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랏에서 받은 메일, 당신은 65억의 주인입니다

스팸 메일 아니라고. 아니라잖아욧

by 박민우

이 여행기는 2월에 다녀온 베트남 달랏 이야기입니다. 어서 빨리 코로나가 진정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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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마리째 모기를 죽였다. 잘 수 없겠구나. 도미토리 침대는 작은 상자 형태다. 머리통 쪽만 뚫려있고, 뚫린 곳은 커튼으로 가릴 수 있다. 요즘 이런 호스텔이 제법 많다. 답답할 것 같아도, 아늑한 느낌이다. 밀폐된 캡슐 호텔보다 낫다. 캡슐형 호텔은 TV에, 헤드셋에 이런저런 첨단 기술을 집어넣긴 했지만, 그래서 답답하다. 기존의 이층 침대는 삐걱삐걱, 사람이 오르내릴 때마다 흔들리고, 시끄럽다. 머리통만 뚫린 사과 궤짝 형은 장점이 많다. 오르내릴 때, 참으로 정숙하다. 발 쪽에는 작은 창까지 뚫려서 멀리 산봉우리가 그윽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여행 오기를 잘했다. 보상심리가 똑 떨어지게 충족될 것이다. 화장실 가는 순간만 빼고는 사과 궤짝에서 나가지 않고 있다. 나가기 싫다. 서양인이 장악한 호스텔이다. 신기하다. 물과 기름인가? 동양인은 씨가 말랐다. 왜 이 숙소를 택했냐면, 숙소 사진 중에 산 풍경 때문이었다. 태국 빠이에서 실컷 본 풍경이긴 한데, 심심하고, 자연 자연한 곳에서 철저히 쉬고 싶었다. 웬걸? 젊은 백인 남녀가 당구를 치고, 카드 게임을 하고, 요가를 하고, 눈빛을 발사하며 하룻밤 상대를 찾는 소굴이었다. 젊을 땐 백인에 대한 환상이 많았다. 영화배우들을 가까이서 보는 느낌이랄까? 웃통을 까고, 좁아터진 도미토리에서 덜그럭 덜그럭 섹스를 해도, 서양인이니까 멋스러웠다. 인종에 대한 환상은 이제 없다. 아니라고 우겨도, 나는 이제 늙었다. 성 호르몬으로 가득 찬 세상이 나는 좀 생뚱맞다. 잠이나 처자자. 그런데 모기떼가 나를 놔주지 않는다. 지랄 맞은 밤.

정기 구독 신청을 받지 않겠어.

이번 달은 쉬자. 늘 그렇듯 돈은 없다. 부모님과 여행하면서 탈탈 털어 썼다. 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 억지로 쓰고 싶지 않다. 부모님과 같이 오기를 했나? 무한한 설렘으로 오기를 했나?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있기를 하나? 그 유명한 수언흐엉 호수는 일산, 분당 호수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이다. 말끔한 첫인상도 사실 불만이다. 아기자기하게 누추할 줄 알았다. 말끔해서 불만이라니. 시비를 걸겠다는 건 아니고, 내 취향은 아니란 거다. 베트남은 낮은 의자, 다닥다닥 쌀국수, 매캐한 오토바이 매연이어야지. 나가봤자 설 연휴로 가게들은 싹 다 닫았다. 몇 개는 열었겠지. 시내까지 으슥한 길을 걷는 것도 싫다. 얌전히 자겠다는데, 모기들이 이 서늘한 달랏에서 왜 광분하냐고? 미친 세상, 미친 모기. 마음껏 떠드는 백인 놈년들에게 적개심을 품고 있다.

-당신은 신을 믿나요? 550만 달러가 생긴다면, 어려운 이들을 위해 쓸 수 있나요?

잠도 못 자서 서러운데, 이런 개소리 스팸 메일이 왔다. 페이스북이나 핫메일로 왔다면 지우고 말았을 것이다. 브런치로 왔다. Brunch는 작가들, 작가를 꿈꾸는 이들이 글을 쓰는 공간이다. 실제로 브런치를 통해서 수많은 프로젝트들이 성사된다. 나 역시 브런치를 통해 용인 고기리 별다섯 카페에서 한 달간 일한 적이 있다. 한 달에 사백 만원을 받았다. 잘리긴 했지만, 브런치에겐 감사하는 마음이 크다. 그렇다고 한들 550만 달러라니. 65억이라니. 그걸 내게 왜? 만에 하나 사기꾼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 정중하게 거절의 메일을 보낸다.

-저는 여행을 하며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자선구호 단체에 기부하시면, 선생님의 돈을 값지게 써줄 겁니다. 제게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저는 폐암 말기 환자예요. 의사 말로는 6주가 남았답니다. 그래요. 저에게도 당신 같은 아들이 있었어요. 이 돈을 모두 물려받아야 할 아들이 스물여섯 살에 세상을 떠났죠. 저는 당신이 이 돈의 임자라고 생각합니다.

다음날 이런 메일이 왔다. 눈물이 툭, 뺨을 타고 흘렀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글이 주는 작은 힘을 믿습니다. 우리는 모자라는 게 아니라, 채워주고, 채움 받기 위해 적당히 빈 자리를 남겨둔 거라 생각해요. 함께 채우고, 채워지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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