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제가 그런 놈입니다
(이 글은 2018년 8월 구독신청을 받아서 글을 썼던 첫 달의 내용입니다. 그래서 쓸데없이 비장합니다. ㅠㅠ)
다산북살롱 여행학교 3주 차 강연을 끝내고 왔네요. 오늘따라 버스, 지하철 사람이 많네요. 목요일은 붐비는 거라면서요? 회식하는 요일, 목요일. 몰랐죠. 힘든 직장인의 삶, 모르고 살았습니다. 눈이 감겨요. 잠이 고프네요.
8월 31일.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편지로 대신합니다. 오늘 무슨 일이 있었더라? 어제는 글이 더 늦어졌어요. 새벽 3시 40분에 잠들었어요. 8시 30분에 일어나서 운동을 다녀오고요. 씻고, 어머니가 싸준 김밥 들고 합정역으로 향합니다. 보통은 낮잠을 자요. 늦은 아침을 먹고 자요. 꼭 자요. 세상 가장 부러운 사람이 되죠. 오늘은 시간이 안 됩니다. 4시 이전에는 도착해요. 합정역 카페에 앉아서 글을 써요. 이런 글, 저런 글. 급한 글, 덜 급한 글. 수업은 7시 반. 집에서 두 시에는 나와요. 잠은 버스에서 자자.
스마트폰이 생기고 얼마나 편해졌는지 몰라요. 버스 어플, 지하철 어플을 깔죠. 버스, 지하철이 언제 오는지 알아요. 뛰게 돼요. 늘 뛰고, 오래 안 기다려요. 얼마나 효율적인 삶인가요? 헐떡헐떡 뛰면 좀 어때요? 넋 놓고 기다리는 것보다는 낫죠. 시간이 훨씬 많아졌어요. 그래서 뛰어요. 버스가 곧 온다고요.
성남 모란역으로 가는 버스는 두 대, 32번, 32-1번. 32번은 가까운 정류장, 32-1은 좀 먼 정류장. 32-1번이 7분 후에 온대요. 딱 좋네요. 빠른 걸음 정도면 되겠어요. 다행히 안 늦었어요. 오늘은 좀 덥네요. 30도 정도의 우스운 더위로 피곤한 나를, 괴롭혀요. 곧 올 32-1번에서 한숨 자야겠어요. 20분 정도 눈 붙이면, 개운해지더라고요. 온다는 버스는 왜 안 올까요?
버스에서 잠드는 초능력이 제게 있어요. 쉿, 비밀이에요. 1분 안에 잠이 들 수 있나 내기를 해요. 고등학교 때요. 버스에 나란히 앉아서요. 친구는 하나, 둘, 셋을 세고요. 저는 눈을 감아요. 넷, 다섯, 여섯. 쌔근쌔근. 30초 안에 잠들더랍니다. 제가 그런 사람입니다.
버스에서 가장 좋아하는 자리, 뒤에서 세 번째 자리. 발 올려놓을 수 있는 자리. 창가 쪽. 저의 침대입니다. 가방을 허벅지에 올려놓고, 곯아떨어질 겁니다. 약간 간절해요. 버스가 빨리 왔으면 해요.
다시 어플을 켜 봐요. 버스가 사라졌어요. 사라진 버스는 다음, 다음 정류장을 지나고 있네요. 내가 못 본 사이에 버스가 다녀갔어요. 저는 눈을 뜨고 있었고, 버스는 크죠. 저는 정류장에 내내 있었고요. 제가 달팽이가 된 걸까요? 달팽이가 눈 깜빡하는 시간이 7초(6초? 어쨌든)래요. 눈 깜빡하는 7초 동안 버스가 지나가면, 달팽이에게 버스는 없는 존재죠. 정말, 제가 갑자기 달팽이가 된 걸까요?
날개 달린 버스가 한국에 도입됐나요? 드론 버스였던 걸까요? 기다란 다리와 팔이 삐져나오는 버스였을까요? 성큼성큼 긴 다리로 걸었을까요? 32-1번 버스를 놓쳤습니다. 눈이 감기네요. 32번 버스를 타면 돼요. 길만 건너면 32번이 서요. e편한 세상, 현대 힐스테이트 대단지가 생기고 정류장이 꼬였어요. 하여튼 32번을 타려고 건너요. 운전기사가 저를 보더니, 그냥 가버려요. 이미 시동 걸고, 문 닫았고, 그때 저를 발견했거든요. 32번까지 놓쳤어요. 화를 내고 싶습니다. 너무 오래는 말고요. 다스리려고 애써요. 편의점에서 하늘 보리 한 병을 사요. 물은 싫고, 가장 쌀 것 같은 음료가 하늘보리. 1,300원. 벌컥벌컥 마셔요. 32-1번 버스 정류장이 또 변경됐나 봐요. e편한세상, 현대 힐스테이트 악마들이 자기네 단지에 버스 서게 하라고 시위를 했나 봐요. 버스가 하나, 둘씩 우리 단지에서 사라져요. 우리가 덜 걷고, 너희들이 더 걸어. 악마들의 요구에, 버스가 무릎을 꿇은 거죠. e편한 세상, 현대 힐스테이트 악마들을 어떻게 하죠? 어떻게 복수해야 할까요?
이때, 32-1번 버스가 보여요. 처음 그 정류장에서요. 사라졌던 버스인가요? 그다음 버스인가요? 정류장은 그대로였던 거군요. 버스가 부릉부릉, 사라져요. 그냥 봐요. 하늘보리 마저 마셔요. 뛰어도 이미 못 타요. 편의점과 정류장 거리가 딱 그래요. 그러니 그냥 봐야죠. 하늘보리를 다 마셔야겠어요. 속이 타네요.
열 내리고
토 닥토닥
하늘보리 병에 그렇게 쓰여 있네요. 나무늘보 캐릭터가 그려져 있어요. 눈빛이 음탕하고, 비굴해요. 웅진식품이 미쳤네요. 마약에 찌든 나무늘보를 그려놓다니요. 마약 나무늘보가, 열 내리고, 토닥토닥. 저를 쓰담쓰담. 스페셜 에디션이래요. 박민우만 약 올리면 돼. 의도는 분명해요. 나무늘보도 악마, 대단지 사람들도 악마, 세상은 악마들 뿐. 빈 페트병은 가방에 담습니다. 물병 대신 요긴해요. 어미니도, 저도 빈 페트병 집에 쌓아놓기가 취미입니다.
꼬이는 날은 이래요. 세상이 다 적이죠. 감정을 잘게 썰어서 나눕니다. 오늘 하루 일기에 올릴 것과 말 것. 올려야 하는 것은 또 나눕니다. 왜 올려야 하지? 감정이 요동을 쳤으니까? 요동친 이유부터 적어보자. 부족한 수면, 식곤증, 잠 간절, 사라진 버스, 떠난 버스, 나타난 버스. 이렇게 정리를 해요. 정리가 돼요. 정리하세요. 분노 조절됩니다. 맞는 서랍장에 넣으면 끝. 양말은 양말 칸, 팬티는 팬티 칸, 분노는 분노 칸. 저의 일기는 분노 칸이 가장 소중해요. 안 깨지도록, 안 사라지도록, 서랍에 넣을 때도 조심조심.
2018년 8월
서랍 기억들을 꺼내고, 담는 시간이었습니다. 8월 1일, 이 일기를 시작하는 날은 굉장히 화가 나 있었어요. 여러 이유로요. 구걸을 하는 거지가 된 기분이었어요. 내 글이 어떤 글인데, 내가 얼마나 대단한 놈인데. 자존감을 스스로 쥐어짜면서요. 바락바락 나는 대단해. 나는 대단해. 세상이 그렇게 외쳐주길 바라면서 혼자 지껄였어요. 나는 대단했으면 좋겠습니다. 줄이고, 줄이고, 새로 쓰고, 또 쓰고. 딱 한 달만.
지금 새벽 두 시가 넘어가네요. 8월 31일의 가장 처음. 버스에 빈자리도 없어서요. 내내 서서 왔어요. 자고 싶어요. 쉬고 싶습니다. 씁니다. 그런 마음을 곁에 두고 씁니다. 글과 내가 가까워진 한 달이었어요. 쓰고 있다는 걸 잊어요. 글쟁이로서 가장 바라던 순간, 자주 옵니다. 자부심? 비참함? 모든 감정이 사라지고, 글만 남아서, 글만 나와요. 그걸 건지고, 말려서는, 여러분께 보냈어요.
엄청난 힘이었습니다. 여러분의 메일이, 응원이 저를 쓰게 했어요. 일방적인 분노가 가면 얼마나 가겠어요. 지쳐서는, 무기력해졌겠죠. 여러분의 짧은, 혹은 긴 메일들을 받습니다. 충전됩니다. 씁니다. 다가갑니까? 다가오세요. 거리를 좁혀가며, 써 내려갔습니다. 여러분의 귀 기울임이 없었다면, 진즉에 엎어졌습니다.
저는 글을 쓰는 광대입니다. 이토록 반겨주시고, 즐겨주실지 몰랐습니다. 제 하찮은 분노가 잦아들었어요. 덕분입니다. 복수심요? 글을 못 쓰면, 가장 큰 고통은 제 것입니다. 저는 써야 합니다. 쓰게 해 주세요. 저는 써야 합니다.
저는 돌아옵니다. 반드시 돌아옵니다. 시기는 바로일 수도 있고, 약간 미뤄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인연을 믿습니다. 믿기지 않는 즐거움이 될 겁니다. 우리의 힘으로요. 약속드립니다.
돌아오겠습니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반복이 가장 큰 훈련이니까요. 곧, 공중부양 글들이 나올 겁니다. 으하하. 보고 싶으시죠? 열심히 읽어 주시면, 그런 날이 옵니다. 구경하셔야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