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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추억 8090

응답하라 1980, 어떻게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누군가에게는 과거, 누군가에게는 언빌리버블

by 박민우

어떻게 천장에서 고양이가 떨어지지? 쥐새끼도?


우당탕, 우당탕. 늘 천장에선 추격전이 벌어졌죠. 방 천장이 뻥 뚫렸는데 쥐새끼와 눈이 마주친 적도 있었네요. 눈도 못 뜬 새끼 쥐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일까지 벌어져요. 본능적으로 천장을 봤죠. 어미 쥐와 눈이 마주쳤네요. 어머니가 그 쥐새끼를 쓰레받기에 담아서 푸세식 화장실에 버리셨죠. 쥐는 마땅히 죽어야 하는 끔찍한 생명체였는데, 그때는 기분이 이상하더군요. 어떤 생명은 태어날 때부터 죽어 마땅하다. 탄생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존재는 없는데 말이죠. 그 천장에서 끝내는 고양이까지 떨어지더군요. 아직도 생생해요. 그 날이 1월 1일이었거든요. 멍청한 고양이가 쥐를 쫓다가 삐끗했던 거죠. 그 고양이는 우리 집 식구가 됐어요. 큰 집으로 입양 가기는 했지만, 새끼도 낳고 오랜 시간 우리 곁에 있었죠. 신기한 게 길고양이 버릇을 못 버리고 훌쩍 사라졌다가도, 다시 돌아오고, 돌아오고 하더라고요. 천장 안은 엄연한 생태계였어요. 고양이가 떨어졌던 집은 그래도 우리 집뿐이더군요.


선생님 신발이 똥간에 빠졌어요. 엉엉


여자애였어요. 실내화를 빠뜨린 거예요. 재래식 화장실에서 별의별 일들이 일어났죠. 신발을 빠뜨리는 아이들이 그렇게 많았어요. 그러면 선생님이 나서요. 어쩌겠어요? 선생님뿐이죠. 선생님이 마대 자루 막대기로 휘적휘적 실내화를 건져내요. 건져내는 것까지만이죠. 여덟 살 여자애는 울면서 실내화를 수돗가에서 빨아요. 그걸 또다시 신어요. 어쩌겠어요? 실내화는 그거 하나고, 실내화는 꼭 신어야 하니까요. 그게 여덟 살 국민학생들의 룰이었으니까요. 지금 생각하면 교직도 참 극한 직업이었네요. 푸세식 화장실은 늘 공포의 대상이었죠. 귀신도 화장실에 살았죠.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어두컴컴할 때는 언제나 침을 꼴깍 삼키고 들어가야 했죠. 수세식 화장실이 학교에 설치되면서 또 그런 난리가 없었네요. 생전 처음 보는 물건이었으니까요. 좌변기에 두 발을 올리고 용변을 보는 애들이 그렇게 많았어요. 물 안 내리는 건 기본이고요. 한때 아이 러브스쿨 광풍이 불었잖아요. 국민학교, 중학교 동창들이 성인이 돼서 미친 듯이 모임을 가졌죠. 저는 모임까지는 안 가고 눈팅만 했는데, 그 코찔찔이들이 어엿해져서 깜짝 놀랐네요. 똥싸개, 코찔찔이, 머리에 이가 가득한 아이들이 그렇게 멀쩡한 남자 여자가 되더군요. 너희들의 비밀은 내가 다 알고 있다. 너희들도 내 비밀은 무덤까지 가지고 가렴.


대로변에서 꼬마들의 투석전, 이건 전쟁이야


저는 미아 5동에 살았어요. 미아 6동 아이들과 사이가 안 좋았죠. 미아 5동이란 이유로 미아 6동 아이들에게 맞는 일이 흔했어요. 어느 날 우린 전쟁을 선포해요. 어떤 식으로 그게 가능했는지 절차까지는 몰라요. 저는 어리고, 힘없는 '깍두기'였으니까요. 형들처럼 양손에 돌 두 개를 들고 현장에서 미아 6동 아이들과 대치했죠. 사람들과 차가 다니는 대로변에서 우리는 서로를 노려봐요. 그리고는 힘껏 양 손의 돌을 던져요.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던지면서 소리를 질러요. 그래 봤자 여덟 살에서 열 살, 열한 살 꼬마놈들이에요. 그런 아이들이 그런 짓을 하는 게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어른들은 왜 안 말렸을까요? 우린 진짜 제대로 투석전을 했었죠. 2차로 추격전이 이어지죠. 서로 쫓고 쫓기면서 외떨어진 아이를 두들겨 패는 거죠. 저처럼 아예 꼬마는 아무도 건드리지 않더군요. 무조건 이겨야 한다. 6동 아이들에 대한 적개심이 대단했죠. 6동 아이들은 5동 아이들과 생김새도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더 못 생기고, 더 가난한 아이들이 6동 아이들이었죠. 미아 5동도 서울에서 손꼽히는 서민 동네였는데, 그 와중에 그런 차별을 당연시했죠.


오락실과 만화 가게는 비행 청소년이나 가는 곳


만화가게에서 만화책을 읽고 있으면 우당탕 누군가의 부모님이 문을 열고 들어와요. 아이는 조건 반사적으로 무릎을 꿇고 빌어요. 한 번만 봐주세요. 다시는 안 올게요. 넌 집에 가서 보자. 잘 못 했어요. 한 번 만 봐주세요. 질질 끌려가면서 흐느껴 울고. 만화 가게 주인은 뻘쭘하게 그 상황을 지켜만 보죠. 만화책 내용은 그렇게도 건전했건만 만화가게는 절대로 오면 안 되는 곳이었어요. 저도 몰래 왔죠. 만화책이 더 재밌었던 이유는 와서는 안 되는 곳이어서였나 봐요. 오락실도 상황은 비슷했죠. 그래도 비참하게 끌려가는 쪽은 주로 만화가게였어요. 전자 오락을 공짜로 할 수 있는 따닥이라는 게 있었어요. 라이터를 개조해서 만든 건데 성능이 엄청났죠. 이걸 동전 투입구에서 누르면 불꽃이 일면서 동전 없이 게임이 가능했죠. 어떤 날은 스크린이 바둑판 모양으로 먹통이 되기도 했고요. 당시에 올림픽이라는 게임이 대유행이었는데, 달리기나 높이 뛰기용 줄톱이 있었어요. 이걸로 스위치를 드르륵드르륵 튕기듯이 누르면 선수들이 초능력자가 되죠. 날다시피 뛰었죠.


눈에 모래가 가득 들어갔던 아이


처음 보는 아이였어요. 모래사장에서 시비가 붙었죠. 우리 동네에서 싸움을 제일 잘하는 태권 소년과 맞붙었죠. 그래 봤자 애들 싸움이니 결국엔 뒹굴었죠. 그러다가 모래를 뿌렸어요. 서로 모래를 뿌리다가, 처음 본 그 아이가 쓰러져요. 비명을 질러요. 큰일 났다. 우리는 쓰러져 비명을 지르는 아이를 수돗가로 데리고 가요. 비명을 지르는 아이의 눈꺼풀을 뒤집었더니 안에 모래가 가득 들어 있는 거예요. 어떻게 모래가 이렇게까지 들어갈 수가 있지? 그 모래를 조심조심 물로 씻어줬던 기억이 나요. 그 깨알 같이 박힌 모래가 생생하네요. 그네에서 떨어져서 숨도 못 쉬던 아이, 철봉에서 바닥으로 추락한 아이, 쇠꼬챙이 담장에 가랑이를 찔린 아이들이 아슬아슬 죽지 않은 시대였죠. 그 뜨거운 석탄 난로 주변에서 레슬링을 하고, 밥을 먹어 배가 빵빵한 아이들에게 물구나무 기합을 주던 선생님이 있었죠. 그때는 그게 당연했고, 지금은 믿기지가 않아요. 그런 시간을 보냈군요. 그런 시간이 있었군요. 믿기지가 않아서, 지금은 남일 같기도 하네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작은 쉼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글을 쓰고, 여러분은 잠시 쉬어 주세요. 오늘도 수고 많으셨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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