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해서 좀 많이 놀랐습니다
오늘은 종일 몽롱하네요. 어제는 다시 찾아온 스무 살처럼 쌩쌩하더니요. 기복이 있어서 좋아요. 내 몸이 내 것이지만, 내 것만은 아니니까요. 몸뚱이가 신이고, 우주 같아요. 어떤 날은 빌고 싶고, 어떤 날은 화내고 싶어요. 그렇다고 몸져누울 정도는 아니고요. 비가 쏟아붓기 전의 무르팍 같아요. 어제 밥을 좀 서둘러 먹더라니요. 라면 스무 봉지를 한 번에 먹는 유투버나 저나 같은 사람이긴 한 건가요? 그런 사람도 있어야죠. 이런 사람이 있듯이요.
방콕에 머물고 있으니 부럽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코로나로 방구석에만 있지만, 그래도 부럽대요. 그럼에도 불구하면 좋기만 하면 사랑인가요? 그럼 사랑 맞아요. 지금 이곳이 좋아요. 편해요. 칠 푼이 같긴 한데, 방에만 있어도 아직은 딱히 불만이 없네요. 뉴욕이나 코카서스 3국을 다닐 때도, 돌아가야지. 먼저 떠올랐던 나라가 태국이었어요. 한국이 아니라요. 늘 한국말로 쓰고, 교감하지만 몸뚱이는 좀 더 따뜻한 곳이 좋은가 봐요. 태국은 코로나를 성공적으로 막고 있어요. 최근 십일 간 순수 국내 감염은 0입니다. 우리나라처럼 더 철저하게 검사하면 더 나올 수도 있겠죠. 태국 사람들이 코로나를 대하는 자세를 보면 놀라실 거예요. 낙천적인 편이라서 걸리면 걸리는 거지, 그럴 줄 알았어요. 하루는 아주머니가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더군요. 같이 기다렸죠. 제가 타니까 안 타는 거예요. 먼저 올라가래요. 이봐요. 아주머니. 저 코로나 안 걸렸어요. 마스크도 썼다고요. 코로나 숙주 취급하시면 안 되죠. 생각할수록 기분 나쁘네요. 엘리베이터 안에서, 건물 입구에도, 건물 밖에도 손 세정제가 구비되어 있어요. 마트는 물론이고, 제법 큰 식당도 체온 측정하는 사람이 따로 있어요. 카페에서 음료를 마실 때도요. 커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마스크를 써요. TV 퀴즈 프로그램에서 출연자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는 건 또 무슨 경우인가요? 시청자들은 무슨 죄인가요? 입도 안 보이는 출연자들이 묻고, 답하는 걸 보는데 없는 화병도 걸리겠더라고요. 그만큼 겁이 많아요. 조심하라고 하면 깍듯이 지켜요. 식당에는 칸막이가 쳐져 있어요. 코로나 바이러스가 만난 가장 강적이 태국일 거예요. 지난달에 머리가 너무 길어서 단골 미용실을 찾아갔죠. 영업 금지지만 혹시나 해서요. 주인장이 있더라고요. 깎아달라고 매달렸죠. 절대로 안된대요. 정부에서 하지 말라고 했으니까요. 조심하라고 했으니까요. 은근슬쩍 넘어갈 수도 있잖아요. 셔터 내리고 한 명 깎으면, 그 돈으로 애들 과자라도 사줄 수 있잖아요. 태국이 이런 나라입니다.
이건 딴 얘기. 오늘 아침 뉴스입니다. 귀신 분장을 한 여자가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으로 옷을 팔아요. 평범한 옷인 줄 알았는데, 죽은 사람들 옷이네요. 옷 주인이 어떻게 죽었는지도 일일이 설명해요. 깨끗이 빨았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걱정도 하지 마라. 섬뜩한 얼굴로 찢어진 청바지에, 민무늬 블라우스를 팝니다. 더 충격적인 건 그 옷을 사는 사람들이네요. 왜죠? 한 푼이라도 싸서요? 예뻐서요? 희귀템이니까요? 태국 친구 말로는, 그 옷이 귀신을 부를 수 있다고 믿는대요. 귀신이 복권 번호를 불러 줄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네요. 네, 태국은 복권에 미친 나라니까요. 그깟 악몽이 뭐가 겁나요? 불길하면 좀 어때요? 복권에 당첨되면 그게 얼마인가요? 네, 태국이 이런 나라입니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글이 주는 잔잔한 힘을 믿으니까요. 잔잔하게 다가가겠습니다. 잔잔하게 찾아와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