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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Aug 18. 2020

뭐, 각목이 부러져? 무시무시한 체벌의 기억

 중 2 남자아이가 만신창이가 되었던 하루

 

-민우야, 선생님 수업이 재미없니?

-네, 지루해요.


그 한 마디의 파장은 엄청났어요. 수유중학교 2학년 15반 박민우에게 가혹한 형벌이 기다리고 있었죠.


-지금 떠든 사람 누구야?


수학 선생님은 칠판에 공식을 쓰고 계셨죠. 뒤에 앉은 놈들이 더 크게 떠든 것 같았지만, 정직하기만 한 제가 손을 들었죠. 저와 짝은 복도에서 서 있어야 했죠. 크게 잘못한 건 아니니 조심조심 나가서도 킥킥댔죠. 그걸 또 들켰지 뭡니까? 교무실로 따라오랍니다. 그리고 수학 선생님이 물어요.  


-민우야, 선생님 수업이 재미없니?


그럼 수업이 재밌나요? 그렇다고 수학 시간에 딱히 불만은 없었어요.


-네 지루해요.


충동적이었죠. 선생님이 자존심을 걸고 물었다는 걸 알았다면, 감히 까불지 않았겠죠. 중학교 수학이 크게 안 어렵잖아요. 따로 공부 안 해도 늘 백점이었죠. 그런 놈이 짝다리 짚고(아마 그랬을 거예요. 의도적이진 않았겠지만) 실실 웃으면서 선생님을 능멸했죠.


-엎드려.


선생님은 물걸레로 제 엉덩이를 내리쳐요. 몇 대 안 맞았는데, 또각. 그놈의 몽둥이 힘도 없더군요. 이젠 그만 맞겠지. 웬걸요. 다른 각목으로 사정없이 내리쳐요. 분이 안 풀리시나 봐요. 일으켜 세운 후엔 싸대기와 주먹질이 이어지더군요. 그 시간은 길기도 하고, 짧기도 했어요. 도대체 끝나지 않는 폭행이었어요. 그런데 또 세세하게는 기억이 안 나요. 잘못했다고 빌 수도 없었어요. 숨 쉴 틈 없는 공격이었죠. 이 지경이 될 거라고는 저도, 선생님도 예측하지 못했으니까요. 저도 선생님처럼 잘 생긴 어른이고 싶었어요. 관심받고 싶었던 마음은, 그렇게 엇나가 버린 거죠. 그날의 충격은 평생을 가더군요.


-민우야, 이번에 수학 다 맞았어?


일주일 후쯤 선생님 질문이 기억나요. 저는 선생님을 어떻게 죽일까를 고민했지만


-네


이렇게 답하고는 풀어져 버려요. 선생님을 죽일 능력도 없었고, 나를 증오하는 정도까지는 아니구나. 약간의 안심까지 되더군요. 웃긴 건 선생님이 왜 때렸는지는 그때도 이해가 되더군요. 싸가지 없는 한 학생은 그냥 학생이 아니었어요. 어느 순간 대등해져 버린 거죠. 학생은 늘 약자일까요? 학생 나름이겠죠. 말투나 행동에 의도를 가지고 성인을 괴롭힐 능력이 없을까요? 제가 악랄한 소시오패스까지는 아니었어도, 성인에게 모멸감을 줄 능력 정도는 있었던 거죠. 그래서 폭력은 정당하다? 모르겠어요. 제가 피해자지만, 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안 된다. 그 당연한 말에 늘 동의하며 살지만, 그 상황은 그리 단순하지가 않아요. 교사는 늘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해야죠. 그러면 이상적이지만 결국 사람이니까요. 학생은 늘 고분고분 성실하지 않지만, 교사는 어떤 경우에도 성인군자여야 하죠. 그 일방적인 도덕교과서 같은 시간은 있었던 적도 없죠.


그 하루는 제게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해요. 저는 기고만장했던 아이였어요. 예쁜 선생님이 저만 빵집에 데려가서는 마음껏 고르라고 했던 날도 있었죠. 특별 대우가 당연한 아이였어요. 담임 선생님이 저만 교무실로 데려가서는 월간지나, 참고서를 챙겨 주시기까지 했죠. 하루아침에 무너져 버렸어요. 다른 반 아이들까지 얻어터진 저를 구경 왔으니까요. 담임 선생님이 수학 선생님과 언성을 높인 날이기도 했으니까요. 치욕스럽죠. 치욕의 감정 이후엔 복수심에 이를 갈아요. 멍든 얼굴을 보며 살인자의 삶도 꿈꿔 봐요. 그 이후엔 언제든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소중한 감정을 얻게 돼요. 내 위치는 아무것도 아닌 거였구나. 반갑지는 않아도, 그 감정이 제겐 양분이 됐어요. 터닝포인트였어요. 글을 쓸 수 있는 첫 번째 조건은 바닥의 공포라고 생각해요. 그 근처를 휘저으며 채집한 공포들이 글의 바탕이 되죠. 반은 미쳐서 저를 두들겨 패던 선생님은, 가장 약한 사람이었어요. 감정에 먹혀버린 사람이었죠. 저렇게 약해져서는 안 된다. 쉽지 않은 목표란 걸 알죠. 명상은 그래서 인간에겐 필수품이라고 생각해요. 운동이나 삼시 세끼 이상으로요. 내 감정이 격앙될 때마다 선생님을 떠올려요. 가장 약해진 사람은 절대로 물러서지 않아요. 물러서면 죽는다고 생각하니까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작은 위로가 되고 싶습니다. 통로가 되고 싶습니다. 상처에서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걸, 상처가 이야기가 된다는 걸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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