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글을 쓰기로 했지만, 오늘은 정말 가시 방석이네요. 사실 어제저녁부터 안절부절못했죠. 불길하다. 실종된 박원순 시장에게 큰일이 난 게 분명하다. 무사함을 빌고 또 빌었죠. 밤늦게 비보를 듣고, 무언가가 폭삭 내려앉은 느낌이더군요. 서울 시장을 세 번을 연임했어요. 무려 세 번이요. 문재인 대통령과 맞서면서 나도 대통령 하고 싶다. 호기롭게 출사표를 던졌던 사람 아니던가요? 그런 사람이 자신의 목숨을 포기할 때는 얼마나 지독한 절망이었을까요? 아침에 눈뜨지 마자 저는 애도의 영상을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올려요. 그런 저를 탓하는 분이 계시더군요. 잠재적 성범죄자 박원순을 옹호한 사람이란 거죠. 비겁하게 죽음으로 도망 간.
그런 건가? 나는 정말 그런 사람인가? 남자여서 젠더 감수성이 무딘 건가? 고소한 여자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렸다면, 절대로 추모할 수 없는 건가? 가슴이 아플 수도 없는 건가? 서민의 눈높이로, 소수자의 눈높이로 기여한 인물임은 틀림없지 않나? 나는 그 정도의 자유도 없는 건가? 자유의 문제가 아닌가? 글은 내가 썼지만, 꼭 내 것도 아니니까. 세상에 눈치를 볼 필요는 없지만, 귀를 닫아서도 안되지. 그럼 이렇게 엄청난 일이 일어났는데, 엄한 이야기만 쓰라고? 혐의를 기정사실로 삼고 비난도 곁들여야 하나? 당장은 너무 가슴이 아픈데? 사람이 사람의 죽음 앞에서 본능적인 슬픔조차 조절해야 하는 건가? 감수를 받고, 퇴고를 거쳐서 '정제 슬픔'으로 다시 뽑아내야 옳은 건가?
이참에 글 쓰지 말까요? 그 어떤 욕망도 부질없네요. 이루고자 하는 게 있을수록 상처란 생각을 해요. 매일 글을 쓰겠다. 이것도 욕심이죠. 나나 만족하는 허영심이죠. 높이 올라가지 말고, 옆으로 가는 삶이 맞는 게 아닐까요? 저라면 일주일도 못 버티고 도망갔을 시장이라든지, 대통령에 여전히 목매는 사람들이 신기해요. 이타심이 없다면 불가능한 직책이죠. 나는 죽어도 불행할 거야. 이렇게 마음먹고 뛰어들어야 하는 자리 아닐까요? 그런 자리도 막상 앉아 보면, 제가 모르는 달콤함이 있는 걸까요?
세상은 코로나로 꽁꽁 싸매고 있고, 서울 시장은 공석이 됐네요. 누군가는 슬퍼하고, 누군가는 분노해요. 누군가는 아파하고, 누군가는 조롱해요. 이 세상이 소음으로 꽉 찬 지옥 같아요. 저의 슬픔은 또 얼마나 갈까요? 수많은 연예인의 죽음으로 무뎌질 대로 무뎌졌는데요. 누군가의 죽음이 아침의 토스트처럼 담담해지는 세상이 될까 봐 겁나요. 그런 세상도 올 거예요. 오고 말 거예요. 삶이 지옥이 되지 않았으면 해요. 슬플 때 슬퍼해도 되는 세상이었으면 해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오늘 하루를 잘 견디기 위해서 써요. 오늘 하루를 잘 마무리 하기 위해 써요. 저를 위해 써요. 저를 위해 쓰지만, 누군가에게도 얻어걸린 것처럼 야트막한 의미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