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인간이 아니었어요
지구촌 인생 음식에 대해서 쓰고 있었어요. 쓰다 보니까 사진은? 어떤 건 있을 테고, 어떤 건 없겠죠. 외장 하드에서 나라별 폴더를 뒤져가며 음식 사진을 찾아야 해요. 일단 포기.
1995년 1월 양구, 자대 배치를 받고 내무실에 들어가니 양쪽 침상에서 모두 태권도 연습을 하더군요. 저보다 몇 달 먼저 들어온 선임이 탈영을 해서 분위기가 험악했죠. 탈영의 이유는 태권도였어요. 며칠 후에 저 역시 탈영이 간절해지더군요. 강원도 겨울 아시죠? 태권도 도복 사이로 바람이 숭숭, 기합 소리는 제일 커야죠. 막내 이등병이 빠졌다는 소리 들으면 쓰나요? 태권도 담당인 중사가 갑자기 화를 내요. 이 따위 실력으로 단증 따기는 글렀다면서요. 그날 밤 말년 병장들은 깨가 쏟아져요. 아주 즐거운 일이 기다리나 봐요. 병장은 단증을 따건 안 따건 열외예요. 즉 상병부터 태권도를 해야 하죠. 다리를 찢기 시작합니다. 상병부터요. 성인 남자가 하루아침에 발레리노처럼 백팔십 도로 다리가 찢겨질 리 있나요? 병장 둘이 다리 하나씩을 잡고요. 또 다른 병장이 등 뒤에서 꾹꾹 눌러요. 군대에서 안 되는 게 어디 있나요? 비명을 질려대지만 결국 다리는 일직선으로 찢어져요. 몸이 뻣뻣한 사람은 허벅지가 까맣게 죽더군요. 피의 절규를 들으면서 제 차례를 기다립니다. 목이 잘리는 순간보다 그 순간을 기다리는 게 진짜 형벌이구나. 갑자기 사형수에 빙의돼서 온몸을 벌벌벌 떨었죠. 드디어 내 차례. 제 다리가 쭉쭉쭉 벌어지고, 제 배꼽이 침상에 닿아요. 신기하더군요. 어느새 저는 오징어 안 부러운 연체동물이 되어 있어요. 비명을 질러대지만 마음만은 편해요. 비명 소리를 들어가며 기다리지 않아도 되니까요. 제 다리도 그렇게 찢어졌어요. 군인 다리니까요.
진짜 비극은 월요일 아침이었어요.
-발차기가 이게 뭐야? 연습을 하나도 안 했구먼. 다리부터 찢는다. 실시
믿기시나요? 간부가 갈궈서 주말 밤 처형식을 했어요. 다들 엉금엉금 걷기도 힘들었죠. 영하 십 도 연병장에서 그런 다리로 발차기가 나오겠어요? 간부는 병장들을 갈궈요. 병장들도 웃음기가 사라지더군요. 설마! 인간의 악마성은 어디까지일까요? 그 일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모두 설마였어요. 겁만 주고 말겠지. 빨리 찢어. 중사의 명령에 우리는 모두 굳어 버려요. 이제 '설마'를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 지금도 그때의 광경을 떠올리니 숨이 잘 안 쉬어지네요. 두 다리가 찢기고, 배꼽이 바닥에 닿아야 해요. 여전히 퉁퉁 부은 다리를요. 통신분과 일병이 빈대떡처럼 퍼져서 일어나지를 못해요. 한 번 찢은 다리를 다시 한번 찢기고, 개구리처럼 바닥에 퍼졌어요. 이마를 모래에 짓이겨서 피가 철철. 너무 괴로우니까 바닥에 이마를 비벼댄 거죠. 수송부 또 다른 일병은 그 자리에서 하반신이 마비. 그날로 후송 차에 태워져요. 저는 불구가 되거나, 이마에서 피가 철철나지는 않았어요. 짐승의 시간을 숨죽여 바라보고, 죽음과 지금 중 어느 쪽이 괴로운가? 슬픈 저울질을 했을 뿐이죠. 그렇게 납작해져서, 쉰 목소리로 쇳소리 섞인 비명을 질러댔죠.
군인이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저의 일상은 황홀해요. 악마 같은 군상들을 보면서도 덤덤해요. 뉴스에도 안 나오는, 우리 땐 다 그랬어. 아무것도 아닌 기억일 뿐이죠. 일개 육군이 고생을 했으면 얼마나 했겠어요? 피가 철철 나는 95년 1월의 양구를 기억해요. 누군가가 하반신이 마비돼도, 남은 사람은 태권도 연습을 해야 하는 양구였죠.
PS 매일 글을 씁니다. 어떤 날은 위로를, 어떤 날은 공감을, 어떤 날은 재미를 주는 글이기를 바랍니다. 열심히 쓰겠습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