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하루여야 할까요? 저와 함께 시작하는 하루는 어떨까요?
저는 글을 쓰는 사람이고요. 매달 구독료를 받는 '박민우의 황홀' 발행인입니다.
보통은 여행기를 담아요. 모든 사람이 여행을 할 수 없으니까요.
제가 대신 어딘가를 여행하고, 그 느낌을 글로 전하죠.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상을 뒤덮고요.
저는 방콕의 방에 갇혔습니다.
방 안에만 있어야 해요.
갈 곳도 없는 시간이 됐어요.
저는 늘 어떤 일이 일어나면,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방콕에 갇혔으니, 방콕을 전해야죠.
답답한 한국에선, 제게는 답답한 방콕이 답답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리고 코카서스 여행기를 보내드립니다.
아시나요?
저의 여행기는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어요.
모르셨죠? 지금이라도 박민우 작가를 검색해 보세요.
1만 시간 동안의 남미, 1만 시간 동안의 아시아, 지금이니까 인도, 지금이라서 훈자.
모두 너무너무 재미있는 여행기죠.
매일 저의 일상과 함께, 코카서스 여행기를 전합니다.
코카서스 3국, 아제르바이잔, 조지아, 아르메니아를 다녀온 여행기예요.
나중에 책으로도 나올 거예요.
구독자 중에는 엄청난 지지를 해 주시는 분도 있고요.
한 달만 구독하고 때려치우는 분도 계시죠(계속 구독하시는 분의 비율은 6,70%입니다).
4월 방에 갇힌 글쟁이의 몸부림을 기대해 주세요.
코카서스 여행기도 올립니다. 이런 여행기구나. 감 잡히실 테니까요. 저라면 구독할 것 같아요. 매일 한국에서 방콕의 나른함과 궁금하기만 한 코카서스를 느끼는 하루가 되는 거니까요.
(여기서부턴 코카서스 여행기)
내가 뭘 잘 못 했다는 거야? 주인 없을 때 손님이 들이닥치면, 쫓아내라는 거야? 며칠 전에도 여기서 묵었다잖아? 자리를 비운 건 너야. 호스텔을 운영해도 잠은 편히 자야지. 집에 가서 자는 거야 네 자유지. 아무도 없으면 손님은 불안해질 수밖에 없어. 아르바이트 한 명 둘 처지도 못 되는 거지? 하긴 하루 방값 5천 원으로 뭐가 남겠어? 그러니까 손님 한 명이라도 더 받으면 좋은 거잖아. 새벽 다섯 시에 누가 문을 두드리는데, 나가본 내가 잘못이야? 함부로 재우면 어떻게 하냐고? 함부로 재우다니? 재워도 되냐고 문자 메시지까지 보냈어. 처자느라고 메시지 확인 안 한건 너야. 뭐? 나 때문에 십 년은 늙은 것 같다고? 이 새끼가 터진 입으로 나오면 다 말인 줄 알아?
-아, 내 말은 아무나 들였다가 손님 짐이라도 없어져 봐. 이렇게까지 스트레스받았던 날은 처음이라고.
예레반에서 세 번째 숙소다. 예레반에서 이렇게 오래 머물 줄 몰랐다. 아예 한 달을 머물까? 슬립 스튜디오(Sleep studio). 별 거 없는 싸구려 호스텔이 나를 흔들었다.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만났던 일흔일곱 살 니시무라 시게요시 씨도 이곳에서 다시 만났다. 이란에서 온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 레바논에서 온 대학생, 벨기에에서 온 군인, 러시아에서 온 삼총사도 이리로 기어들어왔다. 삼총사는 새벽에 술을 마시자고 졸랐다. 피곤하다니까 한 놈이 칼을 들고 왔다. 이 칼이 어디를 쑤실지 모른다며 낄낄댔다. 원래 곰을 찌르는 칼이지만, 사람 배에도 쑥쑥 잘 들어간다고 했다. 말로 옮기면 섬뜩한데, 분위기는 따뜻했다. 내내 경계하고 말도 못 걸던 세 놈이 술이 오르자 내게 말을 걸고, 나를 붙잡아두고 싶어 했다. 자기한테 근사한 칼이 있다는 걸 자랑하고 싶어 했다. 나는 그대로 돌아가서 잤고, 내 배는 멀쩡했다. 사장은 저녁 열 시쯤 퇴근해서 오전 열 시쯤 숙소로 출근했다. 사장놈이 없을 때는 내가 사장이어야 했다. 거실과 주방의 불을 끄고, 아무도 안 건드리는 물병들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한 놈이라도 정신 차려야지. 아무도 이 숙소를 욕하며 떠날 수 없다. 왜냐면, 내가 사랑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트라팔가 스퀘어를 꼭 닮은 공화국 광장에서 매일 분수쇼가 펼쳐진다. 매일 간다. 음악에 맞춰 분수들은 더 높이 솟구치기도 하고, 열을 맞춰 파도를 타기도 한다. 불꽃놀이를 이렇게 넋 놓고 본 적이 없다. 천 원씩 입장료를 받는다고 해도, 매일 왔을 것이다. 분수 주위로는 사람들이 빽빽하다. 집중해서 볼 필요 없는 예레반 사람들은 주위를 동그랗게 걷는다. 관광객들은 시시각각 바뀌는 분수의 색과, 모습에 말려든다. 어떤 날은 클래식 음악이 나오고, 어떤 날은 팝 음악이 나온다. 어떤 날은 영화 음악이 내내 울려 퍼지기도 한다. 음악의 비트에 맞춰 적절하게 물줄기가 흔들리고, 사라진다. 오늘은 분수쇼가 끝나도 숙소로 바로 돌아가지 않을 참이다. 사장놈 꼴도 보기 싫다.
-어이, 민우.
매일 이곳에서 마주치는 인도 놈들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이들은 아르메니아가 아메리카인 줄 알고 왔다. America나 Armenia나. 스펠링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천만 원, 이천 만원을 사기꾼에게 뜯기고, 매일 분수쇼를 보러 온다. 일자리도 없고, 돈도 없다. 이제 곧 비자가 만료된다. 인도로 추방되어야 한다.
-우리랑 여행 안 갈래? 비용은 다 대 줄게. 제발!
비자 연장을 위해 다른 나라를 다녀와야 한다. 최근에 번번이 재입국이 거절되고 있다. 한국 여권이 있는 나랑 같이 국경을 넘으면, 한국 사람이 내 친구요. 이 말 한마디로 무사할 거라고 믿는다. 등신 새끼들. 인도 등신들이다. 한숨을 쉬는 것 같더니, 입을 벌리고 분수를 본다. 나를 찾아서 분수 광장을 한 바퀴, 두 바퀴 돈 걸 안다. 어떻게든 되겠지. 한국 놈이 우리랑 같이 가줄 거야. 물이 튄다. 아, 차가워. 스마트폰을 닦는다. 생각났는지 아들 사진을 내게 보여준다. 인도의 아이들은 눈동자가 유난히 크다. 흰자위가 거의 보이지 않는 까만 눈으로 웃고 있다. 너희는 쫓겨날 거야. 아르메니아를 아메리카인 줄 알고 왔으면 이제라도 정신 차려야지. 친구 여권이 어떻게 너희를 무사히 통과시켜주는 이유가 되니? 평생 가난과 빚에 찌들어 살게 될 놈들이다. 그 어떤 행운도 이놈들 몫이 아니다. 나는? 이 인도 등신들보다는 똑똑한 나는? 나는 호텔 사장놈에게 잘못했다는 말을 듣고 싶다. 나의 자발적인 애정을 인정받고 싶다. 그렇게 되면 나는 다시 완전한 존재가 되어, 마음껏 오지랖을 떨 수 있다. 눈 앞의 분수가 손에 잡혀서 아름다운 게 아니듯, 우리의 모든 거짓은 아름답다. 한국 등신과 인도 등신. 우린 진실을 보지 않은 능력자들이다. 그러므로 꼭 붙어 있다. 가장 아름다운 밤이, 우리의 머리맡에서 한참을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