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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많아서 3년간 문을 닫아 버린 방콕의 카페 사장

무한한 경쟁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재수 없는 사나이

by 박민우


꼭 뭘 해야 한다는 강박은 불편하다. 좁은 방에서도 한없이 자유로울 수는 없을까? 유튜브를 시작하면서, 강박이 심해졌다. 놀면 뭐 하나? 글만 써서는 미래가 없어. 유튜브를 해야 해. 돈이 될 때까지 매달려야 해. 뭐라도 찍어 오자. 이 따뜻하고 한가한 나라에서 세속의 노예를 꿈꾼다. 식은땀으로 등짝이 축축하다. 명치끝이 꽉 막혀 있다. 체했나? 죽을병이라도 걸린 거야? 이 몸뚱이에 대들고 싶다. 샤워를 하고, 옷을 입는다. 고작 카페 하나 가면서 비장하다. 부끄럽다.


작은 마당이 있고,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카페다. 이발소의 폭신한 의자 옆에 어항이 있고, 어항 바로 앞에는 소파가 있다. 취향은 '옛날', 어수선하다. 대부분의 커피가 150밧, 6천 원. 드립 커피 전문점이다. 드리퍼들이 종류별로 있다. 제길. 커피 못 마시는데. 역류성 식도염 때문에, 최근 몇 달 자제 중이다. 커피가 아닌 걸로 석류가 들어간 아이스티가 있다. 말린 석류가 들어가고, 휘핑 크림이 올라가 있다. 차를 주문한 사람이 휘핑크림까지 먹고 싶겠어? 노력은 했지만, 참신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적개심이 든다. 그냥 나오고 싶다.


-커피 마시죠?

-마시면 배가 아파요.

-여기 화장실도 있으니까요.


영어로 소통하면 이게 문제다. 아픈 배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각자의 취향대로 해석한다. 커피를 마시면 역류성 식도염이 심해져요. 나는 이걸 영어로 표현할 능력이 못된다. 배가 아프다고 했더니, 이 남자는 물똥이 줄줄 새는 걸 떠올린다. 신기하지. 그 말 한마디에 커피를 마셔도 될 것 같다. 물똥이 줄줄 나오면, 화장실로 달려가야지. 온순한 양이되어서는 콜롬비아 원두와 치앙라이 원두를 순서대로 마신다. 이 맛있는 걸 참 오래 못 마셨다. 산미가 약한 바디에는 초콜릿도, 아몬드도, 생강도 숨어 있다. 이따위 향에 대한 소감은 우기는 사람 마음이다. 길게, 확신에 차서 말할수록 정답이 된다. 평평한 버터 위로 단단한 초콜릿 빙판이 미끄러진다. 졸라 맛있다. 오늘 밤 역류하는 위산을 허락하겠다. 식도가 타들어가도 된다. 죽어도 좋다까지는 아니지만, 죽이지만 말아줘. 그 아래 단계 정도의 쾌락은 된다.


-손님이 너무 없네요.

-손님이 너무 많아도 성가셔요. 그래서 3년 간 문을 닫었어요. 취미로 하는 거예요.


취미로 한다는 말에 화가 난다. 내 걱정은 하찮아졌다. 알고 보니 건축가였다. 세계 10대 리조트 건축가 중 한 명. 좋아서 하는 커피 놀이. 손님이 없을수록 행복하다. 바빠지면 거슬린다. 문을 닫아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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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내가 의지하는 절대적인 존재가 이 세상에 사라지면, 세계관이 통째로 바뀌죠. 이제 해외 프로젝트는 안 해요. 가족이랑 더 있으려고요. 내일 죽을지 몰라요. 그래서 지금이 너무 소중해요. 지금 눈앞의 손님이 소중한 이유죠. 그 사람이 기뻐하는 걸 보고 싶어요. 손님이 많으면, 일일이 케어해줄 수가 없어요. 이렇게 숨어 있는 곳에 와 주셔서 고마워요.


이 카페는 구글맵 평점 4.8점(5점 만점)이지만, 사장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내가 알려주자, 아이처럼 좋아한다. 마침 비가 퍼부었는데, 그는 차로 나를 집까지 데려다줬다. 이 카페를 다시 갈까? 글쎄. 두 번 가는 카페는 보통 마음이 편해야 한다. 모든 만남은 대부분 그래서 마지막이다. 무한한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쉽게 잊힐 사이라서, 이 순간만큼은 좀 더 강력하다. 비가 오늘따라 오래 온다. 뜨거운 쌀국수를 먹어야겠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오늘은 일기가 쓰고 싶어졌어요. 거창한 이야기말고, 작고 작은 내 이야기. 아, 유튜브로도 카페 이야기를 올렸어요. 별 건 없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8NF7RWhomj0&t=16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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