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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추억 8090

이젠 남이 된 스무 살의 친구들아!

우린 참 어리석었어. 지금도 그렇지만

by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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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참 유치해. 별 거 아닌 것들로 이젠 남이나 다름없는 사이가 됐네. 진정한 친구라면 사실 크고 작은 위기들을 넘기면서 단단해지는 법이지. 그런 순간들도 여러 번 있었어. 초반에나 약간 어색하지. 우리가 누구야? 스무 살의 청춘을 같이 녹여서 술판을 벌이고, 미래의 공허함을 막걸리에 갈아 넣어 마신 사이잖아. 내가 더 불행해. 아냐, 내가 더 불쌍해. 다른 건 몰라도 비참함으로는 내가 최고다. 술만 마시면 신세 한탄이 이어졌지. 그래, 뒈져라. 이게 미쳤나? 진짜로 죽게? 죽겠다는 걸 말리면서 뭉클해지기도 했어. 끈끈하니까 나온 말들이고, 소중하니까 욕하고, 말리고 했던 거지. 그렇게 티격태격해도, 다른 누군가와 시비가 붙으면 그땐 무조건 한 편이었지. 네가 아픈 꼴은 못 본다. 네가 다치는 건 못 본다. 연인도 이리 끈끈할까 싶었지.


그렇게 반복되는 다툼이 이젠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를 않아. 어떤 친구는 1년, 어떤 친구는 10년. 그래, 지금 딱 한 명에게만 보내는 편지는 아니야. 나를 떠난 많은 친구들을 향한 단체 메일이야. 내 인간성의 치부를 드러내는 고해성사이기도 하지. 이젠 회복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 왜냐면 내가 노력이란 걸 하지 않을 거니까. 애쓰지 않을 거거든. 그럴 기운도 없고, 그럴 이유도 모르겠고. 어떻게든 관계만은 유지해야지. 그런 의리도 대의명분도 없어. 내가 편한 게 최고야. 우리의 싸움이 진짜 유치했던가? 꼭 그렇지만도 않아. 너나 나나 선을 넘었다고 생각했어. 남들 눈에 유치해 보인다고,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니니까. 화해를 제대로 했어야 했어. 늘 대충 얼버무렸지. 어색하니까, 다 지난 일 들춰봤자 좋을 것 없으니까. 해맑게 어울리는 거에만 집중했지. 비슷한 다툼이 반복되면서, 나는 좀 피곤하더라. 어떻게 완벽한 사람들과만 교류하겠어? 완벽을 꿈꾸지 않았는데, 결국 누군가를 전폭적으로 수용도 못 하겠더라.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다 이해하는 성인군자가 나는 아니더라. 외로움을 택하게 되더라. 슬픈 건 후회가 전혀 되지 않는다는 거야. 의리 없고, 외로운 놈이 나란 작자인 거지. 누군가의 잘못이겠니? 그냥 인연의 문제겠지. 평생 형제처럼 끝까지 갈 것 같아도 삐끗하면 힘없이 무너지더라. 한쪽이라도 발버둥을 쳤다면 방법이야 있었겠지. 아니야, 우린 또 새롭게 구태의연해져서, 또 등신처럼 상처를 줬을 거야. 상처가 기본값인 것처럼 물고 뜯었을 거야. 늙었다고 갑자기 착해지고, 배려하는 모습은 그것대로 보기가 싫을 것 같아. 그냥 누군가가 먼저 죽었을 때 가장 서럽게 우는 걸로 우리의 우정을 대신하자.


또 누가 알겠니? 어느 날 술을 한도 초과로 퍼마시고, 한국에 거의 없는 내가 우연히 너와 마주하면, 부둥켜안고 노래방으로 향할지. 여기는 태국 치앙마이야. 문득, 그런 순간은 없을 것 같아서 이렇게라도 글을 남겨. 우린 가장 찬란한 스무 살을 함께 했으니, 그 기억만으로도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에게 생생할 거야. 우리는 적이 아니야. 단지 바짝 붙어 있기엔, 서로의 온도가 너무 다를 뿐이지.


PS 매일 글을 씁니다. 쓰고 싶은 글을 쓸 때가 있어요. 그것마저 읽고 싶은 글이 되기를 소망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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