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독자이자, 누님이자, 부산아지매 숙경님이다. 둘째 성훈이가 중학교 1학년. 또래 친구 일곱 명. 총 여덟 명에게 강의를 해줄 수 있느냐고 했다. 억지다. 가난한 작가에게 강의료를 챙겨주기 위해 누님은 억지를 부린다.
금련산 청소년 수련원에서 나를 기다린다. 금련산역 스타벅스 앞에서 나는 입을 쩍쩍 벌린다. 속성 주름살 펴기 운동이다. 1% 정도의 착시 효과를 기대한다. 악어처럼 입을 벌린다. 십 년도 더 됐지 싶다. 부산의 한 대학에서 독자들과 만났다. 누님도 그때 처음 봤다. 해물탕집에서 2차를 하며 주거니 받거니. 고등학생부터 아이 엄마까지, 다양한 연령이 나를 보러왔다. 십 년 만의 재회다. 누님이 나를 보고 너무 놀라면 안 된다. 왜 이리 늙었습니까? 부산 아지매 특유의 당당함이 살짝 걱정된다. 멀리서 누님이 뛰어오고, 우리는 일단 횡단보도를 건넌다. 쎄라토를 탄다. 금련산은 서울의 남산같다. 내내 오르막이다. 남산처럼 데이트 코스로 인기라고 한다. 총 열 명의 아이들, 여덟 명의 엄마. 함께 수련원에서 수다를 나누는 밤. 여덟 엄마 중 한 명의 엄마가 쎄라토를 운전한다. 광안대교가 보인다. 풍경이지만, 나는 긴장상태.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라고는 했는데, 어찌될지 모르겠네요."
누님은 책을 사서 일일이 돌렸다. 그 책을 읽고 오면, 그냥 아저씨가, 책 속 그 어저씨가 된다. 사실 좀 오기 싫었던, 아니 오기 겁났다. 꾀죄죄한 여행자가 TV 속에서 콜롬비아를 여행한다. 저 사람 여행 참 재미나게 하네. 그때부터 누님과 누님 여동생은 내 책을 사고, 읽는다. 동생은 남미까지 다녀온다. 십 년이 지났다. 여행이 끝나면 일상, 한 때의 열광이면 족하다. 그때 갓난쟁이가 중학생이 됐다. 누님은 그때 갓난쟁이 아들에게 나를 보여주고 싶다. 안 보이는 어딘가에서 엉엉 울고 싶다. 내 안은 이미 와르르 무너졌다. 아이들은 미친 망아지 같을 것이다. 중1이다. 미쳐 날뛰라고 중1이다. 누님은 아이들을 통제하랴 소리를 빽빽 지르고, 나는 뭐라도 해야한다는 마음으로 아무 얘기나 던지겠지. 엄마의 마음과 중1의 마음은 늘 물과 기름. 심호흡을 한다.
여자 아이 셋이 수련원 밖에서 꾸벅 인사를 한다. 복층 통나무 집이다. 개망나니 같은 아이들이겠지. 각오 단단히 했다. 씨름선수가 아닐까 싶은 누님의 둘째 성훈이가 나와서 손을 덥썩 잡는다.
"손 한 번 만져봐도 되예?"
큰 손이 내 손을 감싼다. 따뜻하다. 성자인가? 해탈한 따뜻함이다. 경계를 하는 쪽은, 어른인 나다. 나는 이미 졌다. 경쟁적으로 내 손을 한 번씩 잡는다. 삼성 노트북으로 세계테마기행을 틀어준다. 아이들이 사슴처럼 곁으로 온다. 내가 나온 영상을 보여주며, 나의 이야기를 섞는다. 아이들이니까 캄보디아에서 거미 먹는 걸 보여준다. 아이들이니까 해파리와 수영하는 보르네오 섬을 보여준다. 굉장히 흥미로워하는 아이도 있고, 지쳐서 눕는 아이도 있다. 어머니들도 몰려든다. 어머니들은 모처럼 자유로워져서 카페라도 다녀올 줄 알았다. 여덟 명의 중1. 게다가 동생들도 있다. 그런데 큰 소리 칠 일이 없다. 아이들은 느슨한 상태로 줄곧 자유롭고, 어머니들은 카페처럼 편해 보인다. 성훈이가 중간에 앗, 코딱지 삼켰나 봐. 나머지 아이들은 그런가 보다. 더럽다며 호들갑 떠는 아이들이 없다. 남자, 여자 섞였지만 남자, 여자가 아니라 친구다. 강의가 끝나고는 같이 공을 차러 나간다. 남자도 나가고, 여자도 나간다. 샌프란시스코 조디마지오 공원에서 발야구를 하던 아이들도 그랬다. 여자가 공도 멀리 안 나가고, 수비도 좀 못했다. 못 하는 아이는 아이대로 당당했다. 이기고 지는 게임이, 이겨도 되고, 져도 되는 게임이 됐다. 모든 불안은 지켜보는 내 몫이었다. 나는 언제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나는 정신병자다.내가 어떻게 보일까? 나를 어떻게 볼까? 내내 그 생각 뿐이다. 늙고, 쪼그라든 내 꼴만 생각한다. 나에게만 집중한다. 연예인들의 팽팽한 얼굴이 당연하다. 나는 당연하지 않은 존재, 쪼그라드는 안타까운 오징어. 세상의 시선은 늘 날카롭고, 나는 베이지 않아야 한다. 다가가지 않는 게 이기는 거고, 무심함이 세련됨이다. 약자에게 연민을 느끼지만, 나는 약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잘난 사람들에게 샘낼 필요는 없지만, 내가 더 잘났다. 잘난 구석이 있다. 내 안의 지껄임은 늘 바쁘다. 평가하고, 결론낸다. 내가 사람들을 벤다. 시선으로, 편견으로 벤다. 그러니까, 그 칼날이 내게로 온다. 늘, 아프고, 두렵다.
집에서 가져온 반찬에 부산 명물 다리집 떡볶이, 김밥이 올라온다. 나만 모르는 대세 오징어 '꽃보다 오징어'에 칭다오를 마신다. 호식이 두마리 치킨이 두 세트. 후라이드, 갈릭양념, 간장치킨,양념치킨. 밥을 멀쩡히 먹고, 이걸 또 다 먹는다. 펩시 콜라가 아니어서 아이들은 실망한다. 코카콜라가 되려 찬밥이다. 또 한 번 충격을 받는다. 성훈이가 다리를 내게 건넨다. 중1이 어른에게 치킨의 다리를 양보했다.
"치킨은 손으로 드이소. 한 번 손이 더러워지면, 쭈욱 먹게됩니다. 그게 치킨이지예."
중1 성훈이는 시인이다. 크게 될 아이다. 거동이 불편한 성훈이 외할머니, 숙경 누님의 어머니는 같이 산다. 누님이 24시간 수발을 든다. 성훈이는 할머니도 살뜰히 챙긴다. 성훈이 할머니도 따뜻한 사람일 것이다. 따뜻한 사람이 따뜻한 딸을 낳고, 그 딸이 성훈이를 낳았다. 따뜻하니까, 따뜻하게 늙을 수 있다. 금련산 청소년 수련원은 영화 '웰컴투 동막골'의 동막골이다. 전쟁으로 불바다지만, 불바다를 모른다. 나는 상밑으로 다리를 뻗고, 아사히 맥주를 하나 더 딴다. 꾸이맨, 꿀짱구, 가나 초콜릿이 안주다. 연합고사를 보고, TV가이드, 스크린을 봤던 이야기를 한다. 그때의 꽃미남 가수 김승진, 박혜성이 나오고, 물을 뺀 스노우진 청바지가 나온다. 나의 정신병은 딱히 진척은 없을 것이다. 병이라는 걸 알았다. 큰 진척이다. 아직 멀었다. 멀었다는 걸 알았다. 역시 큰 진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