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조건 옳아야 한다.
아니, 그 제목이 말이 돼?
어떻게 그걸 밀어붙일 수가 있지? 말이 되냐고? 제목 후보 숫자가 압축되고 있다. 새로운 책이 나올 때마다 겪는 일이다. 내용만 좋으면 되지. 책 제목은 장식일 뿐. 쉽게 가자고 생각한다. 막바지에 다다르면 변심한다. 제목이 전부가 된다. 안 팔리면 다 제목 때문이야. 아니, 편집장 때문이야. 진짜 책이 나오나 보다. 팔을 걷어붙이고 씩씩댄다. 사사로운 감정이 아니잖아. 나, 좋자고 이러는 거야? 좋은 책이 나와야지. 어린 친구들은 제목만 좋아도, 그냥 산다고. 편집장과 나의 의견은 팽팽하다. 공평하게 깝시다. 제목 후보를 브런치, 블로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월드컵 안 부러운 긴장감이다. 댓글이 달릴 때마다 철렁한다. 왜? 왜 철렁하지? 내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제목이다. 그게 좋다는 댓글에 철렁. 진심으로 그게 좋아요? 그 제목이요? 나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 건가요? 그 제목이면 당장 사겠다고요?
내 확신이 무너진다.
이때부터 내 마음은 흥미로워진다. 좋은 책이 나와야지. 모두가 혹 하는 제목이어야지. 바람직함은 사라진다. 내가 옳아야 해. 나만 옳아야 해. 그게 더 중요해진다. 화가 난다. 누구에게? 치욕스럽다. 누구에게? 모르겠다. 내 존재가 그냥 치욕스럽다. 확신을 포기하면 나는 내가 아니다. 송두리째 짓밟히는 것이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옳아야 한다.
유튜브에서 becoming superhuman with iceman 동영상을 봤다. 눈으로 뒤덮인 계곡에서 백인 노인 한 명이 여섯의 젊은 백인들과 입수한다. 물이 얼지 않았으니 영하는 아니다. 거의 영하의 온도다. 녹지 않은 눈으로 온통 하얀 세상이니까. 공포에 사로잡힌 젊은 친구들은 고통의 10분을 견딘다. 눈의 동공이 사방으로 튄다. 실제의 동공은 미세하게 흔들릴 뿐이다. 공포가 극에 달한 동공은 색부터 달라진다. 이제 진짜 죽는구나. 미련이, 혼란이 동시에 존재한다. 그런 눈빛을 터키에서 봤다. 바이람이라는 큰 명절, 가축을 가족의 대표가 잡는다. 나머지 가족이 머리통을 잡고, 발을 잡는다. 대표가 칼로 긋는다. 전문 도축업자가 아니다. 서툴 수밖에 없다. 한 번에 따야 하는데, 여러 번 목을 긋고, 또 긋는다. 소는, 양은 미친 듯이 발길질을 한다. 너덜너덜해진 목울대를 뚫고 마침내 피가 꿀렁. 김이 모락 더운 피가 철철 솟구친다. 공포와 미련으로 점철된 눈동자가 서서히 흐릿해진다. 청춘의 눈이 10초 만에 80 노인의 눈동자로 돌변한다. 한 겨울 물속의 청춘들은 바이람의 소처럼, 양처럼 흔들린다. 잘 버티는 사람도 있다. 저러다 죽겠다 싶은 사람도 있다.
"네, 마음속 공포를 무시해! 네, 마음속 소리를 듣지 마!"
노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가장 겁에 질린 친구에게 하는 소리다. 손가락, 발가락에 감각이 없다. 점점 그 감각이 번지면 심장은 멈춘다. 살아서 집에 가려면 빨리 나와야 한다. 억지는 노인이 부리고 있다. 노인은 생각을 멈추라고 산다. 언제나 냉수로 몸을 씻는 숲 속 괴짜의 협박에 다들 기가 죽는다. 노인의 확신이 조금씩 젊은이들에게 이식된다. 8분, 9분. 마지막 1분은 평생 그 어떤 1분보다 길다. 잔인한 60초가 하나씩 하나씩 채워진다. 57초, 58초, 59초, 60초! 모두가 10분을 버틴다. 얼음물 속에서 10분을 버텨도 죽지 않는구나. 그 10분을 낱낱이 목격한 나는, 유일하게 불신한다. 나와 다른 사람이다. 나는 죽는다. 나는 기절한다. 나는 절대로 저 짓을 해서는 안된다. 내 안의 지껄임은 당부한다. 내 안의 나는, 딱히 진실에 관심 없다. 그저 편하고, 당당했으면 한다. 나는 옳지 않다. 여기가 좋은 시작점이다. 내 안엔 10분간의 얼음물을 이겨낼 슈퍼맨이 있다. 나라고 없을 리 없다. 슈퍼맨은 딱히 끄집어낼 필요도 없다. 언제나 함께다. 부정하기 때문에 출동하지 않는다. 슈퍼맨의 표피를 싸고 있는 내가, 열심히 부정 중이다. 안 된다는 생각, 그 생각이 나를 지킨다고 생각한다. 지기 싫으면, 개망신당하기 싫으면 일단 우겨. 우기고 시작해. 무시무시한 진실에 매몰당하면, 너는 끝장이야. 요 사악한 지껄임을 제거하는 것. 그게 자유로 가는 첫 단계다. 책 제목은 자유의 끝에 있어야 한다. 꼭 나와야 하는 제목이 거기에 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선배, 그 제목은 자유롭습니까? 자유의 끝에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