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가 안 되었다뇨? 방주인이 할 소리 맞나요?

이상하고 심난한 집에서 내 방 찾기

by 박민우

이 이야기는 1월, 2월에 다녀온 베트남 달랏 이야기입니다. 코로나가 사라지고, 여행이 자유로울 수 있는 날을 기다립니다.

20200128_071620.jpg 사진으로는 곰팡이가 안 보이니까요. 너무 멀쩡하네 ㅎ

다섯 마리의 모기를 낚아챈 첫날, 방콕으로 당장 돌아가고 싶었다. 바다면 좀 나으려나? 베트남 나짱을 검색했다. 달랏은 최악이야. 뭘 봤다고? 숙소까지 터덜터덜 걸어온 게 전부다. 경솔하기 짝이 없는 인간. 나는 달랏을 콕 집어 선택했다. 선택은 꼭 필요한 긴장감을 준다. 별 볼 일 없을지도 몰라. 얼마나 소중한 긴장감인가? 무조건적인 해피엔딩은, 건방진 인간을 시들하게 한다. 언제나 성공일 수밖에 없는 선택은, 차라리 저주다. 여행의 흥분은, 도박의 짜릿함이다. 도파민은 공항에서부터 콸콸 쏟아져 나온다. 과연 좋을까? 얼마나 좋을까? 이 생각만으로도 잠을 설치게 된다. 첫날 나는 대체로 실망하거나, 여행지를 저주한다. 왜 그럴까? 아침 비행기라 새벽 네 시에 일어났다. 숙소까지 한 시간 이상을 걸었다. 전날 과식을 해서, 속도 거북했다. 모기에 실컷 물어 뜯겼다. 몸 상태는 감정을 쥐고 흔든다. 오성급 호텔에서 빳빳한 침대 시트에 비비적댔다면 어땠을까? 그때도 달랏이 심난했을까? 욕조에 더운물을 찰랑 받아놓고, 유튜브로 지나간 개그 콘서트를 삼십 분 보다 졸았다면 어땠을까? 쾌적한 발뒤꿈치를 들고 야시장을 쏘다니며 군것질 거리를 탐닉했을 것이다. 게다가 숙소 사장은 나를 코로나 바이러스 숙주냐고 대놓고 의심했다. 위아래로 훑어보며, 정말 괜찮은 거 맞냐니? 에휴, 중국인들은 모두가 그런 눈으로 볼 테지. 선택한 나라에서 태어나는 재주도 없는데, 우린 참 쉽게 딴 나라 사람들을 혐오한다. 무시한다. 자기네들이 깨끗하고, 인간답게 살아 봐요. 이유 없이 꺼리는 게 아니잖아요. 그 말도 맞다. 이유가 있어도, 미움받는 사람은 서럽다. 우린 깨끗하고, 예의 바른 중국인을 선별해서 좋아해 주지 않는다. 그냥 중국인, 그냥 더러움. 끝! 참 쉽다. 쉬운 혐오처럼 슬픈 것도 없다.

달랏은 어째 베트남 같지가 않다. 더러운 뒷골목이 없고, 앉은뱅이 의자도 적다(없는 건 아니고). 매연, 후텁지근한 날씨, 관광객을 뜯어먹기 위해 달려드는 하이에나 장사치가 없다. 일본이야? 유럽이야? 나를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관심종자인 나는, 관객이 필요하다. 흘낏거리는 사람이 열에 하나는 있어야지. 일본이 그리 깔끔하고, 쾌적해도 나를 흔들지 못했던 이유가 냉랭함이었다. 우리는 소, 너는 닭. 태엽을 돌리면 조금씩 고개가 돌아가는 인형처럼, 절대 고개를 한꺼번에 돌리지 않는다. 장점이라면 배탈로 신문지 깔고 똥을 싸도, 아무도 안 쳐다볼 거라는 것 정도. 그러면 달랏은 날씨뿐인 건가? 사기꾼이 많은 더러운 베트남. 십 년 전 첫인상은 그랬다.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 이후로는 계속 좋았다. 가끔 잔돈으로 장난치는 장사꾼들이 있었지만, 노발대발하기에는 액수가 너무 적았다. 내게 물어봐주고, 웃어주는 사람들이 호찌민, 하노이엔 제법 있었다. 내 얼굴이 달랏에서 전혀 안 먹히는 걸까? 집에 가고 싶다.


하루 25,000원 독방에 큰 기대를 걸어선 안된다. 급하게 구해지는 방은, 각오를 해야 한다. 여우 같은 인간들이 좋은 방은 미리 다 채간다. 주인은 없었고, 대문은 디지털 도어록이었다. 에어비엔비가 생긴 후로는 주인 얼굴 한 번 못 보고 머물다 나오는 경우도 흔해졌다. 가르쳐준 번호를 띡띡띡 누르고, 열쇠함에서 내 방 열쇠를 찾아낸다. 마룻바닥만 지나쳤는데도, 발바닥이 새까매졌다. 만 원 짜리여도 이래선 안 되는 거지만, 설날이다. 주인장도, 관리인도 모두 고향에 있나 보군. 알고 보면 필요 이상으로 관대한 나는, 그러려니 했다. 꽤나 큰 방이었고, 밖으로 난 창도 컸다. 한 벽을 가득 채운 창이다. 내 취향이다. 악취도 없다. 급하게 잡은 방 치고는 선방. 이불이 반쯤 접혀있다. 베개도 삐뚤삐뚤. 청소가 안 된 방이다.

-청소가 안 됐어요.

-아, 죄송합니다. 맞은편 방을 쓰세요. 더 큰 방인데요. 그 가격에 주무세요.

맞은편 방 열쇠를 가져왔다. 헤어 드라이기가 침대 위에 풀어져 있고, 베개가 짓눌려 있고, 쓰레기통엔 누군가의 휴지가 있다. 완전 내 취향이다. 이런 머저리 사장!

-아아, 정말 죄송해요. 아래층에 있는 방을 쓰세요.

세 번째 방은 드디어 멀쩡했다. 나는 이 순간이 왜 실망스러울까? 모든 방이 개판이고, 그럴 리가 없는데요. 이 말만 앵무새처럼 하는 사장과 메시지만 주고받는 상황. 어차피 고향에서 여기에 올 수도 없고, 나 역시 딱히 대안은 없다. 사장은 아는 사람 쥐 잡듯이 연락해서, 청소 대타를 찾아낸다. 아니, 못 찾는 게 더 재밌다.

-그냥 주무실래요? 공짜로요.

공짜에 화색이 도는 나는, 누군가의 머리카락이 둥둥 떠 있는 침대 시트에 침낭을 펼치겠지. 애벌레처럼 몸을 돌돌 말고, 덜덜 떨면서. 찝찝함은 둘째 치고, 여기 사람들이 일순간에 다 살해를 당한 건 아닐까? 새벽에 숙소 주인이 문고리를 철컥철컥. 이 따위 상상을 하면서, 오들오들 떠는 상상. 방을 어떻게든 찾아 옮겼어야 했어. 하나마나한 후회를 하며, 돈 굳었잖아. 슬픈 앵무새가 되어, 이 말만 반복하는 악몽의 밤. 세 번째 방이 멀쩡한 관계로, 누더기 같은 밤은 보낼 수 없게 됐다. 떠들썩한 곳이 싫어서 독방으로 왔다. 조용하다. 마룻바닥은 고운 먼지가 3mm 두께로 고루 펴져있다. 두 방은 이불과 베개와 쓰레기통이 구겨지고, 눅눅해지고, 가득 채워진 채로 있다. 이따위 고요함을 원한 게 아니었다. 잠들기는 틀렸다. 불을 켠다. 스마트폰을 끌어온다.

이런 메일이 왔다.

죄송해요. 답이 늦었죠. 도리스 여사의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메시지를 보낼 수 없어서요. 저는 영어 실력이 부족해요.

도리스 여사가 수술 전에 나를 불렀어요. 당신과 변호사 일로요.

변호사의 연락처와 이메일 주소를 내게 줬어요. 곧, 변호사가 올 거예요.

원래는 극장에 가려했어요. 급하게 잡힌 수술 때문에, 극장은 다음으로 미뤄야 했죠. 도리스 여사는 당신이 그녀를 위해 기도하겠다는 말에 굉장히 좋아했어요. 기도 부탁드려요. 그녀는 몹시 약해져 있어요. 주님이 그녀를 지켜줄 거라 믿습니다.

저는 무슬림 가정에서 태어났어요. 기독교인을 미워했죠. 도리스 여사는 제 삶을 변화시켰어요. 저를 구원해 주었어요. 그녀가 내게 말한 것처럼 신이 존재한다면, 저는 그 신에 대해 더 알고 싶을 정도로요.

이메일을 받았다면, 빠른 답을 부탁드려요.

산드라 간호사


PS 매일 글을 씁니다. 글로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는 게 큰 영광입니다. 여러분이 저의 영광입니다. 감사합니다. 혼자 울컥 잘합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모든 게 너무 쉬운 세상, 닳아빠진 나는 그래도 여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