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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모와 치앙마이 한 달 - 남의 집 아들의 효자노릇

한밤의 도이수텝은 너무나 아름다워요

by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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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집 아들 땅형님(왼쪽)이 제일 효자라고 인정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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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 오렌지색 승복, 박물관, 일출, 일몰, 소수 민족, 툭툭(태국의 오토바이 택시)

콧방귀도 안 뀌신다.

한국 사람이 맞나? 아닌가? 공짜냐? 아니냐? 아기, 각종 영어 글자, 음식 가격, 교통비, 처음 보는 사람의 나이, 결혼 유무, 좀 괜찮아 보이는 아파트의 월세.

굉장한 관심을 보이신다. 어머니, 아버지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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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수텝이 과연 먹힐까?


차로 운전해서 이십 분. 구불구불 오르막을 한참 오른 곳에 치앙마이에서 가장 화려한 불교 사원이 있다. 치앙마이에서 거길 안 갔어요? 이런 공격에 부모님이 노출되게 할 순 없다. 어머니가 한쪽 다리를 쩔뚝이기 시작한다. 아버지도 말수가 부쩍 줄어드셨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서 빠이에서 치앙마이로, 치앙마이 버스 터미널에서 공항으로, 공항에서 새로운 숙소로, 숙소에서 한식당, 한식당에서 다시 숙소, 잠깐의 휴식, 그리고 도이수텝. 경사도, 커브길도 만만치 않다. 스무 살 안 부러운 체력으로 나를 기죽이던 어머니와 아버지가 뒷자리에서 꾸벅꾸벅 조신다. 피곤해요? 들어갈래요? 이렇게 물을 때마다 깜짝 놀라신다. 아니다. 괜찮다. 벽걸이 TV와 널찍한 침대의 방도 소용없다. 밖이어야 한다. 하나라도 더 봐야 한다.


-계단으로 가지 말고, 엘리베이터를 탈까?


엘리베이터가 있는지 몰랐다. 예전에 땅 형님과 도이수텝에 온 적이 있다. 그땐 묵묵히 계단으로 올랐다. 어머니가 과연 이 계단을 끝까지 오르실 수 있을까? 끝도 안 보이는 계단이다. 땅 형님이 재빨리 엘리베이터 티켓을 끊는다(입장권과 엘리베이터 티켓을 한 번에 끊었다). 어머니가 절뚝거릴 때, 이를 어쩌지? 닥쳐야 고민을 한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땅 형님은 한참 전부터 본다. 숙소에서 나올 때 아주 조금씩 느려지는 어머니의 걸음을 해석한다. 타인의 몸을 자신의 몸을 고민할 때 함께 한다. 배려의 지능이 희귀할 정도로 탁월하다. 숫자, 물리학, 바둑, 암기력 등으로 천재를 이야기한다. 타인의 다급함을 자신의 다급함으로 여기는 마술 같은 능력은, 아무도 천재와 연결 짓지 않는다. 나는 땅 형님이 천재라고 생각한다. 가장 따뜻한 천재.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땅 형님은 어머니, 아버지 화장실부터 챙긴다. 마치 아이처럼, 어머니, 아버지는 신중하게 소변을 배출하신다. 한결 쾌적해진 걸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콧방귀도 안 뀌던 사원 중 하나에 발을 내딛으신다. 나는 사실 매일 피곤하다. 하루를 어떻게 끝마치나? 아침이면 한숨부터 나온다. 내가 책임져야 할 두 명의 생명체가 부담스럽다. 나를 낳아주신 고마운 존재지만, 늘 고맙지만은 않다. 의무감이, 자발적인 사랑보다 훨씬 크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마지막을 강조하면, 편안해진다. 잘해보고 싶어 진다. 사형수의 마지막 날처럼 사시오. 말이 쉽지, 누구도 그렇게 살지 못한다. 치열하게 지혜로운 사람은 천 명의 한 명, 만 명 중 한 명이다. 다리를 저는 어머니, 하루의 절반을 투덜대는 아버지, 어머니의 한쪽 팔을 잡고 같은 보폭으로 걷는 남의 집 아들. 이건 무슨 해괴한 조합일까? 인연이란 게 정말 있나? 우연의 남발로 이렇게 넷이 밤의 사원을 겯는다. 이렇게라도 걸을 수 있는 날이, 이렇게라도 볼 수 있는 날이 매일 줄어들고 있다. 그걸 아는 사람이 되어서, 어머니는 이 밤을 절뚝절뚝 걸으신다.

-여기는 보기가 좋구먼. 자, 사진 한 번 찍어 봐라.

-세상에, 세상에 뭐가 이리 화려하니?


콧방귀도 안 뀌던 낮의 사원들이 참 많이 서운하겠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도이수텝의 풍경에 고개를 절레절레, 입을 벌리시고, 가까이서 보시고, 멀리서도 보신다. 아기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배우고 있다. 늙어가는 몸은, 그대로 늙어간다. 껍질과 따로 노는 마음은, 언제든 아기일 수 있다. 처음 세상을 탐색하던 의심 많은 아기의 눈빛이 몸을 뚫고 나온다. 나는 이런 풍경을 보기 위해 이십 일을 기다렸다. 온갖 수식어로 이 순간을 과장하고 싶다. 과장도, 어떤 과장도 이 기적을 이길 수 없다. 둘은 말하는 걸 잠시 잊고, 서로의 곁을 지키신다. 그건 당연한 거야.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신다. 풍경을 보신다. 들으신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이 여행기는 1월에 이미 끝난 여행기고요. 한숨이 저절로 나오는 밤인가요? 심란한 아침인가요? 우리 모두가 조금씩 나누자고요. 조금씩 나눠서, 골고루 짊어지면, 은근히 가벼울 거예요. 혼자 다 짊어진다고 생각했을 때보다는 훨씬 낫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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