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 흐드러진, 매일매일이 봄날인 식당 갈래
-내가 언제 사진 찍겠다고 그랬냐? 어? 어?
식당에 앉기도 전에 아버지는 이미 밥 먹을 기분이 아니셨다. 아비 말이 말 같지 않은 아들놈을 어찌해야 하나? 주차할 곳도 없어서 한참을 더 들어가야 했다. 넓은 주차 공간이 차로 빽빽하다. 인구 십오만 명의 작고, 작은 도시에 이런 거대한 식당을 채울 손님이 있다. 불가사의한 도시다. 그래도 결국 주차를 했고, 꽃이 만발한 식당 갈래(Galae Restaurant)에 도착했다. 꼼짝도 안 하는 차들이 천천히 움직일 때마다, 주먹 땀을 비벼댔다. 원하는 곳에 왔으니, 작은 축제다. 당장은 기뻐만 해야 한다. 어머니는 식당이고 뭐고 화장실이 급하시다. 이왕이면 좋은 자리에 앉고 싶다. 나 역시 마음이 급하다. 땅 형님이 먼저 자리를 잡긴 했다. 꽃 박람회처럼 조금은 인위적인 꽃 언덕이 여기저기 만발 중이다. 푸르고 평평한 저수지까지 펼쳐져 있다. 꽃들은 무조건 신선해야 해서 냉기를 뿜는 에어 커튼이 사방에서 쏟아진다. 백 개는 족히 넘는 식탁들이 손님으로 꽉 차 있다. 어머니, 아버지에겐 자극적인 곳이 최고다. 나는 이 많은 손님들, 정신없음이 반갑다. 예상대로 어머니, 아버지는 이게 다 뭔가 싶어 어안이 벙벙하시다. 그 와중에도 오줌보가 꽉 찬 어머니는 화장실을 찾으셨고, 큰 일을 보시는지 나올 줄을 모르신다. 드디어 어머니가 나오신다. 어서요. 빨리요. 빨리 앉자고요.
-여보, 이리 좀 와 봐. 여기가 말이야.
-아버지 우선 좀 앉죠. 사진은 이따가 제가 찍어 드릴게요.
-내가 언제 사진 찍겠다고 그랬냐? 어? 어?
아버지는 자리에 앉자마자 괘씸한 아들을 꾸짖으신다.
-여기가 율동 공원이랄 비슷한데, 율동 공원보다는 작아. 그 말을 하려고 했다. 아비 말을 끊어? 버르장머리하고는...
아버지의 말씀을 마저 듣고 나니, 더욱 시시했다. 차라리 사진을 찍고 싶다고 흥분하는 쪽이, 나의 관심을 더 끌었을 것이다. 분당 율동 공원과 비슷하다. 아버지가 작심하고 내놓으신 화제는 그거였다. 어머니를 꼭 곁에 두고서 해야 할 말씀이었다. 무용하다. 재미없다. 아버지는 잠시라도 주인공이고 싶다. 나이를 먹을수록, 아이에 가까워진다. 그런데 아이처럼 예쁘지 않다. 방긋 웃기만 해도 자지러지는 관객이 없다. 해맑게 감사하는 것도 서툴다. 늙음은 쓸쓸하고, 마냥 불리하다. 강조하지만 나는 착한 놈이 못된다. 싹퉁머리 없는, 지가만 잘난 줄 아는 놈이다. 나를 위해서 이 여행이 시작됐다. 24시간 어머니, 아버지 똥기저귀 갈아줄 자신이 없어서, 당신들의 뇌가 더 망가지기 전에 자극을 주고 싶었다. 당혹스럽고, 놀라운 상황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던져두는 것.
의지하는 사람, 의지가 되는 사람. 누구라도 후자를 택할 것이다. 언뜻 의지하는 쪽이 편해 보이지만, 자존감은 아래로만 내려간다. 나의 늙음을 상상한다. 나를 보살펴 줄 누군가는 없을 확률이 높다. 혹시 있다고 상상하자. 그 존재가 나보다 옳고, 잘나고, 젊다면 그 인간이 너무도 얄미울 것이다. 언제나 완승인 상대의 관대함, 그 바른말이 너무도 고깝다. 나는 어머니, 아버지에게 얼마나 얄미운 존재인지 명심해야 한다. 바른말은 얼마나 쉬운가? 나는 이 모든 고생이 감사하고, 감사해야 할 일임을 깨달아야 한다. 모든 출구가 봉쇄된 채, 아들의 입만 바라보신다. 사지가 멀쩡하지만, 입을 꼭 다물고 있어야 한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모든 새로움을 안으로만 삭혀야 한다. 고립감 속에서도, 어떻게든 존재를 드러내고픈 몸부림은 당연하다. 환영받는다는 것, 우기지 않는다는 것, 오줌을 참는 것이 일흔이 되면 두 배, 세 배 더 어렵다는 것을 뇌의 실핏줄에 꾹꾹 각인시킨다.
-아버지, 이 새우튀김은 텃만꿍이라고 해요. 새우살만 다 긁어서 튀겼어요. 그냥 먹어도 될 걸 갈았어요. 얼마나 귀한 요리인지 아시겠죠? 조선시대 임금도 이런 요리는 못 먹어봤어요.
아이에게 당근을 먹이려면, 농장에서 당근을 뽑게 하듯, 요리에도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화를 내기 위해 이곳에 온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만발한 꽃들은 참 붉어서, 아내의 립스틱 색깔도 흐릿해 보일 정도다. 이런 꽃 천지에서, 태국의 진수성찬이 끝없이 나온다. 알겠다. 알겠다. 네 놈이 어쭙잖게 아버지를 달래는 걸 모를까 봐? 알면서도 속아주겠다. 튀긴 음식은 다 느끼하다만, 새우살만 으깼다니까 먹을 만 하구나. 알고 있는 맛이라, 헛구역질은 안 나는구나. 부모 생각하는 마음도 안다. 모르는 척할 뿐이다. 잘 먹겠다. 아들아. 나는 이렇게 화려한 세상을 몰랐다. 모든 게 처음이라, 서툴 뿐이다. 다음에 오면, 감동하는 법도 더 쉽겠지. 너나 나나 연습을 하고 있다. 연습하는 순간이 가장 재밌고, 조금은 더 어려운 법. 서툴러서 더 재밌는 시간이구나. 모르는 척한다고, 모르는 게 아니란다. 알겠냐? 아늘 녀석아!
PS 매일 글을 씁니다. 한국의 상황이 많이 안 좋습니다. 어머니, 아버지와 다녀온 1월 여행이에요. 작은 위로가 된다면, 저의 글이, 저의 하루가 참 기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