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무게는 다 다른 걸까요
-지금 기분이 어떤가요?
자식을 잃은 어머니에게 뉴스 리포터가 마이크를 들이밀어요. 기자도 속으론 못할 짓이다 싶을 거예요. 피 같은 새끼를 잃은 어머니에게 그런 질문을 해야 할까요? 이상하죠? 어머니는 답을 해요. 몇 시간 전까지 살아있던 아이가 죽었는데도요. 연습을 많이 한 사람처럼요.
한 여자가 사망한 사건이 있었어요. 같이 술 마시던 남자가 업고 갔는데, 숨이 끊어진 거죠. 살인이냐? 단순 사고냐? 당시에 꽤나 떠들썩한 사건이었죠. 장례식 날이 하필 죽은 여자의 생일이었어요. 여자에겐 어린 딸도 있었죠. 친구들은 케이크를 사 와요. 딸아이와 함께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요. 누가 보면 장례식장이 아니라, 생일 파티가 열린 카페인 줄 알겠더라고요. 며칠 전까지 같이 웃고 떠들던 친구가 죽었는데요. 핏덩이는 엄마 없이 평생을 살아야 하는데요. 그깟 생일을 챙기고 있어요. 밝은 표정으로요. 어차피 죽은 거 어쩌겠나. 지독하게 현실적으로 죽음을 받아들이는 걸까요? 불심이 깊은 나라니까 죽음이 끝이 아님을 믿는 걸까요? 아니죠. 진짜 좋은 죽음은 완벽하게 사라지는 거라면서요? 이미 쌓은 덕이 충분해서, 완벽하게 소멸되기를 빌어주는 걸까요?
대형 트럭이 갓길로 쓰러져요. 어머니가 아기를 안고 있었어요. 아기가 튕겨져 나가서 자기 트럭에 깔려요. 아이의 시체를 찾는 아버지가 화면에 잡혀요. 얼이 빠져서는 계속 쓰러진 트럭을 맴돌아요. 아이가 안 보여요. 우리가 동물을 보면 감정을 잘 모르겠잖아요. 사람처럼 얼굴 근육을 자유롭게 구기면서 울거나, 괴로워하지 않으니까요. 태국 사람을 보면 잘 모르겠어요. 아버지의 표정이 너무 담담해서요. 정말 덜 슬픈 건가? 슬프지만 참는 걸까? 슬픔은, 아픔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우리는 울부짖죠. 혼절하죠. 가족은 자기 몸뚱이보다 때로는 더 소중해서, 숨이 잘 안 쉬어집니다. 심장이, 간이 썰리는 느낌이라서요. 그래서 울부짖을 수밖에 없죠. 죽음은 너무도 차갑고, 무서워서 그 공간에 내 소중한 사람이 남게 된다는 게 못 견디게 괴로울 뿐이죠.
슬픔의 방식에 대해서 생각하게 돼요. 저야 눈물이 많으니까요. 가까운 사람과 이별하게 되면 펑펑 울겠죠. 내 슬픔은 처절하지만, 오래가지 않을 거예요. 산 사람의 방식을 재빨리 습득해서, 명랑하고, 씩씩해질 걸 알죠. 몇 시간 전까지 따뜻하던 내 새끼를 잃고, 뉴스 리포터 질문에 꼬박 답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그렇게 눈물이 나네요. 그만 좀 묻기를. 마음껏 슬플 시간을 하루 정도는 주기를 바라면서요. 당분간 태국 뉴스를 안 봐야겠어요. 스물일곱 명을 쏴 죽인 아들의 어머니는, 아들 역시 사살됐지만, 죽어 마땅한 아들이이서 집으로 숨었어요. 평생 성실하기만 했던 아들이 하루아침에 태국 역사상 최악의 살인마가 됐어요. 슬픔조차 허락받지 못한 어머니가 집에 숨어서, 이불로 꽁꽁 말고 아주 조금씩 피울음을 떨구는 밤일 지도 모르겠어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글을 쓰는 시간만큼은, 저는 없어요. 늘 그런 건 아니지만요. 글을 끝내고, 어? 내가 썼나? 이런 느낌이 좋아요. 나올 글이 나왔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