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를 가고 싶어서 가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요? 저 가고 싶었는데요? 대학 생활 별 거 없더군요. 공강 시간에 노래방 가고, 시청각실에서 영화 보고, 수업 시간에는 과실에서 막걸리 마시고, 노래방 가고, 시청각실에서 영화 보고. 가끔 그랬다는 거죠. 수업 시간에 대부분은 들어가 앉아는 있었어요. 맨 뒤에서 친구랑 오목을 두거나, 엎어져 자기는 했지만요. 나름 재미는 있었지만, 반복이 주는 무료함을 피할 수가 없더군요. 군대에 가고 싶었어요. 이 지겨운 자유가 조금은 제한되기를 바랐죠. 정신력도 체력도 강해질 수 있는 기회죠. 게다가 공기까지 맑을 거 아닙니까? 나라에서 먹여주고, 재워주는 힐링캠프를 차려 주다뇨? 즐거운 마음으로 춘천 102 보충대로 향했죠.
군대를 가고 싶었다고 군인에 대해서 잘 알 필요까지야 있나요? 이등병은 짝대기가 둘, 일병은 짝대기가 하나. 계급은 이등병이 더 높은 거 아니었어요? 에이, 여러분들도 모르셨잖아요. 군대 다녀온 남자들한테나 상식인 거죠. 이런 걸로 제가 개념 없다는 소리까지 들어야 하나요?
훈련소가 있는 양구라는 곳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 곳이었어요. 소양강에서 배를 타고 한참을 가더니 또 트럭 뒷칸으로 옮겨 타고 어찌나 들어가던지요. 아, 북파 공작원으로 차출되는구나. 오만 생각이 다 들더군요. 드디어 신병 교육대로 들어가는데
-좆됐다. 개X끼들아
우리를 언제 봤다고 함부로 말하는 거죠? 같은 사병 아닌가요? 위병소에서 무례하게 욕을 하는 사병을 보면서 언짢더군요. 훈련소가 아니던데요? 포로수용소던데요? 초록색 죄수복에 번호표까지 달려 있는 죄수들이 땅을 파고, 모포를 널더군요. 무슨 죄를 지으면 여기까지 끌려오게 되는 걸까요? 까맣게 반짝이는 피부 아시나요? 제정신 아닌 사람들이나 걸인들에게서 보이는 그런 피부요. 죄수복도 얼굴톤이랑 맞췄더군요. 굴린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정도야 뭐 해야죠. 아무리 철이 없다고, 헬스장 온 거라고 생각했겠어요? 흠뻑 굴리고 나서 옷을 갈아입으라네요. 어? 관물대 위에 조금 전 봤던 그 죄수복이 얌전히 개켜져서 올려 있더군요. 1년에 아니 3년에 한 번 빠는, 아니 아예 안 빠는 거의 걸레더군요. 정말 까맣게 반짝이는 옷이었어요. CS복이라고 부르더군요. 조교는 화가 많은 사람이었어요. 명찰에 바느질로 자기 번호를 10분 안에 새겨 넣으래요. 우리가 인간 재봉틀인가요? 강원도의 12월이잖아요. 손가락이 제대로 움직여야 말이죠. 가만? 이 번호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설마 오전에 봤던 죄수들의 그 번호인 건가요? 바느질을 끝냈더니, 입으래요. 입었죠. 이렇게 더러운 옷도 입어 보는구나. 너무 황당하니까 할로윈 같더라고요. 이런 옷을 언제 또 입어 보겠어요?
-X새끼들아, 다 뒈져 봐아아아
뛰라고 해서 열을 맞춰 뛰었거든요. 세상에. 연병장에 수백 명의 죄수들이 악을 쓰고 있더군요. 우리가 그 사이를 뛰는데 온갖 욕이 다 들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내가, 우리가 저 죄수와 같은 처지라는 건가요? 그때 충격은 웬만한 스릴러 영화 열 편도 못 쫓아와요. 코끼리도 때려잡을 수 있는 신석기인들이 떼로 발광하는 현장이었죠. 미친놈 옆에 미친놈, 미친놈 옆에 더 미친놈, 더 미친놈 옆에 욕 잘하는 미친놈들 뿐이었죠.
화가 많은 조교는 밥 먹을 때도 가만 안 놔두더군요. 인간 순대가 되어서 눈앞의 밥을 꾹꾹 밀어 넣어야 했어요. 급하게 먹으면 체하잖아요. 그러지 말라고 오리걸음으로 걸으래요. 구호도 힘차게 내질러야 했어요. 소리 더 크게 안 지르냐고 한 동기의 식판을 뻥 걷어찼어요. 너무 깜깜한 밤이라서 식판이 안 보이더군요. 엉금엉금 더듬더듬 식판을 찾는 하루가 26개월을 채워야 자유인이 된다. 대학 동기들이 군대 간다고 울고불고 한 이유를 이제야 알겠더군요. 지옥으로 끌려간다는 걸 저만 몰랐던 거죠. 훈련소에 도착한 날이 12월 22일. 크리스마스라고 종교 행사는 보내주더군요. 그때 성당을 다녔으니까, 천주교 종교 행사를 갔죠. 군인들 종교 행사에 가면 다들 자요. 빈자리가 없어서 저는 서 있었어요. 조교들도 서있더군요. 찬송가가 울려 퍼지는데 뜨거운 눈물이 솟구치는 거예요. 흐르는 정도가 아니고요, 꺼이꺼이 통곡 소리가 나오더군요. 참아지지가 않더라고요. 카투사 시험이라도 봐볼 걸. 첫 영장 나왔을 때 괴산 훈련소로 그냥 갈 걸. 학기를 마치고 가겠다고 연기는 왜 했을까요? 연장한 대가가 이거였나요? 지옥이라는 걸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나요? 남자면 다 한 번쯤 거치는 멋과 낭만의 조기 축구회 같은 건 줄 알았다고요. 엉엉.
-X발 새끼야, 안 그쳐. 그만 안 울어?
그 무서운 조교가 옆에서 눈을 부라리는데도 눈물이 안 그쳐지는 걸 어째요? 목청이 탁 터지면서 터진 댐 방류하듯 울어재끼는 거예요. 그 성스럽고, 고요한 미사 시간에요.
-이 X발놈아, 그만 울란 말이야. 엉엉엉.
이를 어쩌나요? 피도 눈물도 없는 조교가 울음을 터뜨려요. 아, 조교도 군생활은 지옥이구나. 훈련병 하나 운다고, 그렇게 쉽게 무너지다뇨? 여기서 훌쩍, 저기서 훌쩍. 잠자는 사람 반, 우는 사람 반. 통곡의 크리스마스를 제가 주도했지 뭡니까? 당장 제대만 시켜주면 신부님 될 마음도 그때는 있었는데 말이죠. 주님이 저를 신부로 쓰실 마음이 있었다면 말이죠. 90년대의 훈련소가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지금이네요. 이 힘든 시기에 위로가 되려고, 그때 수용소 아니 훈련소에서 6주 개고생을 했던 건가 봐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소소한 일상, 작은 기억도 글쓰기의 좋은 씨앗임을 많은 분들에게 보여드리고 싶어요. 유한한 삶은 글로 무한해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