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나라 다 좋다고는 하지만요
저를 아예 일본 사람이라고 확신하는 태국 사람이 많아요. 일본에서는 딱히 일본 사람 같다는 말 못 들었거든요. 동남아시아에 특화된 '일본 얼굴'인가 봐요. 예를 들면 자주 가는 마트에서 한 점원이 수줍게 '아리가토 고자이마스' 이러는 거예요. 그 한 마디를 몇 달간 연습했나 봐요. 태국 친구가 제 얼굴이 일본 만화영화에 나왔던 누구랑 꼭 닮았대요. 저보다 훨씬 잘 생겼더군요. 눈 크고, 똘망똘망하고. 마침 옆에 일본 남자 둘이 커피를 마시고 있더라고요. 저렇게 생긴 사람이 일본 사람이야. 그랬더니요. 아냐. 네가 더 일본 사람처럼 생겼어. 참나, 어이가 없어서. 치앙마이에서도 나이 지긋한 노인분이 다짜고짜 일본어로 제게 말을 거는 거예요. 태국 대학교 일본어 교수라면서요. 영어는 또 몇 마디 못해서, 그냥 가던 길 가셔야 했죠. 저놈 일본 놈이 확실한데. 그런 표정이더라고요. 기분 나쁠 게 뭐 있어요? 저는 일본 사람이 아닌 걸요. 제가 한국 사람이라고 하면, 한국 사람이라고 또 반가워해요. 일본인과 한국인 중 태국에서 누가 더 인기가 많을까요?
일본은 생활 전반에 걸쳐 침투해 있어요. 호감도의 총량으로는 일본 못 이겨요. 일본 자동차 대부분이 태국에도 현지 공장이 있을 정도니까요. 태국 사람들은 대부분 일본 자동차를 타요. 에어컨도 마찬가지죠. 에어컨은 그냥 가전제품이 아니에요. 태국에선 가장 중요한 필수품이죠. 다이킨(Daikin) 에어컨이라고 아시나요? 저도 태국 와서 알았네요. 오사카에 본사를 둔 다국적 에어컨 회사래요. 태국에서 에어컨을 가장 많이 파는 회사 중 하나랍니다. 후지산과 일본의 벚꽃은 태국 사람들이 죽기 전에 꼭 가보고 싶은 곳이기도 하죠. 일본의 쓰시는 태국 외식 문화에 완전히 자리 잡았어요. 가격도 비싸요. 체인점 Fuji는 대기표 받고 기다려야 할 정도죠. 한국이 빠른 속도로 일본의 자리를 뺏어오고 있는 중이죠. 본촌 치킨이 큰 역할을 했어요. 우리나라에선 딱히 유명하지 않죠? 태국에선 대박 났어요. 태국 사람들은 아무리 맛집이어도 메뉴 달랑 하나면 싫증 내요. 여러 메뉴를 갖추고 있어야 해요. 본촌 치킨은 순두부도 팔고, 떡볶이도 팔아요. 여러 가지를 시켜놓고 나눠 먹는 태국 사람 취향을 제대로 저격한 거죠. '두 끼'라는 떡볶이 뷔페 집도 바글바글하더군요. 한국에서 꽤나 유명한 곳인가 보더군요. 떡볶이만 있는 게 아니라 양념치킨, 한국식 주먹밥, 어묵까지 있던데요. 이래야 태국 사람들이 좋아해요. 여러 가지를 동시에 맛볼 수 있어야 태국 사람 성에 차거든요.
치킨, 떡볶이 백만 그릇 팔아도 블랙핑크 리사 한 명에게는 안돼요. 리사는 블랙핑크에서 랩을 담당하는 태국인이죠. 태국 국민 영웅이에요. 태국만이 아니더군요. 초반엔 제니가 대세였지만, 요즘 보면 리사가 블랙핑크 대세더군요. 미국이나 서구권에서 리사가 랩만 시작하면 자지러져요. 태국 여자 아이들은 다들 리사예요. 커서 리사가 되고 싶고요. 이름도 리사(태국은 이름 대신 별명을 주로 써요)인 아이들이 태국에 수백만 명이예요. 리사가 모델로 나오면 무슨 상품이든 대박은 따논 당상이죠. 리사를 키워준 블랙핑크가 있는 나라. 그 어떤 영향력을 다 합쳐도 리사가 이겨요. 리사는 한 마디로 '어나더 레벨'인 거죠. 고3 태국 여학생이 한국에 왔을 때 가이드한 적이 있어요. 하필 너무 추운 겨울이어서 어딜 가지를 못했어요. 집 근처 밥집이 전부였죠. 도쿄에서는 외교관인 삼촌 친구 덕에 여기저기 좋은 곳만 다녔고요. 저 때문에 한국이 완패했죠. 그런데 이 친구가 엑소와 NCT에 빠져버린 거예요. 한국이 무조건 최고래요. 우리나라 엔터 업계에 큰 상 줘야 해요. 이 친구들이 나이 먹으면, 그땐 아마 일본은 훨씬 입지가 줄어들 거예요. 한국이 최고인 태국의 신세대들이 끝까지 한국을 더 사랑해줄 테니까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저는 태국 방콕에서 갇혀 지내니까요. 이렇게 글로 소통하는 시간이 소중해요. 반갑습니다. 자주 오세요. 자주 보자고요. 이렇게 글로만 아는 친구도 멋지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