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자보에서 만나는 숨 막히는 일출
새벽 다섯 시에 차가 오기로 되어있다. 네 시에는 일어나야지. 아버지의 상식이다. 나는 네 시 반이면 충분하다. 아버지 말씀이 옳다. 서두르면 뭔가를 놓고 온다. 실수를 하게 된다. 손해 보는 느낌이 들더라도, 한참 전부터 대기하는 편이 낫다. 삼십 분 더 자자고, 말싸움하는 건 어리석다.
아버지나 나나 두 시부터 시간을 확인한다. 제대로 된 잠은 한두 시간이나 될까? 어머니는 새벽 두 시에도, 세 시에도, 네 시에도 쿨쿨. 전생에 장군이거나, 대상인이셨을 것이다. 아버지가 한참 돈 좀 만지실 때, 고스톱으로 집 한 채를 날리셨다. 생각이 많아서일 것이다. 배짱 두둑 어머니가 화투패를 들었어야 했다. 도박의 승자는, 두려움이 없는 자다. 나는 어머니를 닮고 싶다.
깜깜한 어둠을 뚫고 헤드라이트가 반짝인다. 차는 정확히 다섯 시에 왔다. 우리는 한참 전에 샤워까지 끝내고, 이제나 저제나 차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차를 빌리는데 1,600밧(64,000원)을 썼다. 한숨도 못 잤다. 반자보라는 곳의 일출이 그만큼 대단할까? 일종의 화풀이다. 아무것도 안 할 거면, 뭐하러 왔어? 아버지의 불평에 대한 복수다. 안다. 홧김에 그냥 해보신 소리라는 걸. 아버지도 대부분의 시간을 감사하고 계심을. 뒤끝이 만리장성만큼 긴 나는 흘려 들어지지가 않는다. 매일매일 쫓기는 스케줄에 숨 좀 막혀 보시오. 이런 맘으로 꼭두새벽 반자보로 간다. 구름이 넘실넘실, 잘 생긴 산들이 첩첩첩. 동양화에 푹 갇혀서, 집 한 채를 날렸던 화투패의 팔광을 떠올려 보시지요.
-아가씨, 이거 아가씨 것 아니요?
-아닌데요.
여자는 재빨리 아버지에게서 멀어진다. 반자보라는 곳에 도착한 시간은 여섯 시 반쯤. 구불구불 도로를 한 시간 반 정도 달렸다. 산 위로 얇게 펴 발라진 선이 조금씩 붉어진다. 이십여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추위에 떨며 해뜨기만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산이 귀한 태국에서나 알아주는 풍경이지. 그 돈으로, 호텔 뷔페에서 배 터지게 먹을 걸. 사사로운 복수심에 여기까지 왔다. 다 아버지 때문이라고요. 그런데 아버지는 풍경에 집중 안 하고, 사람들만 보시는 건가요? 아버지는 한국 사람이 몇인가에만 촉각을 곤두세우신다. 한국 사람일 것 같은 여자가 내 옆에서 우두커니 서있다가 옆으로 옮겼다. 아버지는 여자 자리에서 자동차 키 커버 하나를 주워서는 그녀에게 달려가신다.
-아니면, 아닌 거지. 대답도 제대로 안 하고. 내가 나병환자냐? 버르장머리하고는.
아버지는 한국 사람이라 반갑고, 반가운 한국 사람이 소중한 걸 잃어버릴까 봐 안절부절못하셨다. 어, 한국에서 왔소? 나도 한국에서 왔소? 어디 사시오? 이렇게 시작된 관계로 밥이라도 같이 먹고, 한국에서 또 보자는 말로 끝난다면 일출 열 개를 합친 것만큼 기쁘실 것이다. 나는 냉랭하게 아니라고 말하는 여자와 완벽히 같다. 내 안의 세상이 더 중요하고, 느닷없는 타인이 불편하다. 순간적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는 어정쩡한 상황에서 달아나고 싶었을 뿐이다.
아버지는 절대 원하는 관심을 받으실 수 없다. 억울한 시간만이 기다린다. 대부분의 사랑은 아버지처럼 일방적이다. 마음만 있고, 요령은 없다. 나는 아버지가 불편하고, 딱하다. 적어도 아버지는 사랑을 하고 있다. 아버지의 영혼은 훨씬 반짝이고, 아름답다.
해가 정체를 드러내는 순간, 바로 옆 쌀 국숫집이 문을 연다. 우리처럼 일출이 시시한 사람들이 더 빨리 쌀국숫집으로 달려간다. 국수나 먹고 가자.
싹퉁머리 없는 아가씨 같으니라고
아, 내 돈
빨리 배나 채우고 갑시다.
해가 떴다. 장관이었다. 세상의 모든 일출은 장관이다. 소문만 믿고 왔다. 소문에 속았다. 속기도 하고, 대단한 걸 보기도 한다. 따기도 하고, 잃기도 하는 고스톱판이다. 나는 여행으로 수백 번 도박을 한 사람이다. 잃는 날도 있다. 잃는 날들이 모여야 딴다. 따는 날만 있으면 도박이 아니다. 사람을 미치게 할 수 없다. 판돈을 잃고, 새벽에 집으로 돌아오던 아버지는, 헛헛하셨을 것이다. 헛헛하니까, 입맛부터 다시셨을 것이다. 배가 고파서는 아니다. 부족하지만, 뭘로 채워야 할지 모르니 라면부터 찾으셨던 것이다. 지금 우리에겐 국수가 있다. 맛나게 먹고, 돌아가는 차 안에서 까무룩 졸고, 그럭저럭 하루를 보내면 된다. 별 거 아닌 풍경조차, 내일이면 조금 커지고, 모레면 조금 더 커진다. 추억 폴더에 들어가서, 천천히 부화된다. 뒤늦게 사무치는 풍경이 될 수도 있다. 태양과 산, 구름은 끝난 풍경에 조금씩 변화를 준다. 트집을 잡을 마음은 없다. 멋지다. 완벽하다. 울림이 크지 않을 뿐이다. 쌀국수와 국물의 김이 화투패의 팔광을 감싼다. 그 작은 균열이, 완벽함에 맞선다. 우리의 시간은 구름의 높이에서 흐른다. 완벽함이 주는 숨 막힘은, 균열을 통해 새로운 생명체가 된다. 씨앗이 부풀고, 툭 터진다. 완전함에 대한 불완전함의 반격은, 결코 초라하지 않다. 풍만한 국물이 젓가락에 휘둘린다. 젓가락을 높이 든다. 우리는, 작고, 하찮다. 완벽했다면 설렘은 없다. 감동도 없다. 이렇게 작아져서, 눈앞의 풍경에 고개를 조아린다. 풍경은 인간에게 깎듯이 답례를 해야 한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제가 살아있다는 걸 구체적으로 느끼는 방식입니다. 구체적인 사람이고 싶습니다. 글을 쓰면서 갇히는 사람이기보다는, 글을 쓰기에 더 건강하고, 열려 있는 사람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