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를 넘는 수준이 아니라, 내 기대가 부끄러울 정도
2월에 끝마친 여행입니다. 여행이 자유로워지는 그날을 기다립니다.
달랏은 베트남 신혼부부들의 꿈의 여행지다. 그들 눈에 가장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곳이다. 바다와 더위가 흔한 베트남에선, 춥고, 산으로 둘러싸인 달랏이 별천지다. 나로 말하자면 어떻게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심드렁하고 싶은 사람이다. 안 보면 후회할 곳들을, 적극적으로 안 보고 후회하고자 한다. 개나 소나 가는 곳에서 개나 소처럼 성의 없이 즐기고자 한다. 의욕이 없는 게 아니라, 의욕적으로 시큰둥하겠다는 것이다.
테라코타 호텔은 어제도 갔지만, 또 간다. 어제는 점심때 갔다. 뷔페는 조식 때만 가능하다고 해서 그냥 나왔다. 콕 집어서 뷔페가 먹고 싶다. 달랏에서 가장 좋은 호텔 중 하나다. 호텔 뷔페가 단 돈 만 원. 얼마든지 다시 올 수 있다. 하루 정도는 이곳에서 머물려고 했다. 하루에 십삼만 원 정도 한다. 시내에서 너무 떨어져 있고, 기어들어오면 딱히 할 게 없다. 단점이 여러 개라 굳이 십삼만 원 쓸 필요가 없다. 깨끗한 호수를 끼고, 깔끔하게 지어진 리조트다. 아침 산책이 근사할 것이다. 야외석은 5성급 분위기도 난다. 씹히는 생오렌지 주스랑 염소 치즈가 없네? 그런 무개념 여행자가 나는 아니다. 그럭저럭이면 된다. 나처럼 밥만 먹으러 온 베트남 신혼부부도 이중에 있을 것이다. 평생 딱 한 번뿐인 신혼여행이지만, 십삼만 원은 엄두를 낼 수 없는 부부들이 그렇게라도 기분을 낼 것이다.
아따 성님 이건 좀 먹을 만 하요. 뭐여. 너는 그런 것도 먹을 줄 아냐잉? 전라도에서 온 단체 여행객이 식당에 절반은 되는 것 같다. 2020년 인구 대비 여행을 제일 많이 하는 나라는 한국이 아닐까? 악착같이 돈만 벌다 죽을 줄 알았다. 악착같이 쓴다. 여행이 그리 재미날 수가 없다. 지혜로운 걸까? 이렇게라도 풀어야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인 걸까? 어쨌든 행복해 보여 다행이다. 달랏의 아침은 쌀쌀하다. 손끝이 깨지는 줄 알았다. 오토바이로 이십 분을 달렸다. 두 시간 넘게 천천히 빵과 수프, 오믈렛과 쌀국수, 떠먹는 요구르트와 케이크, 커피와 홍차를 오물오물. 사력을 다해서 천천히 먹는다. 만 원을 나보다 더 악착같이 누리는 사람은 없다. 먹는 건 여전히 흥분된다. 이상한 갱년기.
스마트폰을 켜고 구글맵을 연다. 커피라는 메뉴를 클릭한다. 주변 카페가 주르륵 뜬다. Happy hill이란 카페를 가보려 한다. 밥에다 커피, 후식까지 실컷 먹고 또 카페라니. 이게 내 취향이다. 배가 불러도, 고파도 카페 놀이는 즐겁다. 아메리카노 마시면 된다. 배부를 때 마시라고 아메리카노가 있다. 오토바이를 타고 십 분을 더 들어간다. 입구 바깥쪽에 오토바이를 세운다. 안쪽도 숲길인데, 입구에서 직원이 지키고 있다. 제법 규모가 큰 곳인가 봐. 입구에서 한참을 들어간다. 솜사탕처럼 큼직한 수국이 양쪽으로 흐드러진다. 꽃 천지다. 호숫가의 꽃밭이라 꽃 다음은 물 천지다. 진짜 입구가 나온다. 커피를 시키면 옷에 스티커를 붙여준다. 그게 있어야 입장이 가능하다. 아이스 카페 라테를 시킨다. 꽃들을 보니, 달콤한 라테가 당긴다. 알아서 시럽을 넣어줬으면 한다. 무설탕 라테는 내게는 너무 세련된 맛이다. 웨딩 사진을 찍는 커플이 보인다. 오전 열 시가 채 안 됐는데도 북적북적. 우리가 봄을 기다리는 이유는, 봄꽃들 때문이다. 진달래, 개나리, 벚꽃, 목련을 기다린다. 여름, 가을꽃은 봄꽃과는 다르다. 내가 기다리는 꽃은 봄에만 핀다. 평생 4월이고 싶고, 5월의 시작이고 싶다. 따스하고, 찬란하니까.
베트남은 내겐 쌀국수의 나라였다. 달걀 커피의 나라였다. 날달걀이 들어간 커피에서, 티라미스 케이크 맛이 났다. 기발해서, 맛있어서 심장이 저릿했다. 문화적으로는 형편없이 뒤떨어져서, 기대할 게 아무것도 없는 나라였다. 불교의 찬란함, 화려하고, 세련된 색감은 태국에 있으니 상관없었다. 베트남은 달걀 커피가 있는 나라니까, 그걸로 퉁치면 된다. 태국에서만 느껴야 하는 감동이, 이곳에 있다. 온통 5월이다. 천국의 입구다. 행복이 남용된, 위험한 예시다. 가난한 신혼부부는 여기까지 와야 한다. 첫날밤의 섹스가 찜찜했거나, 평생 살 수 있을까? 심란하다면 더 좋다. 지금 이곳에서 곁에 있는 사람이 바로 당신이다. 우리는 잘 살 수밖에 없겠구나. 삐져나오는 웃음이 참 잘 어울리는 곳. 꼭 다시 오자는 다짐이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다. 왼쪽 머리통을 남자의 오른쪽 어깨에 기댄다. 남자는 손을 찾아서 하나씩 하나씩 깍지를 낀다. 아무 기억도 안 나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된다. 내가 생각했던 베트남이 아니다. 내가 기대했던 달랏은 이렇게까지 아름다울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달랏은 좀 더 있을 것이다. 대단한 것을 숨겨놨을 것이다.
나의 예상은 맞았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누군가의 작은 밤, 몰래 다가가는 위로면 충분합니다. 적절하고 만만한 재미면 좋겠습니다. 반갑습니다. 반갑고,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