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을 위한 최고의 배려는 고통이 아닐까?

저는 고통 무섭습니다. 그런 거 없이 날로 먹고 쓰고 싶습니다만

by 박민우

두 달 전에 쓴 글입니다. 감안하고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200311_115626.jpg

흉흉하다는 말을 요즘 같은 때에는 써도 되겠죠? 설마 확진자가 백 명까지 가겠어? 그랬더니요. 이젠 이천 명이 눈 앞이네요. 사망률도 낮다더니요. 사망자는 열세 명을 돌파했고요. 결국 면역력이야. 세상 바이러스를 어떻게 다 피할 수 있겠어? 얕은 지식으로 까불던 저는요. 이제는 웃음기가 사라졌어요. 큰일 났구나. 휩쓸려서 벌벌 떠는 건 우스운 거야. 홀로 공포에 저항하며 의연할 줄 알았더니요. 저의 바닥은 금세 드러나네요. 겁나요. 제가 아플까 봐 겁나는 게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버티나. 그걸 생각하니 너무 겁이 나요. 저도 분당에서 파스타 집을 했었어요. 꽤 장사가 되는 집이었는데도, 주문이 없으면 그렇게 지루했어요. 별 생각이 다 들었죠. 생계를 꾸려나가는 사람들은 얼마나 피가 마를까요? 지금 제 글을 읽는 분들도 밤잠 못 주무시죠? 먹고 살 걱정, 아이들 걱정, 이 답답한 분위기 걱정으로요. 잘 먹고, 잘 산다. 이게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 새삼스러우시죠? 이러다가 정말 어떻게 되면 어쩌나? 어떻게 되긴요. 죽는 거죠. 죽기 전까지의 과정은 별로 품위 있지 못할 테고요.

서머셋 모옴, 로멩가리, 헤밍웨이, 마가렛 미첼, 알베르트 카뮈.

제가 좋아하는 작가들입니다. 저도 글 쓰는 사람이니까요. 누구보다 잘 쓸 자신 있어요. 그런데 이들의 작품을 보면, 아, 나는 못 쓸 수도 있겠구나. 움츠러들어요. 끝까지 가는구나. 끔찍함 중의 가장 끔찍함, 아픔 중 가장 지독한 아픔, 슬픔 중 애간장이 녹는 슬픔을 끝까지 들춰내요. 적당히란 걸 모르는 사람들이죠. 그 묘사의 생생함은 진저리가 쳐져요. 서두르지 않고, 흥분하지 않아요. 차분하고, 집요한 묘사로 보는 이들을 가지고 놀죠. 이들은 전쟁통에 살아남았죠. 마가렛 미첼의 남차 친구 헨리는 1차 대전 때 목숨을 잃어요. 육군 장교였거든요. 서머셋 모옴은 1차 대전 때, 영국 비밀정보부 M16 스파이였고요. 헤밍웨이는 스페인 내전, 세계 1차 대전에 참전했죠. 로맹가리는 나치 점령 당시 자유 프랑스군 일원으로 유럽과 북아프리카에서 활동했고요. 공군 대위로 2차 대전에도 참전했죠. 카뮈는 폐결핵으로 군입대를 거절당했만, 레지스탕스(독일 나치에 저항하는 프랑스 시민운동) 기관지인 '콩바'의 편집장으로 활동해요. 마가렛 미첼은 어릴 때부터 들어왔던 남북전쟁을 바탕으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완성하고요.


고전의 힘이기만 할까요? 과거의 작품이어서 대단한 걸까요? 병으로, 배고픔으로 언제든지 죽을 수 있는 세상. 밤이면 세상 빛은 소멸하고, 깜빡이는 호롱불 아래서 더듬더듬 읽고, 써요. 겨울바람은 날카롭고, 창문은 허술하죠. 터지고, 쓰린 손가락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가요. 언제고 허물어질 수 있는 육체를 명심하면서, 글에 자신을 걸죠. 글은 움직이는 생물이었을 거예요. 소리까지 들렸을 거예요. 오로지 글자뿐이었으니까요. 저는 터무니없이 불리해요. 즐거운 세상이 돼버렸어요. 유튜브만 클릭해도, 온 세상을 돌아다닐 수 있고, 어떤 노래든 들을 수 있죠. 영화를 보고, TVN 코미디 빅리그를 볼 수 있어요. 바깥은 환락과 불빛의 경연장이죠. 여기는 지구에서도 방콕이라고요. 섹스와 마약, 도박과 술. 마음만 먹으면 그렇게 쉬울 수가 없죠. 전쟁을 관통했던 그들의 절박함을 당해낼 수 없어요. 그래서 저에겐 상상력이 필요해요. 그때의 절박함을 조금이라도 훔쳐와야 해요. 내일이면 확진자가 이천 명을 돌파할 테죠. 병실을 못 구해서 길에서 죽는 사람도 생겨날 거예요. 백 명도 안 될 거라 생각했는데, 벌써 이천 명이니까요. 3월이 다 지나갈 때쯤이면 부모님과 나를 조여올지도 모르죠. 생계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들 뉴스로 도배가 될 테고요. 누구나 함부로 내뱉는 우울을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라요. 이 시간의 이유를 해석하고 싶어서요. 절망에 파묻히지 않으려면, 스스로 빛을 만들어야 해요. 그 빛 속에 머물면서, 감동하고, 감동을 전해야 하죠. 감히 여러분께 고전에서 느꼈던, 아, 나라면 못 썼을 거야. 그 지점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여러분께요. 세상에 없는 글이어야 해요. 나를 먹여 살리는 글에서 멈추고 싶지 않아요. 이런, 이런. 일종의 프롤로그가 됐네요. 우리의 3월 여행은 근사할 거예요. 우리의 시간은, 미래의 역사죠. 적지 않은 의미를 건너고 있어요. 함께요.


PS 매일 글을 써요. 우린 서로 만날 일이 없죠. 대부분은요. 그래도 제 글을 읽으면 아는 사람 같지 않나요? 그게 굉장히 신비로워요. 신비로우신 독자님들 반갑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여행 별거 없어요. 인연이 별거죠. 아주 특별한 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