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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긴 유튜버라서 비추 누르고 간다고? 이 새끼가

나는 관대하다. 나는 안 못생겼다고

by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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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한 마리가 자꾸 걸리적거려요. 책상 옆 알코올 분사기를 재빨리 뿌려요. 조금 있다 또 윙윙윙. 또 알코올. 창문도 다 열어 놨겠다. 알코올 없는 세상에서 놀 것이지, 왜 자꾸 알짱대니? 내 몸에서 똥 냄새나냐? 미역국을 끓이려는데 이 놈이 부엌에서 작은 부스러기 하나를 핥고 있네요. 언뜻 공놀이를 하는 메시 같아요. 알코올에 취해서 제정신이 아닌 거죠. 이제 저 파리 새끼는 못 죽이죠. 구면이잖아요. 원래부터 좀 멍청한 새끼 같은데, 알코올 충격에 대가리 피가 안 도나 봐요. 안쓰럽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감옥에 있으면 바퀴벌레랑 친구 먹는다더니. 저도 너무 오래 방에만 갇혀 있었나 봐요. 파리뿐만이 아니에요. 바퀴벌레들이 영양실조로 투명해져서 비틀비틀 기어 나오고 있어요. 제가 청소를 악착같이 하거든요. 배고픔을 참다 참다 기어 나와요. 제가 빤히 있는데도요. 예전엔 상상도 할 수 없는 대담한 짓이죠. 배고프면 눈에 뵈는 게 없구나. 그 고통 줄여 줘야죠. 알코올을 여러 번 분사한 후에 휴지로 꾹. 저는 왜 심장이 두근대는 걸까요.


방콕은 코로나 이전 분위기로 빠르게 회복되고 있어요. 차들이 어찌나 많이 나오는지 정체구간도 늘고 있고요. 그러면 이제 비행기 뜨는 일만 남은 건가요? 한국에서 방콕으로 오는 아시아나 비행기는 7월에도 없다네요. 7월에 방콕으로 오는 비행기가 없다면, 7월 말에 한국으로 날아가는 에어아시아 비행기는 뜰까요? 그게 안 뜬다면, 올해 안에 한국을 갈 수 있으려나요? 여행을 왔다가 갇힌 지구인이 전 세계 천만 명 정도는 되지 않을까요? 다들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저는 평온해요. 원래 살던 삶이기는 해요. 떠돌이의 삶. 진짜 저는 괜찮아요. 귀여운 파리가 절 웃겨 주잖아요. 지금 뉴스에선 한 남자가 지붕에서 추락해서 쇠막대기에 똥꼬를 찔렸어요. 50센티나 들어갔대요. 다행히 무사하다네요. 1절만 하지, 그걸 다시 그림 뉴스로 정리해서 꼼꼼하게 보여 줘요. 멀쩡하게 누워있는 쇠막대기가 똥꼬로 들어가는 게 이렇게나 쉬운 일이었나요? 하긴 지붕이 무너지는 것부터 따져야죠. 그런 얇디얇은 지붕을 걸은 것부터 원죄를 물어야 할까요? 태국인은 기괴한 뉴스를 참 좋아해요. 이번엔 물고기가 똥꼬로 들어간 중국인에 대해서 한참을 떠들어요. 저건 왠지 사고가 아닐 거란 생각부터 드는군요. 그걸 똥꼬에 왜 넣어? 저란 놈은 이리 냉소적입니다.


제가 유튜브 계정이 있어요. 코카서스 3국,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을 다녀왔어요. 그때 올린 영상이 네 개 있어요. 편집에, 자막에 하다 하다 지쳐서 때려치웠어요. 오래간만에 한 번 들어가 봤죠.


-못 생긴 중국인 같아서 비추 누르고 갑니다.


순하고, 친절한 댓글 사이에서 가장 눈에 띄더군요. 못생긴 유튜버가 얼마나 많은데, 왜 나한테 시비니? 이렇게 따지는 두부 멘털 이젠 아니죠. 저 멘털 좀 강해졌네요. 악플로 도배가 되면 그땐 또 무너지겠지만, 지금은 그냥 재밌어요. 어떤 댓글을 달면 좋을까요?


-못 생긴 중국인에게 사과하세욧

-못 생긴 한국인 정도도 안 되나요?

-더 못생긴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보고, 명상하다 보면 졸라 잘생겼습니다.


이제 유튜버를 할 멘털까지 준비됐군요. 저란 놈 한다면 해요. 대신 어떻게든 버티는 입지전적인 인물은 또 아니죠. 아니다 싶으면, 또 꼬리 내리고, 포기해요. 누구보다 제가 소중하니까요. 그런 건 있어요. 짧게 보지는 말자. '너머'의 결과를 보려면 조금은 긴 호흡으로 봐야겠죠. 부정적인 댓글도, 긍정적인 댓글도 큰 흐름 속에 녹아들 테니까요. 이제 주사위를 던져 보려고요. 며칠만 기다리시면 못생긴 유튜버가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진심 개그로 승부하고 싶습니다. 원래 내 포지셔닝이 '개그'였어요. 이렇게 순한 모습은 노화 때문인가 봐요. 엉엉. 제 대학 동기가 저 군대에 있을 때 편지를 보냈더라고요. 그놈도 군인이었죠.


-민우야, 너 같은 후임이 들어왔다. 살인 충동 나더라. 너 생각하면서 참는다.


위문편지라고 하잖아요. 이런 게 위문이 된다고 생각했나 봐요. 그 새끼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저를 몰랐나요? 그런데 여기까지 오셨나요? 신기하고, 신기해요. 그 넓은 우주에서 이렇게 만나다니요? 그 재미로 씁니다. 당신을 만나기 위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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