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조금만 더 웃어 주세요. 네?
(그래서 어머니와 나만 쌀국수를 맛나게 먹었다고 합니다. 얌냠)
-이번에 가면 땅이는 볼 수 있는 거냐?
참, 아버지도. 남의 집 귀한 아들을 뭘 또 그렇게 찾으세요? 땅은 올해 한국 나이로 53세의 태국인 회계사다. 태국 사람은 이름보다 별명으로 불린다. 본명은 길기도 하고, 발음도 어렵다. 그의 별명은 땅이다. 다섯 살 형님이니까 땅 형님. 대단한 재벌은 아니지만 집이 몇 채 있는 중산층이다. 덕분에 방콕에 공짜로 머물 수 있는 방 한 칸이 내게 주어졌다. 한 달 평균 수입 백만 원이 채 안 되는 나는, 땅 형님 덕에 방콕에 머물 수 있게 됐다.
-아니, 작가님. 백만 원도 못 벌면, 그 근처는 번다는 건가요? 그럼 어디서나 살 수 있지 않나요? 꼭 태국이 아니어도?
매달 정기적으로 나가는 보험료와 연금도 이십만 원이 넘는다. 카드로 나가는 돈(부모님이 필요하다는 걸 인터넷으로 주문할 때, 이런저런 소소한 지출)도 이삼십만 원은 된다. 거기다가 석 달에 한 번씩 해외로 나가야 한다(관광 비자인 탓에 석 달이 지나면 다른 나라를 다녀와야 한다). 삼십만 원 정도 쓴다고, 딱 삼십만 원만 있으면 안 된다. 너무 당연한 소리를 왜 하고 있지? 내가 방콕에 머물 수 있게 한 은인 땅 형님을 종일 찬양하고 싶다. 어머니, 아버지를 방콕에 모시고 온 적 있다. 그때 땅 형님이 5일간 차로 방콕과 주변을 샅샅이 구경시켜줬다. 구경만으로 끝난 게 아니다. 숙소에다가 매일의 만찬까지 책임졌다. 어머니, 아버지 떠날 때는 바리바리 선물까지 챙겼다. 부자 친구를 두는 것. 어릴 때 꿈이었다. 말괄량이 삐삐. 스웨덴에서 만든 어린이 드라마에서 삐삐가 그런 친구였다. 금화가 집 어디든 굴러 다니는 아이. 가게 안의 초콜릿과 사탕을 모두 쓸어 담아도 거슬러 받을 잔돈이 사탕보다 더 무거운 아이. 저런 친구가 한 명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친구가 내 삶에 등장했다.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물론 세상 공짜 없고, 이런 호의는 분명 의도가 있을 것이다. 그런 의심으로 십 년, 아직까지 의도는 드러나지가 않아서, 나는 여전히 빌어먹고 있다. 혹, 나중에 이 거대한 음모가 들통이 나고, 내가 탈탈탈 갚아야 한다면, 아마도 목숨을 바쳐야 할 것이다. 이십 년 정도를 내다본 거대한 사기극이라면 당해야 마땅하고, 그래도 엄청난 손해는 이미 아닐 것이다. 장기 하나 떼 간다고, 억울해할 수 없는 일방적인 베풂이다. 그런데, 아버지가 땅 형님을 찾으신다. 치앙마이와 방콕의 거리는 700km. 서울에서 부산이 325km. 서울 부산의 두 배 거리다. 아버지는 방콕에서 치앙마이가 서울, 인천 정도인 줄 아신다. 서울, 인천이어도 그렇지. 한두 번도 아니고, 우리 왔으니 대접 좀 제대로 해 봐라. 뻔뻔하게 또 들이댈 수는 없다
빠이를 떠나는 날 아침, 꼭두새벽. 미리미리 준비해라. 가서 기다리는 게, 쫓기는 것보다 백 배 낫다. 아버지의 철칙에 나도, 어머니도 열심히 복종한다. 우리는 거의 한 시간 일찍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작은 마을이다. 묵는 곳에서 버스 터미널까지는 3.4km. 그래도 경기도 광주에서 인천 공항 가는 마음으로 서둘러야 한다. 아침 여섯 시의 빠이 버스 터미널은 어찌나 어두운지, 별은 하늘에서 유난히 총총했다.
-추운데 뭐 좀 따뜻한 거 없을까?
새벽 여섯 시에 따뜻한 요기 거리가 있을까? 없을 것 같다. 사람들이 넘치는 주택가도 아니고, 대도시도 아니다. 외딴 산속 마을의 작은 버스 터미널이다. 이 시간에 음식을 팔려면, 새벽 네 시에는 일어나야 한다. 있을 리가 없지. 저만치서 보이는 불빛을 보면서도, 식당은 아니겠지 했다. 세상에! 뜨거운 커피와 쌀국수, 죽을 파는 노점이다. 원하지만, 간절하지만, 없을 거야. 그랬더니 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완벽한 노점이 반짝이고 있다. 감격해야 마땅한데 어머니는 당연하실 거고, 아버지는 그냥 다 귀찮으실 것이다.
-어머니, 아버지. 쌀국수도 있고, 죽도 있어요.
-그러면 쌀국수를 먹어야지. 당신은 죽 드셔야죠?
-먹긴, 뭘 먹어? 이 짐을 두고?
-아버지, 바로 저기예요. 저기.
-안 가, 안 먹어.
-짐은 제가 옮길게요.
-안 먹는다니까. 너나 먹고 와. 엄마랑.
-바로 눈 앞이잖아요.
-안 먹는다고. 안 먹는다고.
혹시 70미터 거리가 700미터로 보이시는 걸까? 무릎 관절이 갑자기 나가셨나? 입맛이 없으면, 없다고 하시지. 70미터가 어마어마한 거리임을, 일흔다섯 살 몸이 안 돼봐서 모르는 걸까? 그러지 말고, 같이 가요. 어머니는 아버지를 데리고 가고 싶어 견딜 수가 없으시다. 김을 불어가며 뜨거운 국물을 오손도손 먹는 순간은 그렇게 날아갔다. 아버지는 내게 바다다. 깊은 바다. 산소통이 필요하다. 숨 한 번도 깝깝하게 쉬어야 하는 어두운 바다. 아, 탈출하고 싶다. 산소가 널브러진 곳에 홀로 누워서, 바다는 쳐다도 안 보면서 낮잠 자고 싶다. 염치고 나발이고, 땅 형님이 필요하다. 나부터 살고 봐야겠다. 세 시간 후엔 다시 치앙마이다. 이 무거운 짐을 나눌 슈퍼맨이 필요하다. 뻔뻔하게 땅 형님을 부른 건 나였다. 이제 곧, 땅 형님을 만난다. 나의 산소통님께서 오신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안 쓰는 것보다는, 쓰는 게 편해요. 마음이요. 내 마음을 두게 해 준 글에게 감사합니다. 읽어주는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이렇게 감사를 잘합니다. 대신 투덜투덜도 잘합니다. 아버지 유전자가 어디로 갔겠어요?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