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 공무원 재성이

다가오기 혹은 들이대기 9단

by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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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성이는 유경이를 통해 알게 됐다. 유경이는 콜롬비아에서 만났다. 유경이와 재성이는 여행을 좋아하고, 와인을 좋아한다. 둘 다 전주 사람. 유경이는 나를 홈파티에 불렀다. 홈파티 겸 여행 강연. 라이스페이퍼 오리 쌈, 연어 베이글, 연어회, 김밥(상당히 맛있는 김밥), 돼지고기 튀김(촉촉하고, 부드러워서 먹다가 이리저리 다시 보게 되는)으로 나를 놀라게 했다. 과일 와인, 샹그리아를 큼직한 통 두 개에 담아서는 탭만 누르면 얼마든지 마시게 했다. 회비 3만 원을 걷는다기에, 비싼 거 아니야? 걱정부터 됐던 자리였다. 기다란 직사각형의 거실에서 30여 명이 옹기종기. 유난히 눈빛이 초롱초롱, 중년의 사내가 있었다. 재성이였다.


내게 카톡을 묻더니, 사흘에 한 번 꼴로 안부를 묻는다.


형, 멋있습니다 - (응?)

형님, 부럽습니다 - (끄덕끄덕)

형, 드디어 형 책 읽었어. 와, 인도에서 고생 많았구나 - (말이 짧다?)

형, 형이 못 생긴 얼굴은 아니잖아 - (간신히 못 생김은 면했다?)

형, 통영으로 갈게 - (그러시든가)


며칠 전부터 나는 들떠 있었다. 드디어 굴정식을 먹을 수 있게 됐어. 통영의 굴정식은 둘부터다. 1인용 정식은 없다. 15,000원에서 20,000원 정도에 굴튀김, 굴국, 굴무침을 원 없이 먹을 수 있다.


"굴? 있으면 먹어. 형이 좋아하면 먹게"


싫지만 억지로 먹어드리겠습니다? 통영의 굴정 식이 날아갔다. 모두가 굴을 좋아할 필요야 없지만, 너 새끼는 좀 좋아해 주면 안 돼? 소방 공무원이라면서 뭐가 그렇게 까다로워? 전주에선 아무 밥집도 다 맛있는데, 다른 동네는 맛집도 별로라고?


"굴 정식집 가자!"


새벽에 화재가 있었다. 출동에서 불을 끄고, 세 시간 잤다. 나를 보기 위해 K3를 몰고 왔다. 나는 어떻게든 굴정식을 먹어야겠다. 피곤하고, 정의로운 소방 공무원이 딱히 안쓰럽지도 않다. 밥값은 내가 내겠다. 보통은 내가 얻어먹어도 안 미안한 사람 위주로 만난다. 96만 원이 전 재산이지만, 4만 원을 쓰겠다. 다짜고짜 카톡 아이디를 묻고, 사흘에 한 번 카톡을 날리는(매일 보내고 싶을 것이다) 이 녀석은 하필 소방 공무원이다. 하필 외벌이다. 두 아이의 아빠다. 너의 일주일을 들었다 놨다 한 '지금이니까 인도, 지금이라서 훈자'의 저자를 보려고 전주에서 달려왔다. 너는 그냥 나만 봐도 좋다. 내가 사실 뭘 먹어도, 너는 내 여행이 궁금할 뿐이다. 심지어 그 거룩한 저자가 돈을 낸다. 먹기 싫으면, 김치나 먹든가. 자기중심적인 까칠함은 천재 작가니까 좀 있어도 된다.


"와, 형! 여기 정말 맛있다."


해물가라는 식당의 소갈비 굴정식. 19,000원. 평일에만 가능한 메뉴. 갈비와 굴, 전복, 떡이 들어간 전골이다. 단단한 육질 맛으로 먹는 줄 알았던 전복이 희한할 정도로 부드러웠다. 전복, 갈비가 굴만큼이나 부드러워서, 벚꽃 만개한 봉수골보다 살짝 더 행복했다. 육수와 떡을 가득 채워주는 이모님 덕에, 소주까지 한 병 시켰다. 이 집 굴튀김은 딱 좋게 바삭하다.


"아냐, 아냐. 내가 내야지."


나는 분명 갤럭시 노트를 재빨리 켰고, 삼성 페이를 들이밀었다. 재성이는 한참 뒤에 지갑을 꺼냈다. 이모님은 재성이의 카드를 받았다. 아니라고, 내가 내겠다고. 나는 주장했고,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장사를 하는 사람은 본능적으로 누구의 카드를 받아야 하는지 안다. 확실히 더 내겠다는 사람 걸 받는다. 내 주저함을 읽었다. 96만 원 빼기 4만 2천 원은 91만 팔천 원. 훌륭한 암산 실력으로 남은 재산을 셈하는 나는, 계산대 앞에서 어깨가 처지고, 등이 굽는다. 손은 카드 단말기에서 90cm 떨어진 곳에서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내가 낼 거야. 말은 뱉지만, 말끝은 분명치 않다. 결국 96만 원이 훼손되지 않았다는 기쁨, 소방 공무원이자, 동생인 남자에게 얻어먹은 미안함.


봉수골의 벚꽃을 봤다. 몸과 마음이라는 카페는 월요일, 화요일 문을 닫는구나. 재성이가 소방 공무원이 아니었다면, 평일에만 가능한 입에 녹는 전복 굴 소갈비찜은 불가능했다. 그러니 카페는 문을 닫아도 된다. 주섬주섬 마카롱을 꺼냈다. 전날 대구 강연에서 받은 선물이다. 촌놈 재성이는 처음 먹어보는 마카롱이라, 사실 이렇게까지 맛있을 필요도 없다. 카페 유효의 마카롱은 놀랍다. 가치를 아는 내가 다 먹어야 된다. 재성이는 Toffix라는 캐러멜을 줬다. 새콤달콤 같은 거였다. 원래 안 먹지만, 느끼한 마카롱 뒤에 먹는 새콤달콤은 괜찮았다.


"형. 내가 예순한 살에 은퇴하거든. 운전은 내가 할게. 차를 렌트해서 남미를 돌자."


소방공무원은 평균 수명이 짧다. 은퇴하고 빨리 죽는다. 낮밤이 바뀌고, 출동 시에는 과속을 해야 한다. 그런 상황을 무사히 마치고도, 빨리 죽는다. 재성이의 말이다. 몸이 분리된 시체, 구더기로 가득한 시체를 본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하고, 충격도 이젠 딱히 대단하지 않다. 혼자 베트남에 갔다. 안 되는 영어로 외국 친구들과 어울리고, 모르는 친구들과 콩카페에서 코코넛 커피를 마셨다. 이런 재미도 있구나. 삶에 여행이 추가되었다. 나를 보았고, 내 책을 읽었다. 삶에 내가 추가되었다. 여행이 주는 전율은 이제 확신으로 바뀌었다.


"광주로 가자!"


다음날 목포에서 강연이 있다. 광주 친구네서 자기로 한다. 전주에서 사는 재성이가 나를 광주까지 데려다준다. 차비도 벌고, 시간도 번다. 휴게소에서 Angelinus 커피를 샀다. 약간 마음이 편해졌다.


"형이랑 오니까 이것도 본다. 우와, 우와!"


매일 보는 일몰이다. 재성이는 나와 있는 순간 모두에 의미를 둔다. 과장한다. 나는 냉소적으로 피식, 붉게 지는 동그란 태양을 본다. 겹겹이, 차례로 겹쳐진 지리산도 본다. 구례를 지나고 있다. 광주로 갈 줄 몰랐다. 재성이가 왔고, 광주에서 잔다. 구례를 지나고, 유난히 붉고, 유난히 동그란 태양을 본다. 뿌옇게 올라오는 연기는 산불이었음을 나중에 안다. 사실, 지금의 풍경은 낮에 먹은 전복만큼이나 놀랍다. 예순 살이 넘어서 재성이와 남미를 갈 마음은 없다. 오늘 나의 하루는 재성이의 간절함이다. 그 간절함은 봉수골의 벚꽃으로, 부드러운 전복으로, 지리산의 동그란 태양으로 활활 타올랐다. 나의 예순 살은 재성이가 긁는 로또 복권처럼, 매주 재성의 곁으로 출동하게 될 것이다. 진짜 이 새끼가 차를 렌트하고, 내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새콤달콤을 씹고 있다면, 나는 그 순간이 좀 짜증 날 것이다. 짜증 나는 내 미래가, 현실이 되지 않으려면, 나는 이 새끼를 좀 멀리해야 한다.


이 새끼의 힘으로, 길도 막히지 않는다. 태양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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