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그렇고 달랏에 예쁜 곳 많군
2월에 다녀온 베트남 달랏 여행기입니다. 코로나가 없는 세상, 여행을 꿈꿀 수 있는 시간이 빨리 오기를 바랍니다.
-오토바이 빌릴 수 있나요?
-그럼요. 십 분이면 와요.
무면허인 나는 동남아시아에서 얼마든지 오토바이를 빌릴 수 있다. 운전 면허증을 요구하지 않는다. 여권만 있으면 된다. 태국 빠이에서는 불심검문에 걸렸고, 400밧(16,000원) 벌금을 냈다. 오토바이를 삼일 간 더 운전할 수 있습니다. '3일권'종이 쪼가리까지 받았다. 3일간 나는 합법적 불법 운전자가 될 수 있었다. 나는 불법 운전자인가? 아닌가? 별개로 사고를 내면 한국에서는 악플에 만신창이가 될 것이다. 죽어도 싸다. 혹, 뉴스에라도 난다면 대부분의 댓글은 왜 안 뒈졌냐일 것이다. 나는 어떻게든 이 여행을 즐기고 싶다. 세 번째 숙소까지 한 시간을 걸었다. 갓길에 바짝 붙어서 왔지만, 차와 오토바이는 더럽게 빵빵댔다. 세 번째 숙소는 셋 중 1등이었지만, 그때뿐이다. 넓은 방도, 산동네의 비스듬한 집들도 그냥 그랬다. 게다가 오늘 체크아웃할 때 사장 놈은 나를 쳐다도 안 봤다. 청소도 안 한 방을 방이랍시고 내놓더니, 변변한 사과 한 마디 없더니, 열쇠를 받으면서 쳐다도 안 봐? 단체손님에 정신이 빠진 모양인데, 내가 서럽지 않을 이유는 없다. 노후대비는 철저한 무관심에 대한 대비다. 어쩌자고 아직까지도 누군가의 개무시에 연연하는 걸까? 관심종자로 살다 가겠다. 늙어 죽을 때까지 팔자 주름에 달팽이 크림을 비벼대며, 깜찍한 척하겠다. 성욕이 끓어오를 때는, 그게 힘이 됐다. 섹스와 연결되어서라기보다는, 모든 감각이 곤두서서 좋았다. 후각도, 촉각도, 청각도 예민해져서 세상을 탐지했다. 이젠 세상이 나를 거들떠도 안 보는데, 나조차 세상을 거들떠보려 하지 않는다. 오토바이 못 타서 환장한 놈 아니다. 실컷 탔고, 실컷 봤다. 내게 이제 남은 거라고는 관심종자로서의 열정뿐이다. 내가 찾아낸 달랏의 모습에 열광하는 관중이, 이번 여행의 힘이다. 그들이 짜릿하면, 그걸 확인한 후에 짜릿해질 것이다.
나는 이 오토바이로 Đợi một người라는 곳을 가보려 한다. 숙소와 카페를 같이 운영하는 곳이다. 베트남 알파벳은 사방에 점과 짝대기가 붙어 있다. 겁나 처맞은 권투 선수 같이 생겼다. 알파벳만 쏙 뽑아서 검색하면, 검색이 된다. 이 곳을 택한 이유는, 구글맵이다. 구글맵 메뉴 중에 커피를 누른다. 주변의 카페가 뜬다. 사진도 뜬다. 평점 4.5 정도에 사진발 괜찮은 곳 몇 개를 추린다. 그리고 감으로 찍는다. 당첨된 카페는 산길로 들어가야 했다. 자갈길에서 소중한 엉덩이님이 여러 번 아야 했지만, 열심히구나. 그런 느낌이 아픈 똥꼬를 통해 전해졌다. 내리막길이 제법 가팔랐는데, 크게 당황하지 않고 무사히 카페에 도착했다. 꽤나 깊숙한 곳이었는데도 주차한 오토바이가 여러 대 보였다. 입구에서부터 좁다란 오솔길이 이어져 있고, 얼마 안 가서 아담한 건물이 우선 보였다. 테이블이 건물 앞에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사진에서 봤던 풍경이다. 여행은 참 좋은 것이다. 나를 개무시한 사장 놈, 캐리어를 질질 끌던 땡볕, 오토바이나 타보지 뭐 심드렁했던 오후는 이 순간을 몰랐다. 덜컹대던 비포장도로로 진입했을 때조차 몰랐다. 그윽한 경사면에 가득 채워진 풀과 나무들이 볼 때마다 더욱 푸르러지는 것도 역시 몰랐다. 커피를 뽑아야 할 사람이 자리에 없으리라는 것도 몰랐고, 화장실 문울 두드리니, 똑똑똑 답을 하는 양반이 바리스타인 것도 몰랐다. 열 명 정도가 주문도 못하고 기다리는 꼴을 보면서, 나는 커피 포기. 내가 그렇게 단호한 놈인지도 몰랐다. 아래로 내려가니, 빵집이 아예 따로 있는 희한한 카페였다는 건 그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신중하게 고른 일본식 슈크림 빵을 커피도 없이, 가방 안 생수에 먹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도리스 할머니는 폐암 말기인데 수술을 했다. 삶에 대하 애착이 대단한 사람이다. 간호사 산드라는 급하게 잡힌 수술 때문에 영화관엘 못 갔다고 했다. 캐릭터를 완성할 때 아예 없는 곳에서 가져오지 않는다. 산드라는 진짜 간호사거나, 간호사가 가족 중에 있을 것이다. 그것만 진실일 것이다. 빚에 쪼들려서 못할 게 없는 여자일 것이다. 영화관을 들먹이면서 캐릭터는 훨씬 그럴듯해진다. 공간이 병원에서 일상으로 옮아간다. 산드라는 글을 본격적으로 써도 되겠어. 작은 연못 위에는 사방으로 투명창뿐인 골조 건물이 덩그러니 있다. 그 안에 테이블이 있다. 마치 물 위에 떠있는 집처럼, 어항 속 세상처럼 뜻밖의 물체가 깔끔하게 희한하다. 놀라야 마땅하지만 나는 주섬주섬 돌아갈 차비를 한다. 헐떡이는 숨을 주체 못 하는 노인을 상상하다가, 그 뒤에서 낄낄대는 사기꾼을 떠올린다. 내가 좀 못 마땅하다. 사기를 치기 위해, 문장을 고민하는 자가 있다. 천하의 사이코패스. 여전히 사기꾼의 음모를 훌훌 털어내지 못하고 있다. 숙소로 간다.
--꺄악
하필 그 좁은 내리막길로 차가 온다. 나에겐 오르막길. 급하게 갓길로 튼다. 핸드폰이 주머니에서 튀어나온다. 바닥에 떨어지면 안 돼. 무릎을 오므린다. 오토바이와 함께 쓰러진다. 차 안에 있던 여자가 비명을 지른다. 오토바이야 세우면 되지. 흙을 털고, 무거운 오토바이를 세운다. 급경사의 중간. 힘으로는 꿈쩍도 안 한다. 시동을 걸 용기는 안 난다. 뒤로도 역시 급경사. 내려갈 수가 없다. 갇혔다. 손이 벌벌 떨린다. 할 수 있다. 이를 악 물고, 어떻게든 앞으로. 조금만, 조금만 더. 안 된다. 도저히 안 된다. 남은 힘을 다 썼다. 이젠 정말 큰일이다.
65억은 내 거야.
65억은 내 것이 될 것이다. 나는 산드라의 진심을 오해하고 있다. 이 경사를 오르면, 무사하기만 하면, 그 돈은 내 것이 된다. 그러니까 지금은 어떻게든 급경사를 빠져나와야 한다. 오토바이 시동을 건다. 할 수 없다. 속도를 올린다.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앞으로 나가거나, 고꾸라지거나. 못 하겠다. 지금까지의 나와 싸워서 이겨야 한다. 부릉. 야생마처럼, 산 페르민 축제의 화난 소처럼 나의 오토바이가 괴성을 질러댄다. 뒤로 넘어가는 게 아닐까? 오토바이는 흔들리지 않는 법을 배우고 세상에 나왔다.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다. 무사히 경사를 오르고 나니, 급하게 죽음을 들먹인 내가 부끄러웠다. 급하게 65억은 또 왜 들먹였을까?
그날 밤 변호사에게서 이메일이 와 있었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글로 만나는 인연이 저에겐 신비롭습니다. 어서 오세요. 신비롭게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래오래 신비롭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