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우 작가님이세요? - 경산의 슈퍼스타

글 쓰며 살기를 잘했어

by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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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에서 대구 가기


통영시 용남 해안로. 카카오 택시가 안 잡힌다.


늦겠어!


대로변까지 빠른 걸음으로 20분. 쭉쭉 오르막. 늦으면 안 돼. 입안이 타들어간다. 늦으면 버스를 놓친다. 만약, 만약 버스를 놓치면 부산으로 가야 하나? KTX? 안돼. 헐떡헐떡. 대로변 택시, 바로 잡힌다.


살았다


조금 전까지 영혼이라도 팔 수 있었다. 제때 버스만 탈 수 있다면. 영혼은 무슨! 10분 만에 버스 터미널. 대구행 버스는 한 시간 후. 내 모든 조바심을 모독하는 한 시간.


2


버스 안에서 주름 펴기 체조 실시. 탄력 제로, 조각칼로 새긴 듯 정교한 팔자 주름. 반점인가? 화상인가? 가면을 하나 얹은 투톤의 얼굴. 청담동에서 메이크업부터 받고 어딜 가도 가야지. 매니저가 운전해 주는 카니발도 없고. 입을 타원형으로 오므리고, 눈을 힘차게 뜬다. 뭉크의 절규가 내 얼굴. 내 옆옆 여자가 이런 나를 보면, 그녀의 삶은 평생 공포다. 혀도 좀 앞으로 내밀고, 목 힘줄이 우두두 튀어나올 때까지


오오오오오오


3

대구 서부 터미널에서 경산까지. 소진님 커플 차를 타고 간다. 소진님은 오랜 독자로 남자 친구까지 함께다. 경산의 카페는 소진님 절친 카페. 장소, 사람 모으기 역시 소진님 담당. 한식대첩에 나온 식당 점심도 소진님 선택. 소진님의 카드로 쓱쓱.


"박민우 작가님 아니세요? 박민우 님 책 읽고 남미 다녀왔어요. 남편도요. 오늘 강연도 너무 가고 싶었는데, 아이 때문에요."


경산의 밥집에서 불쑥 독자를 만나는 작가가 몇이나 될까? 나를 초대한 독자, 우연히 마주친 독자. 둘에게 내 책은 인생 책이었고(그렇다고 말하시오), 그들을 남미로 인도했다. 하루키도 못 이룬 업적이다. 노벨 문학상은 내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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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유효. 독특한 이름이다. 경산의 논밭을 끼고, 덜렁. 2층의 우아한 건물. 대담한 커튼이 치렁, 앤티크한 가구들이 곳곳. 높은 천장, 공간을 왜 아껴? 널찍널찍.


"이쑤시개 있나요?"


아니 카페에 왜 이쑤시개도 없어. 이쑤시개, 이쑤시개. 이쑤시개만 있다면 영혼도 팔 수 있다. 김치찌개 돼지고기가 이에 탁 끼었다. 내 가방에 반만 남은 이쑤시개가 있지. 혹시 몰라 반만 부러뜨려서 쓴 이쑤시개. 나는 어찌 이리 철저할까? 부러진 이쑤시개로 해결. 화장실 거울, 내 얼굴 한 번 더 보고. 화장실이 환해서 주름이 잘 안 보여. 가페 유효 화장실 거울, 최고!



5


카페 유효.


조금은 휑한 논밭을 끼고, 웅장하다고도 할 수 있는 2층 건물.


여행의 이유다.


아늑하고 작은 카페려니 했다. 독자의 친구 카페. 친구가 어렵게 찾아낸 월세 50만 원 카페를 상상했다. 밝고, 크다. 고급스럽게, 한산하다. 빽빽하지 않아서, 놀랍다. 의자 하나라도 더 놔야지. 그런 조급함 없다. 공간을 쓰는 마음에서 부티가 철철. 뭐 좀 안다 싶은 대구, 경산 분들은 이리로 와야 한다. 진심으로, 대놓고 광고하고 싶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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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명


안도한다. 너무 적어서 서로가 미안해지면, 내 존재가 미안해진다. 대구, 경산에서 스무 명이 찾아와 여행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대뜸 이쑤시개를 찾던 마음과 비슷하다. 안절부절, 시간이, 공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른다. 뭘 더 이야기해야 할까? 이 시간이 여러분에게 괜찮습니까? 일일이 묻고 싶다. 카페 유효는 마카롱까지 엄청나다. 강연자가 맛을 느끼는 건 사치다. 엔간히 맛있어야지. 이야기하다가 맛의 정체로 내 마음이 쏠린다. 평생 모를 뻔한 곳이다. 이렇게 맛있어도 되나? 신비롭다는 생각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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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앙버터를 우걱우걱 씹는다. 카페 유효의 선물. 혹시 앙버터를 모를까 봐. 팥, 버터를 빵 사이에 넣은 언뜻 수수한 빵. 버터와 팥. 요 두 개가 한 층, 한 층 쌓여서는 차례로 다가온다. 버터는 약간 차갑다. 평생 만날 일 없었던 팥과 버터가 누군가의 재능으로 만났다. 재미는 없으면 만드는 것. 새롭게 탄생한 재미. 나는 이걸 9시 이전까지 먹어야 한다. 다음날 점심은 한 시. 열여섯 시간 공복. 간헐적 단식. 오늘 강연은 어땠지? 찾아와 주고, 집중해주고, 반가워해줬다. 이제야 다가온다. 여행 경비가 필요하다. 노트북을 사야 한다. 그래서 강연하겠습니다. 찾아주세요. 그렇게 이루어진 모임이다. 억지로 왔나? 내가 불쌍해서? 그런 이들에게조차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모르겠다. 몰입했다. 나는 잘 살고 있다. 칭찬부터 하겠다. 나는 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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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세자트라 숲. 나의 방. 아무도 없다. 직원도 없고, 내가 머무는 방 빼면 빈방이다. 고라니를 봤다. 어둑함 속에 우뚝. 심장이 벌렁벌렁, 고라니는 탄력 있는 무게로, 휙, 돌아선다. 사라진다. 고라니가 있는 숲이라니. 신비로워야 하는데, 무섭다. 아, 여기서 혼자 잔다. 방까지 한참을 올라가야 한다.


왜 무서울까?


잃을 게 많아서다. 내 목숨, 내가 소중하다. 언제든 죽을 수 있다. 명심하기가 쉽지 않다. 평생 안 죽을 것 같다. 평생 무사할 것 같다. 나는 자연인이다. 숲 속에서 홀로 보내는 이들은, 홀로, 어둠이 괜찮을까? 무서웠을 것이다. 잃을 게 없다. 잃어도 된다. 어떤 간절함이 내몰았을 것이다. 대부분은 더 건강해진다. 우리가 모르는 고요함, 그 너머에는 모르는 세상이 있다. 모르는 치유가 있다.


9


배탈이 난다. 크게 난다. 허겁지겁 앙버터가 체한 듯. 복통으로 배가 꿀렁댄다. 홀로, 이 깊은 곳. 전혀 두렵지 않다. 두려움을 이기는 건, 고통. 고통도 두려움. 더 큰 고통일까 봐. 그래서 두렵다.


복통은 가라앉았다. 격렬하게 한 시간 정도 괴로웠다. 복통 덕에 깊이 잤다. 고라니의 어둠이 참 우습더라. 불필요한 공포는 복통이 특효약. 소중하지 않은 아픔은 없다.


무려 36만 원을 벌었다. 전 재산은 현재 96원. 노트북부터 사겠다. 조지아로 가는 비행기 티켓은 나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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