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랏이 문제가 아니다. 벼락부자가 코앞이다
이미 2월에 다녀온 여행입니다. 과거 여행기니까요. 적당히 몰입하면서 읽어 주세요.
지금은 스페인 산티아고를 걷고 있는 재현이는, 막노동으로 돈을 모은다. 집도 꽤 사는데 궂은일을 한다. 늦깎이 대학생이라 학교도 다녀야 한다. 오로지 여행뿐. 악착같이 일한다. 주말엔 짬짬이 국내 여행을 한다. 독자들과 한강에서 모임을 가진 날, 유일한 남자가 재현이었다. 용인 고기리 별 다섯 카페에서 일할 때도 찾아왔었다. 해맑고, 재밌는 친구다. 맛있는 걸 사줬다(뭘 먹었는지 기억이 안 나지?).
-산티아고 가기 전에 프랑스를 돌았어요. 파리 에펠탑 앞에 야바위꾼들이 있더라고요. 컵 세 개를 돌려서 돈 있는 컵을 찾아내는 거요. 마침 삼백 유로를 찾지만 않았어도, 구경만 했겠죠. 저 쉬운 걸 왜 못 맞추지? 열통이 터지는 거예요. 사람들이 해보라고 부추기기까지 하더라고요. 200유로를 한 번에 날렸어요. 컵에 돈이 없는 거예요. 아, 씨발. 본전이라도 찾자. 분해서 가던 길 돌아왔죠. 나머지 백 유로를 걸었죠. 본전만 찾으며, 뒤도 안 돌아보고 일어날 참이었죠. 네, 백 유로를 그렇게 마저 잃었어요.
먹는 밥도 아깝다. 똥도 싸지 마. 친조카였다면 혼내고, 화냈을 것이다. 딸 생각을 했단 말입니까? 재현이의 인스타그램에 댓글만 한 줄 달았다. 독보적으로 멍청하다. 나에게 말기 폐암 환자가 65억을 기증하고 싶어 한다. 나는 재현이와는 다르지. 모은 돈 다 못 쓰고 죽는 사람이 한둘이겠어? 말기 환자인 할머니가 매일 내 글을 읽는다고 생각해 봐. 어지간히도 발버둥 치며 사네. 짠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나는 이 놈에게 돈을 줘야겠다. 흥청망청 써도, 그놈 팔자인 거지. 돈 때문에 인생 망치면, 그게 또 글이 될 테니까. 요놈 글발을 보니까, 사람들을 들었다 놨다 하겠어. 마지막 순간까지 웃기고, 울려줘서 고맙네. 젊은이. 글 잘 읽었어.
난 이게 왜 이렇게 말이 되지?
'넴느아'는 월남쌈이다. 우리나라에서 먹는 월남쌈과는 많이 다르다. 달랏에선 라이스페이퍼를 물에 녹이지 않고 딱딱한 채로 만다. 농심 새우칩과 99% 동일한 과자도 같이 싸 먹는다. 숯불에 막 구워진 고기, 갖가지 향 채소, 새우칩 3분의 1조각, 마른 라이스페이퍼, 상추를 돌돌돌 만다. 땅콩 소스에 듬뿍 찍는다. 풀떼기들 중 몇몇은 왜 먹나 싶은 향을 낸다. 좋다, 나쁘다 어디에도 넣을 수 없는 향이다. 나는 그 오묘함을 이해한다. 오래 먹으면 알 수밖에 없다. 처음의 부정적인 놀라움이 사라진다. 기억 속 맛 중에 한 칸에 담는다. 이런 맛이었지. 그게 반복되면, 어느 날 훅 들어온다. 그 과정을 몇 번 거치면, 꼭 있어야 하는 맛이 된다. 태국이나, 베트남 사람들은 참 욕심도 많아. 식재료가 넘치고, 맛있는 게 투성이라, 식감까지 욕심낸다. 음식에 바삭한 과자가 말이 돼? 금을 씌운 어금니가 어찌나 씩씩한지, 참 듣기 좋은 소리를 낸다. 바삭바삭. 땅콩소스에 뭘 찍어 먹은들 맛이 없을까? 라이스페이퍼는 그래도 적셨으면 좋았겠지만, 언제 또 이리 메마르고, 성의 없는 식감을 느껴볼까 싶다. 5만 동(2,500원)이다. 베트남은 일품요리와 식사의 경계가 없는 나라구나. 일품요리인데, 쌀국수 가격이다. 넴느아 때문에 달랏이 좋아질락 말락 한다.
이런 소소한 감동도 이젠 끝이다.
65억이 수중에 들어오면, 2,500원짜리가 맛이 있을까? 시크릿이나 꿈꾸는 다락방을 보면, 믿는 대로 이루어진다잖아. 개소리라고 많이들 무시하지만, 그 책을 쓴 작가들은 확실히 나보다 부자다. 재현이는 확신하지 못했다. 야바위꾼이 사기를 친 게 아니라, 믿음이 부족했던 거야. 믿을 거면 제대로 믿어야지. 내게 65억을 물려주겠다는 노인은 사기꾼이다. 95% 확실하다. 만에 하나, 만에 만에 하나 진짜면? 갖기 싫다는 놈한테 줘서 뭐해? 세 명의 작가에게 비슷한 메일을 보낸 거면? 내가 보내는 메일 하나하나가 사실은 심사의 대상이 되는 거면? 나는 잃을 게 없어도 너무 없다. 65억을 송금할 테니 계좌번호를 불러 주세요. 그렇게 묻는다면 땡전 한 푼 없는 신한은행 계좌를 불러주면 된다. 개망신도 각오하겠다. 누구나 다 아는 뻔한 사기에 말려들었대요. 얼레리, 꼴레리. 치욕은 내 전문 분야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치욕 박사다. 가장 치욕스러웠던 날은 친구 결혼식이었다. 무려 내가 사회를 봤다. 평생 한두 번 입을까 말까 한 정장을 쫙 빼 입었다. 거울 속 내가 어찌나 멋진지, 식이 끝나면 두 시간 정도 강남 위주로 걸을 생각이었다.
-입장이 안 되시는데요.
식이 끝나고 밥을 먹다가 화장실을 다녀왔다. 그 사이 직원이 바뀌어 있었다.
-화장실 다녀왔어요. 조금 전 여기 있던 아가씨가 봤다고요.
-입장 안 됩니다. 안 된다고요.
쫓겨났다. 수많은 사람들 보는 앞에서 문전박대를 당했다. 하객 중 몇 명이 이 사람 사회자 맞다. 들어가야 한다. 나를 재입장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사람들이 모여들자, 감당이 안됐다. 제 발로 도망쳐 나왔다. 얼마나 없어 보였으면, 정장을 입고도 거지 취급을 당해? 직원이 멍청하고, 화장실까지 밖에 있는 주제에 그딴 식으로 하객을 대한 청담동 그 예식장은 폭파되어야 마땅하다. 내가 못나서 일어난 일이다. 내가 멀쩡했다면, 내가 오줌 정도는 꾹 참고 밥만 먹었다면, 안 일어났을 일이다. 미리 자학하면, 철저히 자학하면 덜 비참하다고 생각한다. 자, 할머니! 나는 실컷 놀아나겠소. 계속 떡밥을 보내 보시오. 아니지, 아니지. 남들이 비웃어도, 나만은 확신해야지. 이딴 비아냥으로는 65억이 내 것이 될 리 없다. 기도를 한다. 할머니, 완치되세요. 회복하세요. 65억은 그다음 문제고요. 우리는 이제 남이 아니잖아요. 서로를 알아본 것만으로도,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어요. 우리는 서로를 알아본 거라고요. 알아볼 만한 사람끼리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글로 다가가는 법밖에 몰라서요. 이렇게 정공법으로 다가갑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내일도 이 시간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