면 눈치 보임. 일단 앉음. 옆 테이블에 두 명 앉음. 긴장 시작! 아이들 학교 보내고, 이제, 좀 쉬자. 두 명의 젊은 엄마, 소곤소곤. 또 누가 들어옴. 일어설 채비. 알겠어요. 나갑니다. 카페라테 테이크아웃이요. 휴, 앉는다. 퍼붓는 비는 밖, 나는 안. 빗소리만 들어오렴. 비 냄새, 커피 냄새, 섞인다. 낙엽 타는 냄새만큼 좋다. 2등 냄새.
커피 들고 청소년 수련관, 건물 내부에 있는 휴카페. 일종의 주민 사랑방. 사람 없다. 폭우 덕에 독차지. 라면 냄새도 안 난다. 커피 향도 독차지. 큰 불이 저만치서 활활, 검은 연기가 구름을 뚫는다. 뉴스에도 난 큰 화재. 세 시간, 네 시간. 소방차는 불길을 못 잡는다. 누군가는 울고 있다. 피눈물. 내가 피눈물을 흘릴 때, 나 역시 철저히 외롭겠지? 그때 누군가가 커피를 마셔도, 월드콘 껍데기를 까도, 나는 오늘처럼 나만 생각해야 한다. 내 고통은, 나만의 것. 커피, 두 손으로 감싼다. 불이 빨리 꺼졌으면
노트북을 켠다. 뚱뚱한 구형 레노보, 5분 이상은 넋 놓고 모니터만 본다. 윈도가 깔리고, 한글이, MS워드가 느리게 찾아온다. 뚝딱뚝딱. 조금만 기다리세요. 세심하게, 완벽하게 설치하느라요. 모니터를 째려본다. 수명이 다한 코끼리. 내장은 진즉에 망가진, 늙은 코끼리가 거친 숨을 몰아쉰다. 최후까지 함께해야 하나? 연민은 없다. 돈이 문제. 유튜브부터 클릭. 음악이 있어야, 굿모닝. 그래야 글이 써짐. 상습적인 거짓말. 컬트의 ‘너를 품에 안으면’. 청춘의 한 때, 그때 노래들이 인생 노래. 너를 품에 안으면, 힘겨웠던 너의 과거를 느껴. 이제는 더 이상 흔들리지 마. 널 지켜야 해. 보컬 손정한 샤우팅. 삑사리? 끝까지 부른다. 못 부르는 것 같은데, 잘 부른다. 움찔
야다의 이미 슬픈 사랑, 뱅크의 가질 수 없는 너, k2의 유리의 성, 조장혁의 중독된 사랑, 김현성의 헤븐, 서지원의 내 눈물 모아, 최재훈의 비의 랩소디
유튜브 알고리즘. 내 취향을 짐작하고, 골라준 노래들. 알고리즘 해독 능력 30점. 나를 1도 모르는 멍청이. 뱅크의 가질 수 없는 너. 이 노래는 움찔. 강원도 양구. 95년 12월. 영하 12도, 눈, 함박눈, 안 가는 시간, 곧 크리스마스, 양구는 감옥. 세상으로 복귀는 불가능. 남은 1년은 10년, 아니 100년이 지나도 안 지나갈 거야. 강원도의 눈은 소복소복 아니고 수북수북. 안 녹고, 쌓이는 괴물. 눈에 깔려 죽 든, 치우다 죽든. 군인 잡는 괴물 눈, 안 가는 시간을 저주할 때, 고막에 닿은 노래. 시간이 거꾸로 흘렀던, 95년 겨울.
안 죽을게요.
전화를 건다. 뉴욕, 롱아일랜드. 안 받는다. 핸드폰, 집 전화 다 안 된다. 약간의 불안. 오늘 다시 건다. 받는다. 박 선생님. 10년 전 교대역 하나 초밥. 이미 일흔이 넘은 나이. 미스터 초밥왕. 롯데호텔 모모야마 초밥과 박 선생님 초밥. 어느 쪽이 더 맛있나요? 나는 박 선생님 초밥. 1인분에 15만 원, 도산공원 쓰시초이(당연히 얻어먹었다)도 내겐 괜찮네 정도. 박 선생님 초밥이, 인생 초밥. 실존 초밥왕. 초밥 아이돌. 원래는 외교관. 최연소 외교관, 승승장구. 사모님 아버지는 김일성대학 의대 초대 학장. 엘리트 부부. 뉴욕 롱아일랜드 하나 초밥. 외교관 때려치운다. 아이들 떠돌이 전학 생활 그만. 초밥 장수합시다.
미국 가게 정리하고, 은퇴. 한국에서 잠시 초밥을 만드신다. 지인이 연 교대 하나 초밥. 그때 처음 뵀다. 소니 최신 디지털카메라로 사진 찍으러 다니시던 멋쟁이. 가장 재미나게 들은 얘기. 뉴욕 하나 초밥, 함께 일하던 일본인. 우연히 가게로 온 일본 여자에게 홀딱 반함. 표현도 못 하고, 짝사랑 끙끙. 박 사장님 몸소 일본으로 가신다. 일본 여자와 담판. 뉴욕으로 데리고 오신다. 결혼 골인. 따뜻한 오지랖.
딸의 결혼식 비디오를 본 적 있다. 이탈리아 지중해에서 정장을 입고 웃고, 떠드는 하객들. 다양한 인종, 다양한 나이가 지중해에서 넘실넘실. 딸은 뉴욕에서 성공한 광고 기획자.
-놓지 못하고, 매달리던 친구들은 다 죽었어. 다들 일찍 죽었어.
경기고, 서울대, 외교관. 남들이 부러워하는 코스만 차곡차곡. 재벌 총수, 유명 정치인들이 친구. 두산 그룹 전 회장과는 부릴 친구. 훌훌 내려놓는 게 쉬웠나요? 쉬웠어. 가족보다 더 중요한 건 없으니까. 1년에 한 번 전화를 건다. 책이 나올 때, 해가 바뀔 때. 1시간은 기본. 툭 트인 들판처럼, 걸리는 게 없는 대화. 저공비행을 하는 솔개는, 날갯짓이 필요 없다. 바람만 믿고, 세상을 가른다. 힘을 뺀다. 힘을 뺀다. 힘 뺀 부부.
하면 된다.
이 말 뜻이, 지금의 나에겐 ‘놔두면 된다’. 애쓰지 말고, 놔두기. 놓기. 박 선생님은 나의 아이돌. 사모님도 나의 아이돌. 닮고 싶다. 낯을 가리고, 불편함에 쩔쩔매는 내가, 굳이 만나고 싶은 사람. 만나야 하는 사람.
-박민우 작가 올 때까지 안 죽을게요. 어서 오세요.
잘 지내시죠? 여쭸다. 사모님의 답이다. 안 죽을게요. 어서 오세요. 2년 전, 나 죽으면 올 건가요? 사모님 재촉이 내내 귀에 맴돌았다. 내 뉴욕 여행은, 그때 시작됐다. 인간의 수명을 축내는 시계는 째깍째깍. 내 책을 또 읽고, 또 읽는 애독자 둘, 롱아일랜드 한인들에게 빌려주고, 꼭, 꼭 받아내는 책이 내 책. 미국 대학 도서관에도 내 책이 있다면서,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시던 노부부.
미국 전자비자 esta. 몇 번 해보면 별 거 아니다. 인터넷으로 신청하고, 만 4천 원 내면 된다. 여권 번호에 미국에서 머물게 될 곳의 주소, 지인의 연락처 등등등 채워 넣을 게 많다. 거부당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2011년 3월 1일 이후 이란·시리아, 이라크, 리비아, 수단, 소말리아, 예멘을 방문한 적이 있나요?
뜬금 질문. 큰일이다. 이란, 시리아. 언제 다녀왔지? 2011년 3월 이후에 갔냐고? 그때쯤인데. 2011년 3월 이후에 방문했다면? 사실대로 말했을까? 그런 사람은 대사관에서 정식으로 비자를 신청하라고? 신청할 수나 있어? 시티은행에 350만 원 있습니다. 항공권이랑 이것저것 150만 원이 9월 5일 신한카드로 빠져나갑니다. 씨뤼뱅크(시티은행) 미국 은행이니까 좀 봐줘요. 애걸복걸이라도 해? 증명해야 하는 최소 금액 500만 원. 비자 발급비는 160달러. 176,000원. 보증인까지 원한다. 보증인의 잔고증명서, 사업자 등록증까지. 나를 보증해 줄 사람은 없다. 있어도 없다. 뉴욕을 못 가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시리아가 내 발목을 잡나?
마르 무사 2010년 12월 13일
2010년 12월이다. 간발의 차, 석 달 차이. 아슬아슬하게 시리아에서 빠져나왔다. 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천주교 수도원 마르 무사. 살구잼, 염소치즈, 두꺼운 화덕 빵. 모든 게 공짜. 음식도, 잠자리도. 황홀한 식탁. 머무는 모든 이들이 천사고, 성자였던 곳. 지금은 갈 수 없는 나라, 이름만으로도 울컥해지는 나라, 시리아, 마르 무사, 라타키아, 알레포, 다마스쿠스. 그곳에 안 갔었습니다. 지금은 잡아떼야 하는 나라. 나를 라타키아로 보내 주세요. 마르 무사로 보내주세요. 나의 진심이 너희들에게 닿기를. 그때까지 무사하기를. 나를 잊으면 안 돼. 내 사랑 시리아. 여행자가 꿈꾸는 모든 것이 있는 천국.
씨유 어게인, 마이프렌드
PS 매일 글을 씁니다. 몰입하면 잘 생겨집니다. 저의 미용법업니다. 더 열심히 써야겠다고요? 더,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 잘 생겨진다는데, 그쯤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