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그리워하는 사람들 덕에 저는 무사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곧 떼부자가 될 박석천과 한 컷)
이 글은 2019년 12월에 쓴 글입니다.
-민우, 3월에 뉴질랜드에서 나 결혼해. 꼭 와줘!
야, 이 미친놈, 아니 미친 어르신(나이가 저보다 많을 거라 추정)아. 항공권 책임질 테니, 걱정 말고 오소서. 이래야지. 딴 나라 귀빈 초대하면서, 입으로만 오라고 하면 끝이야?
우린 딱 두 번 마주쳤어요. 라오스 방비엥, 베트남 하노이에서요. 하노이에선 같은 도미토리에 묵었죠. 코미디언이래요. 극장에서 스탠딩 코미디를 하는 건지, TV에도 나오는 연예인인지는 몰라요. 안 궁금했으니까요. 스페인 카나리아 제도에 사는데, 말 못 해 입 근질근질한 떠벌이더라고요. 먹잇감 찾듯 사람들을 바라보고, 눈만 마주치면 조잘조잘. 비슷한 인간끼리는 호감 느낄 수가 없죠. 한 마디라도 더 해야 하는 건 저도 마찬가지라서요. 이 인간이 좀 얄밉더라고요. 왜, 왜 그런 저를 아직까지 찾죠? 자기네 집에 놀러 오라는 말도 어찌나 자주 하던지요. 무서운 사람 아닌가요?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걸까요? 저 자는 방에 몰래몰래 들어와서 배 가르고, 장기 하나하나 팔아먹으려는 거겠죠? 왜 멋대로 결혼식에 초대하냐고요? 호세(Jose) 형님, 크리스마스에, 새해에, 결혼식에 저를 떠올려 줘서 고마워요. 관종(관심종자)이라, 스치듯 만나도, 치명적으로 호감 가는 저란 놈이 참 자랑스럽군요. 3월에 뉴질랜드를 제가 어찌 가요? 하긴 또 모르죠. 천만 원이 생기면, 생각해 볼게요. 사실 그 돈이면, 멕시코, 쿠바를 먼저 가야 맞지만, 뉴질랜드가 운명이구나. 눈 딱 감고 비행기 티켓 끊을게요. 3월의 뉴질랜드가 살짝 궁금하네요. 멋지고 멋지다는 밀포드 트레킹도 하고요.
아, 그리고 석천이, 박석천이.
어제는 석천이와 밥을 먹었네요. 이 놈은 이제 말 놓기로 했어요. 76년생이니까, 저보다 세 살 어린 친구죠. 그래도 중년이죠. 제 주거래 카페에 커피값을 남겨놓고 간 장본인이죠. 오늘은 커피값 안 내도 돼요. 카페 직원이 웃으며 말할 때, 뭔 소리인가 싶었죠. 긴 편지 한 통을 맡겨 뒀더군요. 야, 이 친구에겐 제가 완전 연예인이더라고요. 그럼 커피값이 아니라, 한 달 식비를 맡겼어야죠. 감시당하는 건가? 우선은 섬뜩했고, 그래도 여가까지 와서 편지를 쓰고, 커피값을 주고 간 마음이 고마웠고, 사실은 내가 올까 봐 종일 기다렸다는 사연에 뭉클하기까지 했죠.
사람 외모로 평가하면 안 되지만, 잘 생겼더군요. 남자라서 사실 마음이 편했어요. 여자분이면 제가 어떤 식으로든 비슷한 호감을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기지 않겠어요? 거의 맞선 분위기잖아요. 아, 물론 아이 둘 데리고 오는 경우라든지, 남편과 함께라든지, 나이 차이가 아예 많든지 하면 예외죠. 두 아이의 아빠에, 멀쩡한 사업가 박석천은 실리콘을 팔아요. 사업은 잘 모르니까, 그냥 그런 줄만 알아요. 원래는 독일계 회사에 다녔는데, 회사 비리를 나서서 알리다가 잘려요. 오지랖 넓은 정의의 화신인 거죠. 먹고살려고, 이 나라, 저 나라 다니면서 실리콘을 팔아요. 동남아시아 사업이 그래요. 약속 안 지키기로 유명하죠. 납품까지 다 약속하고, 이미 물건은 배로 가는 상황인데도 사장이 입 딱 씻고, 연락을 씹어요. 사장과 일대일로 담판 짓고 따낸 계약이라 철석같이 믿었는데요. 사장 바짓가랑이 잡고 사정사정. 저라면 탈모로 머리털 뭉텅이로 빠지거나, 우울증 약 일주일 치를 하루에 털어 먹거나 했을 거예요. 씩씩한 의왕시의 두 아이 아빠는 높기만 한 장애물을 여러 번 넘기고, 잘 살고 있더군요.
이번엔 태국 삼성 공장에 납품할지도 모른다는 좋은 뉴스를 가지고 왔어요. 회사 차에 기사까지 대동하고 와서 밥을 사더군요. 거래처 회사 차지만, 얼마나 멋져 보이던지요. 저는 아무리 어려도 말을 안 놔요. 저를 위해서죠. 일정한 거리가, 아름다운 질서를 만든다 믿죠. 재작년인가? 서울 북촌동에서 강연이 있었어요. 꽤 추운 겨울이었죠. 이놈이 한 자리 차지하고 눈을 말똥거리는 거예요. 태국에 올 때나 연락하는 놈인 줄 알았더니요. 한국에서도 내 얼굴 한 번 더 보겠다고, 먼 걸음을 했더군요. 강연 끝나자마자 약속 때문에 서둘러 나가더라고요. 회사에서 잘리고, 배신감이 이루 말할 수 없던 시절에요. 자기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회사 사람들이 결국 다 외면할 때 제 책을 봤대요. 인생의 위로가, 저의 글에 있더래요. 북촌에서 이 놈을 딱 본 순간, 말을 놔야겠단 생각을 해요. 오래 볼 거면, 편해야죠.
맛있는 거 사주죠. 가끔은 차비도 주죠. 제가요. 이리 접대를 받는 사람입니다. 자랑입니다. 큰 자랑입니다. 지금까지 어떤 식당보다 더 좋은 태국 식당에서요. 네 시간의 수다와 만찬을 즐겨요. 우리가 큰 거 바라고 사는 거 아니죠. 나를 찾는 사람, 나를 잊지 않는 사람과 격정적이지 않은 정도로 서로를 응원하면 족해요. 한국에서 나를 보러 온 건 아니지만, 나를 볼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으로 비행기를 타는 사람이 제겐 있어요. 저는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죠. 그러니까, 지질함도 다 드러내며 살죠. 이런 응원을 통해, 수혈을 받는 사람이니 용기가 생겨요. 삼성이랑 잘 되면, 만다린 오리엔탈 애프터눈 티를 마시자. 너도 뭐 촌놈이니까, 무지무지 좋아할 거야. 형이니 되니까 그런 데 가자고 조르는 거야. 사업한답시고 술이나 퍼마시고, 이상한 데 가지 말고, 형이랑 우아하게, 오래오래 차를 마시자. 형이 전생에 귀족, 왕족이었거든. 사실 네가 내 덕에 이런 곳도 와보는 거야. 돈만 냈다고, 네 덕에 왔다고 생각하면 안 돼.
PS 매일 글을 씁니다. 여러분을 만나는 순간, 저는 폭발합니다. 새로운 존재가 되는 거죠. 읽고, 읽히는 것. 엄청난 에너지고, 마찰이라고 생각해요. 그 마찰로 세상은 따뜻하고, 환해지죠. 지금 우리는 조금 더 밝아진 세상에 살고 있어요. 글을 쓰고, 읽었을 뿐인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