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은 외계인입니다.
눈을 뜨자마자 대지부터 본다.
인쇄로 들어가기 전에 퇴고를 한다.
여러 번 본다.
그래도 가끔 오탈자가 나와서 부아가 치민다.
이것밖에 안돼!
쓸모없는 내가 꼴 보기 싫다.
평소에 없는 완벽증, 지랄증이 이때만 도진다.
방콕 맛집 책 원고는 3년째 붙들고 있다.
내가 너무 게을러서다.
백만 부를 팔아야 마땅하다.
백만 부를 팔면 15억이 생긴다.
최근 십 년 간 백만 부 작가가 있었나?
백만 명은 족히 될 작가들 중 1등을 해도 10억은 택도 없다.
한물 간 직업이다.
13년 전 1만 시간 동안의 남미 대지를 보면서
나는 백만 부를 확신했다.
이렇게 재미난 책은 지금까지 없었다.
아무리 못 팔아도 십만 부씩은 팔릴 테고
시리즈로 1,2,3이니까 최소 3억.
3억으로 합정동에 작은 아파트 사고(그땐 가능했다), 나머지 부모님께 드리고
이탈리아 아말피 해변에 짱 박혀서
모두가 궁금해서 못 견디는 신비 작가로 빈둥댈 줄 알았다.
워낙 좋은 책이니까 생활비 정도의 인세는 꾸준히 나올 거라 확신했다.
1만 시간 동안의 남미, 1만 시간 동안의 아시아, 지금이니까 인도, 지금이라서 훈자 등 총 열 권을 썼고
6개월마다 받는 인세가 총 50만 원?
6개월 동안 팔린 책이 몇백 권이다.
아직까지 이 일을 붙잡고 있다.
왜?
다른 일을 택하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점프해야 한다.
0에서 시작해야 한다.
엄두가 안 난다.
작가로서의 소명의식?
아니다.
관성으로 한다.
소명의식?
있는 것도 같다.
물리적으로 닿을 수 없는 누군가에게 내 글이 읽히고 싶다.
억울한가?
억울하다.
더 읽혀야 하는 책들이다.
나의 착각일 수도 있다.
더, 더 좋은 책이었다면 시대 핑계 댈 필요가 없다.
압도적이지 못했으니, 이렇게 된 것이다.
나를 위로하는 상상 중에는
이 삶이 간절히 원한 삶이었다는 상상이다.
인간의 몸이 되어 새로 태어나기.
우주 어딘가의 존재는 지구에서 인간으로 태어나는 걸 흥미롭게 여긴다.
순도 100% 상상도 아니다.
미국 뉴멕시코 로스웰에 불시착한 외계인을 인터뷰한 내용이기도 하다.
앞선 기술로 인간의 몸을 만들고
영혼의 존재인 이들은
인간의 몸에 들어가 느낄 수 있는 감각에 열광하다.
너무 재밌어서, 자신의 존재까지 잊을 정도로.
믿느냐고?
믿는다.
재밌다.
간절히 믿지 않고, 그럴 수도 있겠네.
내 삶이 훨씬 흥미로워진다.
자, 지금의 나는
고민 끝에 선택된 존재다.
더 잘 생길 수도 있었고
더 부자일 수도 있었다.
콕 집어서 나였다.
왜?
짧은 삶이다.
이런들, 저런들 큰 의미 없다.
죽을 때까지
모든 걸 느끼기.
한 번 타는 스키 같은 것.
굴곡은 아슬아슬
헐떡헐떡
짜릿짜릿
마지막 결승점, 드디어 끝이다.
평탄한 유아용 코스를 타려고
인간이 된 게 아니지.
죽으면 그땐 낄낄댄다.
넌 죽을 때까지 모르더라.
난 알았어. 병신아.
오늘 저녁은 끝까지 자기가 자기인 줄 몰랐던 1등 병신, 네가 쏜다.
예정대로 죽은 영혼들은
한결 가벼워져서는
물리적 시공간을 훨훨 난다.
완벽한 삶이 완벽한 것이 아니다.
모든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불완전의 불꽃으로 타오르는 삶이
완벽
눈병이 생겼다.
세수를 안 했...
충혈된 이 작은 눈
그러니까
완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