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좋아. 그런 밤이 있으신가요?
다시 돌아가고 싶은 딱 하루가 있나요? 길게 생각하면 반칙, 십 초 안에 떠올려 보세요.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저는 스페인 발렌시아가 떠올라요. 2002년 겨울이었을 거예요. '거예요'라뇨? 가물가물할 수도 있군요. 그렇게 강렬했던 하루도요. 런던에서 어학연수 중이었죠. 처음엔 그저 좋았죠. 평생 런던에서 살고 싶을 정도로요. 환상적인 공원들, 빨간 2층 버스, 밤 열 시까지 해가 지지 않는 여름. 가을로 접어드니까 오후 다섯 시면 해는 끝. 으슬으슬 어둑어둑, 알아서 우울해져라. 우울증 자판기 같은 날씨로 돌변하더라고요. 난 이런 곳에선 죽어도 못 산다. 스페인으로 날아가요. 스페인 발렌시아에 동갑내기 친구 하비가 살거든요. 하비는 한국에서 알게 된 친구죠. 동갑에다 뒤끝 저는 성격까지 닮아서 우린 금세 친해졌어요. 대사관에서 일했던 나름 고급 인력이었어요. 친하다고는 해도, 사실 신세 지는 건 다른 문제죠. 그런데 그때는 막무가내였어요. 돈도 없죠. 런던은 탈출하고 싶죠. 외국인 친구가 환영한다니까 우쭐해지기도 하죠. 무작정 갔어요. 친형이 맞은편에서 사는데 마침 휴가를 갔거든요. 그러니까 집 한 채를 무상으로 쓸 수 있게 된 거죠. 횡재죠. 영국과 스페인은 이렇게 날씨가 다르군요. 밝고, 따뜻한 발렌시아의 겨울은 봅의 왈츠처럼 달달하더군요.
매일 파티였어요. 스페인 친구들은 영어 한 마디 못하면서 무슨 말을 그렇게 거는 걸까요? 제가 영어로 답하면 또 못 알아듣고, 자기 네 끼리 마음대로 웃어요. 한 마디로 뒤죽박죽이었죠.
-민우, 준비됐어? 금요일 밤이라고.
야, 이 미친놈아. 매일 주말처럼 놀았잖아. 몸살 났다고 몇 번을 말해. 죽어도 나가야 한다는 거예요. 공장을 개조한 클럽이 생겼는데, 발렌시아 멋쟁이는 다 온다면서요. 클럽이야 왜 싫겠어요? 한참 나이인데요. 부실한 몸이 원수죠. 중간에라도 가자고 하면, 집으로 돌아오기로 하고 가요. 뭐, 별 거 없더군요. 좀 많이 크다 정도? 뿅뿅뽕 전자음은 참 적응 안 되더군요. 말세야, 말세. 이딴 것도 음악이라고. 걸쭉한 스페인 노래들을 기대했던 저는, 떡칠한 기계음에 없던 공황 장애도 오겠더라고요. 발렌시아는 스페인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예요. 오렌지가 유명하죠.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는 여행자들 천지죠. 발렌시아 촌놈들은 제가 그렇게 신기한가 봐요. 독자님들 저, 신기하게 안 생겼거든요(정색). 얘네들이 거의 줄 서서 술을 주더라고요. 뭐지? 왜지? 이유는 하나도 안 궁금하고요. 공짜 술이 너무 기뻐요. 주는 족족 다 받아 마셨죠. 사람들이 나를 빙 둘러싸고, 차례를 기다려서 술을 주더라고요. 이 부분은 과장 맞아요. 제가 이미 많이 취했거든요. 아! 전자음(EDM)은 듣는 게 아니었군요. 혈관으로 알아서 흐르는 거였어요. 헤모글로빈에 전자 음이 한 개씩 쏙쏙 담겨서, 온몸을 뱀처럼 흐르는 거예요. 하비가 흐뭇한 표정으로 저를 지켜보더군요. 몸살 기운이 있다고 했던가요? 제가 언제요? 아침 열 시에 1차 클럽이 끝나요. 1차? 네, 아침 열 시에 여는 클럽이 또 있더군요. 스페인은 노는 거에 미친 나라 맞아요. 창문이란 창문은 이중, 삼중으로 막아서 안은 그냥 칠흑 같은 밤이에요. 거기서 오후 네 시까지, 저는 독보적으로 퍼마시고, 춰요. 사람들을 구름 떼(이것 역시 과장)처럼 몰고 다니면서요. 2차 끝났으면 3차 가야죠. 하비 친구네 집에서 또 술을 퍼마셔요. 저는 거실에서 계속 혼자 춰요. EDM이 없어도 EDM이 이미 혈관 속에 저장되어 있으니까요.
그리고 거의 일주일을 앓아요. 집이 아무리 좋으면 뭐해요? 차가운 대리석 바닥을 걸을 때마다,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데요. 손님이란 게 매일 누워서 끙끙 앓아요. 민폐도 그런 민폐가 없었죠. 평생 그렇게 아픈 몸살은 손에 꼽을 정도였죠. 하비는 약 먹이랴, 약 먹기 전에 빵 먹이랴, 나이팅게일이 따로 없더군요. 죽을 가져왔어야지. 빵이 뭐야, 인마! 저, 그렇게 다시 아파보고 싶어요. 한 열흘은 앓아누워도 돼요. 제가 세상의 중심인 밤이었죠. EDM과 접신한 밤이었어요. 이런 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너무 행복에 겨우면 자동 각성이 돼요. 다시는 오지 않을 순간임을 확신해요. 잔인한 딱 한 번의 쾌락, 오렌지 향이 바닷바람에 실려오는 발렌시아의 밤. 그 밤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죽어도 좋아. 함부로 덤벼드는 쾌락주의자들이 처음으로 이해되던 밤이었죠.
PS 매일 글을 씁니다. 제가 매일 쓰지 않으면 슬퍼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시죠? 사실은 저도 몰라요. 데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