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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Sep 02. 2020

생일, 밥을 기다리며 이 글을 써요

신기해요. 제가 존재하고, 쓰고, 먹는다는 게요

오늘이 제 생일이에요. 1973년 9월 2일, 미아리 주산부인과에서 태어났죠. 형과 비교하면 쉽게 나왔다고 해요. 흐르는 물에서 감인가 복숭아인가를 건지셨대요. 어머니의 태몽이었죠. 생일은 제겐 숫자 정도였죠. 아무 의미가 없었어요. 어머니는 형의 생일 파티는 몇 번 챙겨 주셨지만, 저는 국물도 없었어요. 서운했냐고요? 아뇨. 셋방살이 집에서 생일 파티라뇨? 가난을 들키느니 차라리 죽고 말죠. 그깟 생일이 뭐라고요. 대신 잘 사는 아이들의 생일 파티에는 꼭 초대되고 싶었어요. 부잣집 아이들은 다 예쁘고, 잘 생기고, 공부도 잘하고, 반장, 부반장도 다 해 먹잖아요. 그런 아이들의 친구이고 싶었어요. 국민하교 3학년 때는 반장 가방을 자청해서 제가 들었어요. 그렇게라도 해야 저랑 놀아주죠. 저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으니까요. 없는 돈으로 사갈 수 있는 선물은 연필이나 공책 정도였죠. 동아 연필 혹은 문화 연필 한 타스. 아니면 공책 열 권, 혹은 다섯 권을 사 갔죠. 내 선물이 가장 초라하면 어쩌나, 선물을 풀 때마다 심장이 콩닥콩닥. 부잣집은 바닥이 굉장히 미끄럽다는 것도 그때 알았죠. 니스를 바른 마룻바닥은 방심하면 머리통이 깨지겠더라니까요. 그리고 방에 침대가 있더군요. 침대가 가당키나 해요?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게 침대 아닌가요? 충격적인 건 잠옷을 따로 입더군요. 잠잘 때 옷이 따로 필요해요? 그냥 입던 옷 벗고 자면 는 거 아니었나요? 식탁과 의자까지 있더군요. 방바닥 놔두고 왜 의자에 앉아서 밥을 먹을까요? 자기 방이 따로 있는 삶은 어떤 걸까요? 온 가족이 단칸방에 살아도 아무 불만 없었거든요. 그 어린 나이에 혼자 자면 귀신이 가만 놔두겠어요? 어머니들은 홈드레스를 입으시고, 머리는 스카프로 질끈 동여맸더군요. 저 복장으로 빨래를 할 수 있나요? 화장실을 제대로 쓸 수 있을까요? 구멍가게에서 늘 먼지떨이를 들고 사는 우리 어머니와는 아예 다른 사람이더군요.


미아리 숭인시장 안에 저택이 하나 있었어요. 그때는 2층 집이면 다 저택이었죠. 세광이었나? 그 아이의 생일에 영광스럽게 초대됐죠. 닭고기를 잘게 찢어서 토마토케첩에 버무린 건데, 듣도 보도 못한 문화 충격이었죠. 닭고기는 백숙 아니면 닭볶음탕, 딱 두 종류만 있는 거 아니었나요? 그 귀한 케첩을 이렇게나 많이 쓴다고요? 뼈는 다 어디 갔나요? 뼈 안의 골을 쪽쪽 빨아먹어야 제대로 먹은 거죠. 설마 그 귀한 닭 뼈를 다 버린 건가요? 그러고 보니 껍질도 다 발라냈네요? 저도 껍질 싫어하지만, 맛있는 살코기를 먹기 위해선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거 아니었나요?


제 생일의 전성기는 대학교 1, 2학년 때였죠. 개강 때가 제 생일이었어요. 개강 파티가 생일 파티가 되어 버리니까, 선물을 어마어마하게 받게 되더군요. 주고 싶지 않아도 어쩌겠어요. 개강파티는 와야죠. 그래서 선물 부자가 되고, 본의 아니게 개강날 주인공까지 되어 버리죠. 술을 얼마나 퍼마셨겠어요? 아침에 등짝 밑에서 화분이 처첨하게 뭉개져 있더군요. 술이 원수죠. 강아지나 고양이를 선물로 안 받은 게 그나마 다행인가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아르헨티나 살타의 생일 파티였어요. 제 생일이 아니라, 현지인 친구 생일이었죠. 대대로 부잣집은 또 다르더군요. 그림방이 따로 있어요. 걸지 못하고 보관하고 있는 그림이 어마어마하게 많더군요. 굉장히 활달하고, 장난기 많은 친구가 와인을 선물로 가져왔죠. 생일 당사자가 그 와인을 들고 아내를 찾아요.


-내가 이 와인은 절대 안 된다고 했지? 이걸 사 온 거야?


아마 그 친구보다 제가 더 상처 받았을 거예요. 지금도 이렇게 생생한 걸 보면요. 누군가가 민망해지거나, 비참해지면 제가 당한 것만큼이나 남더군요. 너무나 절묘하게 망가지는 순간 아닌가요? 그런 밤도 주거니 받거니 결국엔 흥겨워졌지만요.


우리는 모두가 특별하죠. 생일만 특별한가요? 요즘엔 매일이 소중해서, 생일도 그런 이유로 소중해요. 일부러 호텔에 왔다는 거 아닙니까? 제게 주는 작은 선물로, 방콕의 호텔 뷔페에 왔어요. 저는 여전히 이렇게 양껏 먹는 거에 집착해요. 소화력도 저질이면서요. 슬픈 건 기다려야 해요. 반값 할인은 한시 반부터니까요. 점심 꼭 열두 시에 먹을 필요 있나요? 반값에 먹을 수 있다면 세 시에 먹어도 돼요. 호텔 로비에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어요. 사람도 없고 좋네요. 이렇게 방콕에서의 생일이 흘러갑니다. 죽지 않고 살아 있어서 감사한 하루입니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이렇게 생일날 몇 번이나 더 글을 쓸 수 있을까요? 우리의 생은 길지 않아요. 그러니까 감지덕지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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