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뛴다. 어쩌자고 뛰었을까?

그래도 뛴다

by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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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분


경기도 버스 어플에서 2분 후 32번 버스가 온다고 한다.

1170 세대 단지 가장 안쪽 15층이다.

15층 아파트의 15층이다.

엘리베이터가 올라오고 있다.

20초는 더 까먹어야 한다.


뛸까?


가능성은 희박하다.

다음 버스는 20분 후.

20분을 기다리느니


뛰지 뭐


2단지에서 1차 고비다.


되겠어?


안 될 걸 아니까 더 힘들다.

이미 뛰었으니까 뛴다.

안 뛰려면 시작도 말았어야지.


주춤

무릎이 꺾이면서

거의 넘어질 뻔한다.


거의 3단지

3단지를 지나면 버스 정류장이다.


어플을 확인할까?

이미 떠났을 수도 있잖아


그럴 시간이 어딨어?


뛴다.


체력장도 이렇게는 안 뛰었다.

허벅지 근육이 썰려나가는 느낌이다.


후회도, 고통도 미지근해진다.


내가 달리기다.


아, 씨X 20분 있다가 나오면 되잖아.


이때쯤 등장하는 '욕하는 나'다.

이 새끼를 진즉에 손 좀 봤어야 하는데

평상시엔 알아서 긴다.

꽁꽁 숨어있다.


욕하는 나는

내 행동에는 어떤 영향력도 미치지 못한다.

이미 내 손을 떠났다.

시작을 택했으면

내 손을 떠난 거다.


그냥 한다.


이 느낌이 좋다.

그냥 하게 되기까지

발광해야 한다.

심장을 쥐어짜야 한다.


그렇게 새가 날고

그렇게 세렝게티 치타가 임팔라를 쫓는다.


정류장이다.

모란역으로 가는 32번은

오지 않았다.


아직 오지 않았다.


안 믿긴다.

막 떠나려는 버스를 가까스로 올라타는 게 최고의 해피엔딩이었다.


아우, 다 조까타


욕하는 나가 한 번 더 등장한다.

숨 쉬기가 힘든 모양이다.

눈치 없는 새끼.


쪼그려 앉아야 하는, 하차문 뒤뒤 자리가 내 자리.

남들은 불편한 그 자리가 좋다.

너무 좋다.


발을 올리고 몸을 만다.


32번 버스와 모란역으로 간다.


잠시 내가 모르는 나였다.

좀 멋있다.


눈 좀 붙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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