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아버지 적당히는 안돼요. 아들이 워낙 유능한 여행 작가라서요
어떻게 치앙마이가 이럴 수 있지? 마야 쇼핑몰 쪽은 아예 차가 안 빠진다. 방콕이 세계에서 제일 교통 체증이 심하다는데, 방콕보다 심하다. 인구 십오만 도시에서 기대하는 한적함이 깡그리 사라졌다. 주말 시장은 잘못하다가는 압사를 당할 수도 있다. 십 년 사이에 중국인들이 전세를 냈고, 한국인도 폭증했다. 좁아터진 인도, 신호등이 없어 무단횡단을 해야 하는 해자(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 밖을 둘러 파서 못으로 만든 수로) 주변. 예전에도 그러긴 했다. 혼잡함이 더해지니까, 숨이 막힌다.
갈래(Galae)
아버지, 어머니는 끊임없이 놀라셔야 한다. 갈래 식당을 가는 이유다. 어머니, 아버지는 계속해서 혼란스러우셔야 한다. 이런 날이 또 올까 벌벌 떠셔야 한다. 나는 또 내 나름의 강박으로, 마음이 편치 않다. 내 아이에게 제일 좋은 이유식만 먹이고 싶은 마음이 이런 걸까? 혼자 힘으로는 비행기도 겨우겨우 타는 70대 노인들이다. 여행사에서 데려다주면, 그걸로 감지덕지해야 한다. 혹 사나운 가이드가 화라도 내면 벌벌 떨면서, 고분고분해지는 천하의 약자다. 젊은이들이 쉽게 가는 맛집도, 카페도 엄두를 못 내는 나이. 나로 인해 불가능한 세상이 가능해졌다. 뒤꿈치 쪽이 띵띵 부었다. 벌레에 물린 것 같은데 부풀어 오르더니, 열이 난다. 방치하면 종기가 되고, 고름이 나올 것이다. 대수롭지가 않다. 책임져야 할 사람이 있다. 맘 편히 종기가 자라날 수 없다. 아플 수도 없는 몸이 됐다. 나의 일상은 송두리째 사라졌다. 매일 하던 명상도, 운동도 없다. 내가 먹고 싶은 음식도 의미가 없다. 아니, 먹고 싶지도 않다. 자냐? 아침 여섯 시 반이면 카톡으로 문자가 울린다. 일찍 일어난 어머니, 아버지는 참다, 참다 문자 메시지를 보내신다. 그 시간이 여섯 시 반. 나는 득달같이 일어나서, 어머니 아버지 방으로 간다. 함께 동네 마실을 간다. 숙소에서 백 미터만 벗어나도 돌아가야 할 숙소를 뒤돌아 보신다.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 아들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야. 말뽄새도, 으스대는 꼴도 못 마땅하지만, 아들이 있어서 든든하시다. 숨이 막힐 때가 있다. 두 분만 한두 시간이라도 나갔다 오시면 좋으련만. 방에 갇혀서 유튜브만 보신다. 나갈까요? 이 말만 목이 빠지게 기다리신다. 애초에 한 달 살기는 이런 게 아니었다. 단골집 몇 곳을 알아서 가시고, 알아서 음식도 사드시고, 집에 돌아와서 자랑도 하시고. 재밌으셨어요? 내일은 이리로 가보세요. 숙제를 내주듯 어딘가를 추천해 주는 '한 달 살기'를 상상했다. 우리끼리는 죽어도 못 가겠다. 이렇게 잡아떼실 줄 몰랐다. 새로운 가게나 음식에 눈길 한 번 안 주실 줄 몰랐다. 무조건 아들과 붙어 있어야 한다. 없으면 유튜브. 적응 중이다.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을 것도 알았다. 예상대로 흘러간 여행은 지금까지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한 달 살기는 다음 여행, 다다음 여행에서 가능할 것이다. 내일 당장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백 살, 백이십 살까지 살 수도 있다. 평균의 수명만 믿어선 안 되는 시대가 됐다. 노인들이 한없이 젊어지고 있다. 죽는 사람은 열심히 죽지만, 산 사람은 어이없이 쌩쌩하다.
포기할까?
차가 너무 막힌다. 이미 거대한 나무 카페에서 차 한 잔을 했다. 즐거움도 힘 조절이 필요하다. 좋은 곳에서, 더 좋을 곳을 보는 것보다는, 그 좋은 곳을 내일로 미루는 편이 낫다. 땅 형님의 차가 있을 때 열심히 다녀야 한다.
-다 와가요. 다 와가요.
오후 두 시. 아무거나 먹자. 아버지는 이미 언짢아지셨다. 아뇨. 아무도 포기할 권리가 없으십니다. 내가 그러지 않을 거니까요. 병적으로 어머니, 아버지의 웃는 모습에 집착한다. 수집을 하듯, 행복한 표정을 보고 싶댜. 모으고 싶다. 갈래(Galae)는 꽃으로 만발한 식당이라고 한다. 쉴 틈을 주지 않는 황홀에 충격을 받으셔야 한다.
-거의 다 왔어요.
거짓말이다. 아직도 십 분 이상 남았다. 혼자만의 욕심으로 다리를 떤다. 치앙마이는 살 곳이 못 된다. 그런데 또 왜 이리 갈 곳이 많을까? 끝까지 저주할 수 없도록, 무언가가 등장한다. 항상 그랬다. 아마, 갈래가 그런 곳이 될 것이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나의 울림이 또 누군가의 울림이 될 걸 믿으면서요. 세상이 꽉 막힌 상태지만, 그 너머의 빛을 함께 볼 수 있었으면 해요. 보이지 않으니까, 애써야죠. 그러면 보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