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정하고 천진한 호텔 Dalat Otel

장난하냐? 모든 장난은 소중한 창의력의 씨앗이니까요

by 박민우

2월에 베트남 달랏을 다녀왔어요. 여행이 불가능한 지금, 이 여행기가 작은 숨통이었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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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lat otel


입구 오른쪽으로 동그란 원통형 캡슐룸이 김밥처럼 줄지어 웅크리고 있다. 화장실과 샤워시설까지 있다. 나는 이 숙소에 묵지 않는다. 내 여행은 이제 구글맵이다. 수시로 구글맵을 켠다. 카페와 식당을 검색한다. 가끔 호텔도 검색한다. 잠잘 곳은 이미 있다. 호텔의 로비와 정원은, 그 나라의 모든 감각이 녹아 있다. 나만 정신 똑바로 차리고, 독특한 여행을 하기로 한다. 호텔의 껍질만 보는 여행. 이런 취향에 작은 자부심을 느낀다. 오성급 호텔은 특히나 나에게 정중하다. 다른 나라 사람이니까 손님이라고 확신한다. 추레한 옷차림을 부자의 자신감으로 해석한다. 우호적인 눈빛을 당당히 받고 로비에 앉는다. 솔직히 누군가가 여기 묵느냐고 물을까 봐 겁이 난다. 그런 적은 없지만, 그럴 수도 있으니까. 부자인 친구놈은 여행 중에 길똥이 급하면 꼭 오성급 호텔을 찾는다. 그때 알았다. 똥도 눠본 새끼가 누는구나. 묵는 사람만 호텔 화장실 쓸 수 있는 줄 알았다. 숙박권이라든지 신분증 검사라도 하는 줄 알았다. 친구놈들 아니었으면, 호텔 출입은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엄두를 내다보니, 이제 좀 만만해졌다. 어디를 가도 늘 공손히 나를 반긴다. 당당히 커피를 주문한다. 오천 원도 안 한다. 나도 부자놈이 된다.


Dalat otel은 가까이 있어서 한 번 와봤다. Otel은 터키어로 호텔을 의미한다(검색해 봤더니). 김밥 캠슐룸 사진이 어찌나 귀엽던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입구에서 캡슐룸부터 보인다. 첫 방은 아무도 묵지 않는지 안이 보인다. 다른 방들은 커튼으로 가려져 있다. 침대가 양쪽으로 있고, 안쪽으로는 샤워실 겸 화장실이 보인다. 혼자 묵을 경우 만 원(나중에 사장에게 물어봤다)이다. 만 원에 독립된 샤워와 변기를 쓸 수 있다. 삼각 지붕의 스머프 방갈로와 큐브 퍼즐 모양의 독채 건물이 아래쪽으로 보인다. 중간에 기다란 구름다리가 있다. 구름다리 위에서는 호텔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흔들리는 구름다리를 가로질러 본다. 숙소를 지어서 돈을 벌겠다는 사람 중에 아름다움을 욕심내지 않는 사람은 없다. 현실에 부딪힌다. 실용성이라든지, 비용이라든지. 그런 장애물을 넘지 못하고, 무난한 디자인으로 회귀한다. 돈이 결렸을 땐, 도전이나 순수함은 장애물이 된다. 이곳 사장은 대단한 고집쟁이다. 이런 곳을 입장료도 내지 않고 함부로 들어와도 되는 걸까? 더 화려하고, 더 웅장한 오성급 호텔에서도 느끼지 못한 죄책감이다. 사무실 겸 로비로 쓰이는 건물이 보인다. 앳된 남자와 여자가 나를 보면서 당황하더니 누군가를 부른다. 아, 부르지 마세요. 저, 손님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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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남자가 활짝 웃으며 들어온다. 신경질적이고 염색한 머리의 주인장을 기대했다. 순박한 이장 아저씨다. 나와 비슷한 나이일 것 같은데, 얼굴에서 아이가 보인다. 차를 마시러 왔습니다. 공손히 말한다. 탄산음료와 커피만 있다고 한다. 그럼 혹시 식사가 됩니까? 나를 식당으로 안내한다. 알록달록한 건물과 푸르고, 윤기가 흐르는 정원을 지나친다. 사방이 뚫린 환한 건물로 들어선다.

-지금은 라면만 됩니다.

또 다른 남자와 여자가 긴장한 표정으로 주방으로 들어간다. 아고다나 부킹닷컴에서는 예약할 수 없는 숙소라고 한다(독자님 제보 에어비엔비에는 있답니다). 죄송하지만 핸드폰 충전 좀 할 수 있겠냐고 묻는다. 그는 담배를 피우냐며, 담배를 권했다. 안 피운다고 했고, 그는 내 핸드폰을 가져가서 콘센트에 꽂았다. 5년 전에 달랏에서 가장 먼저 지어진 부티끄 호텔이라고 했다. 달걀이 예쁘게 올라간 라면이 나왔다. 라임이 있냐고 묻자, 또 작은 소란. 주방에서 반으로 갈라진 라임이 나온다. 라임을 짜고, 밀가루 향을 잠시 킁킁댄다. 이 예쁜 마을에 단 한 명의 손님이다. 방에서 나오지 않은 손님들은 안 보이니까, 일단은 나만 손님이다. 사방으로 터진 식당에서, 나도 누군가에게 완벽하게 관찰된다. 보고자 하는 사람이 없을 뿐이지. 작은 연못에선 물고기가 바삐 몰려다닌다. 보이지는 않는다. 운동감만 감지된다. 바비큐 파티까지 할 수 있어요. 사장은 이 공간이 무척이나 자랑스럽다. 구수한 소고기맛 국물에 라임은 꼭 들어갔어야 했다. 천 원짜리 라면 중에 가장 아름다운 라면이다. 배고픔도 느끼지 못한 채 라면을 먹고 있다. 아이들이, 아기들이 이곳에 오게 되면 치명적 기억이 된다. 포스터 칼라처럼 남아서, 나비처럼 꿈속을 날게 되겠지. 어른이 되어도, 이름을 몰라도. 나는 쉬러 왔다. 뭔가를 느끼는 것조차 귀찮은 채로 왔다. 이제 나는 남은 날을 세고 있다. 내 눈과 심장은 내 생각보다 젊어서, 끓고 있다. 아우성이다. 삼일 남았다. 달랏을 좀 더 봐야겠다. 설마, 초조함인가? 삼일밖에 안 남았다. 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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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매일 글을 씁니다. 제가 조금씩 퍼져가는 상상을 하면 좋아요. 제가 의미 있는 존재가 된 것 같고요. 천천히 퍼져 보겠습니다. 이왕이면 지구 끝까지. 이왕이면 우주 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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