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노화, 다 때려치우고 싶어

죽을 때까지 싸우라

by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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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가 뿌옇고, 각막 쪽이 뻐근하다. 시큰하다고 해야 하나? 거울을 볼 때마다 폭삭 주저앉은 얼굴로 심란한데, 눈까지 침침하다. 왼쪽 어금니 쪽 잇몸이 파였다. 파였는지, 무너졌는지 모른다. 뭘 먹을 때마다 사이로 낀다. 그리고 그 음식이 쑥쑥 파고 들어서는, 잇몸을 파헤친다. 오른쪽으로 씹은 지 꽤 됐다. 왜 치과에 안 갈까? 그러게 말이다. 병원은 죄수를 단죄하는 단두대가 아니다. 단두대 같다. 마지막으로 잇몸약을 산다. 이 잇몸약이 듣지 않으면, 치과에 간다. 임플란트를 하라면 한다. 당장은 통장에 백만 원이지만 방콕 맛집 책이 나오면 인세가 나온다. 편집장에게 40만 원을 가불했다. 40만 원을 뺀 300만 원 정도가 들어온다. 들어올 걸 기대한다. 요즘 초판 2천 부를 안 찍는 경우가 많다. 천 부를 찍는다면 150만 원이다. 이 책은 백만 부가 팔릴 거니까, 한숨은 쉬지 않기로 한다. 당장의 궁지일 뿐이다. 책에 소개된 식당 하나가 또 이사를 했다. 마지막으로 정보를 점검할 때마다 허탈하다. 맛집 책을 다시는 하나 봐라. 다시는 안 한다. 아니면 유명한 식당만으로 채운다. 나만 아는 동네 식당들은, 시한부 꿈틀이처럼 이리 비틀, 저리 비틀. 사라지고, 말라죽는다. 사라진 식당도 정리해 올려주면 어떨까요? 고마운 제안이다. 디자인 작업이 들어가야 한다. 교정을 보고, 최후까지 검토한 대지에 새로운 작업이 또 얹어져야 한다. 가능은 한데, 42,195km 이후의 1km가 된다. 피를 말리는 1km다.


다시 내 상황을 점검. 눈이 침침하고, 잇몸이 헐었고, 방콕 책의 식당 하나가 또 속을 썩인다. 책 제목 정하기도 순탄치가 않다. 댓글 1등은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단골집'이지만, 편집장은 '이토록 황홀한 한 끼'를 원하고, 막판엔 '대충 먹으면 몸살 나는 그대에게'로 쏠리고 있다. 어떤 제목도 특출나지 않다는 걸까? 셋 다 비슷하게 좋아서일까? 백만 부 팔릴 거라고 앵무새처럼 나불대지만, 덥석, 겁이 나고, 빙글, 혼란스럽다.


아, 되는 게 없어!


외통수에 갇혔다. 갇혔다고 생각한다. 일도, 몸도 나만 물어뜯는다. 피라니아의 유일한 먹잇감이 되었다. 물어 뜯긴다. 발버둥 치지만, 가라앉을 뿐이다. 확 죽어 버릴까?


까진 아니지만, 그런 감정과 결은 같다. 품위 있게 맞서기. 일종의 허세다. 발버둥 치는 삶이 지금까지 내내였지만, 진짜다 싶을 땐, 허리를 펴고, 정면을 봐야지. 다, 와라. 와서 물어뜯으렴. 죽음은 누구에게나 오는 공평한 고통. 때를 고르는 건 신의 영역. 진짜 고통은 이런 불평도 허락하지 않는다. 순도 백 프로의 발버둥은, 어쨌든 몰입.


자, 다시


나를 물어뜯는 모든 고통을 하나씩, 하나씩 본다. 오늘은 토요일이고, 점심 약속이 있다. 연락드려야 하는 이들을 질끈 외면 중이고, 멋쩍게 이 과정을 추억할 한 달 후의 나를 잠깐 불러본다. 인쇄가 들어가야 비행기 표를 끊지. 당장 비행기 표값도 없지만, 강의료, 인세 등이 곧 통장으로 들어온다. 코카서스 3국 여행도, 언뜻 위태롭다. 남미 여행도 그랬다. 손바닥 만한 원형 탈모로 죽어가는 서른 살이었다. 마음껏 절망했다. 그때 남미가 내게 왔다. 코카서스도 비슷한 꼴로 온다. 그러니까 나는 품위를 갖춰야 한다. 진저리 치는 엄살은 한 번으로 족하다.


아령을 든다. 어깨를 자극한다. 백, 백여덟, 백스물. 얼굴이 달아오른다. 피가 몰리고, 침침한 눈이 좀 밝아진다. 몸이 나으려면, 고통스러워야 한다. 1 더하기 1은 2. 1 빼기 1은 0. 몸은 산수다. 거저 얻는 건 없다. 품위를 생각한다. 진짜가 왔을 때도, 고개 빳빳이 마주하려면, 이깟 잔챙이들은 우습게 봐야 한다.


백스물하나, 백스물둘.


나는 중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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