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달랏의 정말 사랑스러운 다방 Tung cafe

8090 카페가 여기에 있었네

by 박민우

2월에 다녀온 여행기입니다. 다시 여행을 꿀 꿀 수 있는 그날이 꼭 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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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 방향입니다.


진지하게 물어볼게요. 오토바이를 탔어요. 구글맵 내비게이션이 동쪽 방향입니다. 북동쪽 방향입니다. 이러면 알아들으시나요? 이 새끼가 인간을 놀려? 저는 일단 갤럭시 노트 뺨을 톡톡 두 대 치고 아무 쪽으로나 가요. 그러면 늘 틀리더군요. 반대쪽으로 가더란 말이죠. 헛발질을 하며 구글맵 내비게이션을 익히고 있어요. 이제 스마트폰만 있으면, 남의 나라, 남의 도시에서도 길을 잃을 수가 없어요. 우리가 이런 세상에 살고 있답니다.


같은 곳을 몇 번을 돌았는지 몰라요. 가라는 대로 계속 가는데, 빙글빙글 돌기만 하는 거예요. 에라 모르겠다. 여기인가? 작은 카페 앞에 서요. 오오. 웬일인가요? 늘 저를 골탕 먹이더니. 이런 날도 있어야죠. 맞췄어요. 제대로 왔어요. Tung Cafe. 제대로 온 것까지는 좋은데요. 에게게. 겨우 이런 곳을 오려고, 그렇게 헤맸던 건가요? 요 앞을 여러 번 지나쳤죠. 눈길조차 주지 않았죠. 저 눈 높아졌어요. 달랏에서 몇 번 눈이 휘둥그레해졌죠. 메린 커피 농장은 제 인생 최대 카페예요. 이보다 더 큰 카페는 지구상에 없을 거예요. 해피 힐 카페는 요정 나라처럼 새침하게 이쁘더라고요. 숙소 사장은 이따위 카페를 추천해 주면 어쩌자는 건가요? 여행자들은 비행기 타고 온다고요. 시간이 없다고요. 최고로 좋다는 곳을 우선 다 봐야죠. 여행자들을 수도 없이 상대했을 텐데, 사장님아. 추천은 성의를 담아서 해야 하는 거예요. 아, 뭐. 또 저는 그렇게까지 절박한 여행자 아니죠. 알아요. 그래도 괘씸하잖아요. 60년 이상 된 카페라면서요? 그럼 옛날 전화기에 영화 포스터라도 덕지덕지 붙여 놓든가요.


한 자리 빼고 꽉 찼네요. 의자도, 테이블도, 실내도 다 그냥 그래요. 나쁘다는 게 아니라, 무성의해요. 안대로 두 눈 가리고, 손으로 더듬더듬 가구를 샀나 봐요. 그냥 의자고, 그냥 테이블이더라고요. 달랏에 왔을 때는 기본만 해도 절 하려고 했어요. 이제는 얼마다 더 대단한 걸 보여줄까? 기대가 되는 걸 어떻게 해요? 뜨거운 밀크 커피를 시켜요. 깜짝 놀라요. 너무 써서요. 아, 여기 베트남이지. 지금 내가 베트남 커피를 마시고 있지. 조선 시대에 베트남 커피가 있었다면, 사약 대신 썼을 거예요. 먹는 족족 다 죽었을 거예요. 역모를 꾸민 역적들에겐 베트남 커피 투샷, 무설탕, 무 얼음 한 사발을 원샷 시켰을 거예요. 식도와 위벽이 때타월처럼 긁히며 죽었을 거예요. 사지를 찢어서 죽인다는 능지처참으로 바꿔달라고 역적 주제에 울고 불고 빌고 했을 거예요. 얼음을 달라고 해서요. 얼음에다가 똥색 커피를 부어요. 초콜릿 우유색으로 천천히 연해지더군요. 알겠어요. 왜 여기가 커피 맛집인지 알겠어요. 우리나라 시람 기준으로는 탄 냄새가 나요. 쓴맛이 도드라지죠. 베트남 사람들은 익숙한 커피맛이 이 맛이니까요. 딱 고향의 커피맛이 이 맛이겠네요. 얼음에 천천히 쓴맛, 탄맛이 묽어지면서요. 이만하면 됐다 싶은 맛으로 조절이 되더군요. 아, 맛있다. 줏대도 없는 박민우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오지 뭐예요.


큰일 났어요. 달랏에서 가장 황홀한 순간이 딱 지금인데요. 왜냐고 물으시면, 답이 너무 허접해요. 담배 연기까지 자욱해요. 옷에서 담배 냄새까지 나게 생겼어요. 삼십 년을 매일 출근 도장을 찍은 것 같은 사람이 제 오른쪽에서 신문을 읽고 있어요. 사장도 손님도 공평하게 늙어가고 있어요.


제럴드 졸링의 Ticket to the tropics가 나와요. 우리는 라디오 세대예요. 라디오뿐이었죠. 여러분은 도서관에서 공부하러 가시나요? 도서관은 엎드려 자려고 비싼 돈 주고 끊는 곳 아닌가요? 마이마이, 워크맨으로 길보드 차트 40 들으려고 가는 곳이죠. 조지 마이클의 Careless whisper가 나오네요. 조지 마이클은 이제 세상에 없어요. 알고 있는 것과 와 닿는 것은 다르죠. 이제야 와 닿아요. 조지 마이클이 죽었군요. 한때 세상에서 제일 잘 생긴 사람이 조지 마이클이었어요. 최진실도 세상에 없군요. 내 청춘 속에 그토록 생생한데, 없어요. 없대요. 이 세상에 있든 없든 달라질 게 없어요. 어차피 평생 마주할 일 없는 사람들이죠. 생각을 고쳐 먹어요. 안 죽은 겁니다. 달라질 거 없으니까요. 그렇게 둘을 살려 놔요. 나의 온전한 과거도 살려 놓죠. 주말이면 별밤 공개방송을 그렇게 기다렸어요.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 공개방송도 대단했죠. 이문세(이종환 방송에선 이문세가 특급 게스트였죠), 이택림, 이수만이 말발 초고수 게스트였죠. 그들의 실없는 농담을 듣기 위해 밤 열시면, 라디오를 끌어안았죠. 제가 신청한 것도 아닌데, 그때의 노래들만 나와요. 버스 안에서도 담배를 피우던 시대였어요. 이 담배 연기조차 그리운 냄새가 돼요. Tung cafe는 나만 좋은 곳이에요.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둘러싸여서는 웃고 있어요. 경신고등학교 1학년 8반 박민우가 독서실에 엎드려서는 어깨를 씰룩여요. 배도 부르고, 잠 좀 자 줘야 하는데 마삼 트리오(이수만, 이문세, 유열 - 얼굴이 말상이어서 마삼트리오라고 했어요)가 작정을 하고 웃기네요. 큭큭큭. 결국 웃음소리가 새 나가고요. 깜짝 놀란 저는 화장실로 숨어서 오줌을 눠요. 오줌을 누나가 웃음을 못 참고 하하하하 터뜨려 버려요. 짐을 싸요. 창피해서 살 수가 없어요. 놀이터에 앉아서 마저 듣고 가야죠. 추워도 추운지 모르겠고, 더우면 더운 대로 좋았던 시간이었어요. 곧 중간고사에 모의고사까지 기다려요. 이렇게 쳐놀기만 하고 대학은 갈 수가 있을까요? 대학을 못 가면 못 갔지. 이 재미난 방송을 어떻게 놓치냐고요. 다 듣고, 늦게 늦게 가면 어머니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라면 물을 올리실 거예요. 내 새끼, 공부하느라 힘들었지? 죄책감은 죄책감대로 느끼고, 라면은 라면대로 열심히 먹어야죠. 하루는 왜 이렇게 짧기만 한 걸까요? 내일 아침엔 여섯 시에 일어나서 성문 기본 영어를 오십 페이지 정도 끝내야겠어요. 약속, 약속, 야속!


PS 매일 글을 씁니다. 그렇게 조금씩 세상의 모든 사람과 만나고 싶어서요. 무모한 꿈일까요? 닿을 수 있는 꿈일까요? 저는 닿을 수 있다고 생각하려고요. 굉장히 신나네요. 천국은 뭐 제가 만드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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