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 봐서 아는데 - 여행 꼰대들

알긴 뭘 안다는 겁니까?

by 박민우


마추픽추.JPG 꼰대씨 덕분에 못 올 뻔했던 마추픽추


-거기 가지 마. 별 거 없어


이런 말 하는 사람 많죠. 별 거 없으니까 별 거 없다는 거겠죠. 한국에 외국인 여행자가 왔어요. 일정이 짧다면 이태원, 경복궁, 인사동, 롯데월드, 한강, 남대문, 청계천, 광장시장 정도를 돌겠죠. 그리고 자기네 나라로 돌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재밌었을 테고, 어떤 사람은 시시했을 거예요.


-내가 한국 가 봐서 아는데, 별 거 없어.


동의가 되시나요? 한국 사람이라면, 가본 곳들이 일부 중의 일부라고 생각하죠. 제주도도 안 가보고, 부산도 안 가봤으면서? 해방촌에서 밀집된 주택가를 내려다보지도 않고? 부암동 산책은 해봤을까? 잘 가꿔진 대학교 캠퍼스만 돌아다녀도 입이 떡 벌어졌을 텐데. 대학가의 맛집만 돌아도 그저 신기하고, 재밌었을 텐데. 최고의 바리스타, 바텐더들이 만든 커피와 칵테일 맛집은 알고 있을까? 전주에서 안주가 무지막지하게 나오는 막걸리 집이라든지, 통영에서 회가 끝없이 나오는 다찌집을 가보고도 한국이 별로라고? 크고 작은 섬들은? 창의적이기까지 한 수목원은? 한국인도 따라가기 벅찬 캠핑장은? 펜션은? 호텔은? 그림 같은 곳에 있는 절들은? 계절마다 극단적으로 바뀌는 한국의 산들은?


한국인은 부정적인 생각으로 돌아간 그 외국인이 서운할 거예요. 어느 나라나 끝내주는 곳이 없을까요? 모르고 못 가는 거죠. 관광객으로 관광을 하고 나는 이 나라를 안다. 그건 아니죠. 이태원에서 맥주 한 잔을 하면 관광객이 한국의 계층 간 세대 간 갈등에 대한 칼럼이라도 쓸 수 있다는 건가요? 왜 이리 흥분하냐고요? 제가 남미로 떠날 때 그렇게 말리던 사람이 생각나서요. 돈이 많은 사람이나 가는 곳이래요. 돈 없으면 위험하고, 거지 같은 곳만 가야 한다면서요. 돈도 없는 너는 차라리 안 가는 게 낫다. 확신에 차서 충고하더군요. 가뜩이나 겁도 많은 저는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기분이었다니까요. 평생 가장 잘한 선택은 그때 남미를 갔던 거죠. 그분은 왜 그런 확신을 했던 걸까요?


-나한테 안 맞았던 것 같아.


별로였다면 그 정도 수위가 딱 좋지 싶어요. 꼭 여행 이야기에 국한되는 건 아니죠. 내가 해봐서 아는데, 내가 먼저 태어나 봐서 아는데. 개인의 경험일 뿐이죠. 상대방에게 반박할 여지를 주지 않겠다. 닥치고 내 말에 복종하라. 상대방을 입도 뻥긋 못하게 하려는 욕망일 뿐이죠. 여행 꼰대 되지 말자고요. 자신이 가본 곳 참견하고 싶은 그 마음 왜 모르겠어요? 같이 즐기면 되죠. 나는 이게 좋았어. 나는 이게 싫었어.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나요? 왜 이리 흥분하냐고요? 제 모습이기도 해서요. 자신에게 아예 없는 모습은 흥분도 안 돼요. 조금 더 다녔다 이거죠. 아는 척하고 싶고, 너희들은 다 틀렸어. 깽판 놓고 싶죠. 으스대고 싶은 욕망이 저에게도 얼마나 많은데요. 저한테 하는 잔소리예요. 함부로 나대지 말고, 모든 여행자의 생각을 귀담아듣겠다. 이런 다짐을 이 글을 쓰면서 하는 거죠. 착하게 살고 싶어서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우린 모두 약한 사람들이에요. 강해지려고 하지 말고, 약한 사람들끼리 연대하고, 응원하며 살아요. 조화의 질서가 사실 가장 강력한 힘일 수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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