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 하이 리조트 무척 예쁩니다. 강추
베란다 하이 리조트에 이렇게라도 왔다. 감개무량하다. 이틀 정도는 오성급 호텔에서 자기. 처음 계획은 그랬다. 하루 방 값이 25만 원이 넘었다. 매일 여행기를 각종 SNS에 올립니다. 자, 어서 내게 달려드시오. 블로그에, 페이스북에 광고를 올렸다. 여행 관련 SNS 인플루언서들이 그리 돈을 잘 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어디가 어때서? 야, 나도 예전엔 잘 나갔어.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여행을 하는 중년. 오히려 돈 되는 이들은 중년이고, 노년이지. 내 여행은, 여행기는 분명 가치가 있을 거야. 작가 양반, 이왕이면 우리 숙소에서 머무시오. 우리 여행사에서 무엇을 도울 수 있을까요? 이런 문의가 빗발칠 줄 알았다. 문의는 0건. 착각을 해도, 민망하고, 파렴치하게 했다. 잘 나가는 여행 스타들은 예쁘고, 젊고, 사진도 공을 들인다. 나는 예쁘지 않고, 잘 생겼(다. 양심은 있어서 괄호로 한 번 막음). 늙고, 보잘것없는, 오십이 내일 모레인 나는 매일 열심히 사진과 글을 올려도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늙은 사람은 열광하지 않고, 젊은 사람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그런 주제에 뭘 믿고, 자, 내게 돈을 쓰시오. 여행 경비를 풀어 보시오. 뻔뻔하게 구걸을 했을까? 구걸이라고까지 할 필요는 없겠다. 나의 가치가 도움이 될 만하면 사시오. 제의했을 뿐이니까. 제의에 대한 답이 0이 되니, 염치없는 제의가 돼버렸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치앙마이의 작은 호스텔 사장은 내게 도미토리 한 칸은 주겠다고 했다. 4,5일은 재워주겠다고 했다. 부모님은 절대 공짜로 안되고. 나 하나 재워주는 건 간신히 가능하다고 했다. 나의 가치는 하루 만 원 정도인 셈이다. 나름 어려운 사정인데, 큰 마음먹고 제의했을 것이다. 그 사장에게 미안하고, 내 처절한 가치에 미안하다. 일이 잘 풀렸다면 치앙마이를 대표하는 베란다 리조트(Veranda high resort Chianggmai)에서 이삼일 묵었을 것이다. 계획대로 풀렸던 여행은 없었다. 그랬던 삶이 없듯이... 약간 착잡할 뿐이다.
땅 형님의 차가 있어, 이렇게 근사한 호텔에 왔다. 숲 속에 자리 잡은 화려한 리조트는 골프 카트를 대령했다. 식당 손님도 이걸 타고 가야 한다. 시작부터 좋다. 평생 골프채 한 번 쥘 수 없는, 노동자 계급 우리 가족은 이미 신이 났다. 뷔페 시간은 삼십 분 남짓 남았다. 본전을 뽑겠다며 접시마다 채워서는 테이블 위에 쌓아둘 어머니, 아버지가 눈에 선하다. 오늘만큼은 귀족처럼 먹어야겠다. 뷔페 안 먹을게요. 메뉴판을 가져 오시오. 신분 상승 놀이. 어머니, 아버지가 갑작스레 부자로 보이는 게 그렇게나 좋다. 반디앤블루 사장님이 밥값에 보태라고 십만 원을 보내주셨다. 여러분이 먹고 싶은 걸 대신 먹어드립니다.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에서, 치앙마이에서 나는 봉이 김선달처럼, 밥값을 구걸했다. 구걸은 어쨌든 추잡해 보이니까, 돈을 보내면 먹어 드리기는 하겠소. 구걸 아닌 척했다. 뉴욕, 샌프란시스코는 물가가 너무 비싸서 염치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대신 먹어달라니? 그런 뻔뻔한 사기꾼이 어디 있어? 그런 사기꾼이 하필 나라니. 그랬는데, 제발 돈을 부쳐줄 테니, 지금이라도 먹어 주세요. 이런 메일이 정말 많이 왔다. 나부터 놀랐다. 자학할 필요 없겠는데? 아프리카 TV나 먹방 유튜버들도 다 그런 식으로 먹고살잖아? 꼰대처럼 과거에 머물러서는, 고리타분한 우아함에 목을 매다니. 하지만 그 말을 다시 꺼낼 용기가 안 났다. 내 욕심이 아무래도 먼저 보인다. 그래서 못 하겠다. 내가 돈도 있고, 인기도 많다면, 껄껄껄 정 아쉬우면 돈을 보내시든가요. 능글맞아질 수 있을 것이다. 가난하니까, 예민함만 기승을 부린다. 그 어떤 여행사, 여행업 종사자들도 외면하는 처지에, 함부로 독자에게 손 벌리고 싶지 않았다. 날아들 욕을 감당할 자신도 없었다. 장성 축령산 편백나무 숲 반디앤블루 사장님 부부가 십만 원을 보내주셨다. 언제쯤 그 돈을 쓸까? 여행 내내 즐겁게 고민했다.
오늘이다. 파스타와 피자, 조각 수박 위에 올라온 특이한 샐러드, 클럽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식사가 나오기 전에는 수영장에 어머니, 아버지를 세우고 이렇게도 찍고, 저렇게도 찍어 봤다. 자본주의는 불공평하다. 사실 내 이메일을 구독하는 독자들은 앞선 계층이다. 돈이 많지는 않을지라도, 문화 콘텐츠를 과감히 소비하는 선구자들이다. 가끔 자신을 위해 비싼 밥 한 끼, 호사스러운 하룻밤을 보낼 용기는 있을 것이다. 어머니, 아버지에겐 그런 세상 자체가 없다. 꿈도 꿀 수 없다. 겪어 봐야 꿈도 꿀 수 있다. 우유배달로, 공장 노동자로, 곱창을 씻는 하청업체 직원으로 일을 한 아버지에겐 아예 없는 가능성이다. 주부로 평생 사신 어머니도 다르지 않다. 나는 어머니, 아버지를 모시고 인형 놀이를 한다. 어릴 적 내 효심은 인형놀이에서 나왔다. 고추 달린 놈이 왜 인형이냐? 나는 그 재밌는 종이인형 놀이를 할 수 없었다. 이십 원짜리 종이 인형을 몰래 사서는 종이로 만든 옷장에 옷들을 넣었다. 옷장은 내가 직접 디자인했다. 물론 세울 수 있는 건 아니고, 지갑처럼 눕는 저질 제품이었다. 침대를 만들어서 공주를 재웠다. 이게 다 어머니 것이다. 어머니를 공주로 만들어 드려야지. 왕비로 만들어 드려야지. 아버지는 사실 꿈에 등장하지 않았다. 우유배달을 끝내고 귀가하면, 주무시기만 하는 아버지였다. 와 닿는 가족 구성원이 아니었다. 이 화려한 호텔에서 가장 들뜬 사람은 나다. 베란다 하이 리조트는 상당히 잘 지어졌다. 태국 드라마에서 상류층 연애 장면에 곧잘 등장하는 곳이다. 로비라든지, 독서실이라든지 참신하고, 적절한 공간에 눈이 돌아간다. 어머니, 아버지는 상류층의 삶을 살짝 맛보신다. 여왕이 되어, 왕이 되어 이 화려한 공간을 우아하게 거니신다. 그거면 됐다. 상류층이 매일 행복한 것도 아니고, 노동자 계급이 늘 구차한 것도 아니다. 잠깐만 엿보고, 제자리로 돌아와도 괜찮다. 모든 사치와 쾌적함은 형식이다. 형식이, 본질 위여서는 안된다. 허망함은 이런 식으로 느껴야지. 잠깐만 가질 것. 모든 가치는 다 '잠깐만' 카테고리다. 아닐 거라고 착각하는 인간만 불행해질 뿐이다. 하루만 느껴도 된다. 조금 길게 누려도 결국 '잠깐만'인 거니까. 조금은 느끼했을 텐데도 피자를, 크림 파스타를 척척 드셔 주신 아버지께 특별한 감사를 드린다. 조화로움엔 누군가의 희생이 늘 숨어있다. 좋아서, 좋은 게 아니다. 몇몇의 침묵엔, 암묵적 비동의가 있다. 밥값은 딱 십만 원이 나왔다. 어머님을 모시고 반디앤블루 펜션에서 묵은 적이 있다. 한국에서 묵은 가장 황홀한 밤이었다. 어머니를 기억하는 사장님 내외의 마음이, 대단한 한 끼가 됐다. 글쟁이로, 여행하는 사람으로 나처럼 복 많은 사람도 없지 싶다. 늘 아슬아슬하지만 귀신처럼 알고, 적재적소에 도움들이 전해진다. 그 덕에 나는 온전히 까불면서 산다. 나의 가치는 아무래도 하루 만 원은 더 되는 것 같다. 이 글을 기다리는 여러분들이 나의 가치다. 비싼 척하면서 살겠다. 고백하자면 내가 생각하는 가장 비싼 작가는 박민우란 놈이다. 짐작하셨겠지만
PS 무슨 내용인가 싶으시죠? 원래는 구독료를 받고 쓴 글인데요. 매달 받는 돈으로 살고 있습니다. 사실은 몇 개만 올리려고 했어요. 돈을 내신 분들께 죄송하기도 해서요. 그런데 글 몇 개를 올리고 나니까, 반응이 너무 폭발적이어서요. 네, 즐겁게 읽어 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