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신한데 기괴하지 않고 그윽하기만 한 이상항 카페랍니다
2월에 다녀온 여행입니다. 여행이 쉽지 않은 지금 작은 위로와 재미가 되었으면 합니다.
사람이 없다. 세 명이 후기를 남긴 작은 카페. 네다섯 살쯤 여자 아이와 남자아이. 한 테이블에 마주하고 있다. 눈이 마주쳤다. 차 한 잔이라도 마셔야 하나? 아깝다. 시간이 아깝다. 더 좋은 곳에, 더 오래 앉아있고 싶다. 사장이랑 눈이 마주치지 않았다. 죄지은 사람이 되어 오토바이 시동을 건다. 남이 가지 않은 곳, 나만의 모험은 실패했다. 손님을 기다리지 않는 남은 반찬처럼 식은 공간. 잠깐이라도 앉아있지 않아서,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cafe rainy
시간이 없다. 시간이 없다. 구글맵에 커피 메뉴를 치면 주변 카페들이 뜬다. 가까운 곳의 보석을 놓치지 말라는 구글 신의 배려다. Cafe rainy는 평점 4.3점. 5점이 만점이다. 4.5점도 안 된다. 가? 말아? 후기 참여자는 471명. 4.3점은 소름 돋게 대단하지는 않음을 의미한다. 471명은 믿음의 숫자다. 진짜 손님들의 평이다. 이삼십 명 정도면 가족이나 친구의 점수다. 즉 믿어도 되는 진짜 점수 4.3점. 크게 후회할 정도도 역시 아니다.
왜 Rainy Cafe일까? 눈보다 비를 좋아한다. 지붕을, 땅을 내리꽂는 소리의 떼창이 좋다. 균일해지면 소음은 조화가 된다. 하늘 크기의 얇은 비담요가 온 세상을 덮는다. 하늘의 수분이 헝클어 놓는 교란. 비란 놈은 우리의 안락함을 수시로 증명한다. 지붕이 무너지지 않았고, 창문도 뚫지 못했다. 빗방울이 거셀수록, 굵을수록 나는 안전해진다. 아늑해진다.
마치 만화책을 보는 것 같다. 어릴 적에 순정만화를 많이 봤다. 다섯 살 차이 막내 이모 옆에 꼭 붙어서 함께 읽었다. 유리가면도 그중 하나였다. 마야라는 평범한 아이와 아유미라는 대단한 미모의 소유자. 둘은 배우다. 아유미는 대배우와 천재 감독 사이의 외동딸, 마야는 중국집에서 잔심부름을 하는 아이. 마야는 절대로 아유미를 이길 수 없다. 하지만 무대에서 그녀는 다른 사람이 된다. 사람을 끌어들이는 마력으로 아유미를 무릎 꿇게 한다. 독자는 늘 마야가 질 거라며 염려한다. 완벽한 아유미를 어떻게 이겨? 재능과 집중력, 순발력이 위기 때마다 빛난다.
나는 늘 이 세상이 진부하다. 이리 본 게 많은데. 이리 아는 게 많은데(재수 없게 들리겠지만 나는 그런 놈이다). 나의 시건방을 무너뜨릴 수 있겠어? 달랏에서 봐야 할 것들은 이미 다 본 건지도 모르지. 4.3점으로 박민우를 흔들 수 없다. 그 지점에서 묘하게 흥분이 된다. 나는 더 건방질 필요가 있다. 반전이 기다린다면 더욱 놀랄 것이고, 예상대로면 나는 더더욱 기고만장해질 것이다.
주차공간에 오토바이를 세운다. 이런저런 생각도 다 사라진다. 일본인가? 정교하게 관리된 나무와 풀들이, 입구에서부터 빈틈없이 배치되어 있다. 작은 연못, 연못 위의 동그란 징검다리. 징검다리를 건너는 곳에 있는 오두막. 반대쪽에도, 위쪽에도 오두막, 오두막이다. 지붕이 얹어진 단순한 공간에서, 모든 손님은 이 정원을 바라봐야 한다. 중세 일본의 귀족이 이곳에 왔나? 일본식 정원과 베트남식 정원은 몰랐지만, 비슷한가? 내 머릿속 가장 아름다운 일본풍 정원이 작은 흔들림도 없이 펼쳐져 있다. 나는 그림 속에 들어왔다. 어디로 가야 하지? 갈피를 못 잡겠다. 어디든 앉아도 되지만, 모든 곳에 앉고 싶으면 문제가 된다. 나의 기대가 사실 크지 않았구나. 너무 놀라워서, 내가 소박했음을 깨닫는다. 일부러 징검다리를 밟고, 일부러 징검다리가 연결된 오두막으로 들어간다. 커피와 케이크를 주문하고, 보이는 모든 것들을 허겁지겁 본다. 왜 'rainy'지? 처마 밑으로 물방울들이 떨어진다. 또르르, 또르르. 설마 진짜 비? 진짜 비가 아니다. 지붕 위로 끊임없이 물이 올라가고, 미끄러지고, 떨어진다. 비가 흔한 도시 달랏에서, 태양이 훨씬 소중한 달랏에서, 어떤 작자는 비를 떠올리며 공간을 꾸몄다. 구질구질한 우기를 굳이 자신의 카페로 데려왔다. 종일 비를 보여주기 위해 누군가가 달랏에서 나를 기다렸다. 만화적 상상력이 하찮아지는, 유리 가면에도 없는 귀신같은 정답이, 반전이 있다. 나는 완벽히 졌다.
당신의 상상력은 어느 정도입니까?
묻는다. 나는 부끄럽다. 숨고 싶다. 내가 이룬 모든 것들이 부정된다. 내가 본 것, 가본 곳들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 내가 생각했던 베트남, 내가 생각했던 달랏은 없다. 편견과 갱년기의 늘어진 반성만 있다.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이 순간은 내게서 도망가질 못한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저의 가루가 세상에 퍼지면 혹시 꽃이 피고, 나비가 날까요? 저의 글은 저의 가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