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석이 최고가 된 이유

돌아보지 말고 달리세요.

by 박민우

아침마다 별 다섯 커피를 내린다. 원두를 갈고, 필터로 거른다. 티스푼으로 세 스푼의 커피를 필터에 올리고, 뜨거운 물을 붓는다. 향이 올라온다. 지금까지 맛있게 먹던 커피들을 이제는 마실 수 없게 됐다. 공간으로서의 카페를 좋아하는데, 너무 맛있는 커피가 나를 가두었다. 집이 좋아지고, 카페가 시들해졌다. 지금까지 좋기만 했던 카페의 커피 향까지 싫어졌다. 전동 커피 그라인더로 커피를 간다. 기분 좋게 갈리는 소리가 끝나면, 그라인더 뚜껑을 연다. 좀 말도 안 되는 향이다. 막연히 커피를 마시고 싶다. 공복의 흔한 욕구다. 가장 이상적인 향을 떠올린다. 그 이상적인 향도 이 정도는 아니다. 그 향조차 사실은 쓰고, 지독한 향이었음을 별 다섯 커피를 통해 깨닫는다. 이 커피를 가져가야 할까? 조지아로 떠나는 나는, 고민이 된다. 진동 커피 그라인더까지 챙기는 건 미친 짓이다. 조지아 트빌리시의 빛 밝은 방에서 나는 이 커피 향을 맡고 싶다. 지구에서 맡을 수 있는 최고의 향이다. 마흔일곱, 지금까지는 못 맡아봤던 향이다. 믿기지 않은 일을 경험하고 싶으면 별 다섯 커피의 원두를 갈면 된다. 너무 큰 충격인데, 그 충격이 부드럽다. 별 다섯 커피로 아침을 시작한 이상, 끊고 살 수는 없다. 아니, 이름도 촌스러운 별 다섯이 블루보틀보다 대단하면 어쩌자는 걸까? 숨은 고수가 세상에 이토록 많다.


이걸 어머니는 또 우리신다. 그러지 말라고 해도, 아까워서 새 거는 못 마시겠단다. 이걸 또 맥심 커피믹스에 섞어 드신다. 오매오매 난, 이 맛에 완전히 빠져부렀다. 육성으로 터져 나온 소리다. 세상 그 어떤 라테에도 없는 맛이다. 어머니는 천재 바리스타.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런닝맨 짤을 봤다. 유재석 씨가 거짓말 탐지기로 실험을 한다. 질문은


유재석이 없으면 런닝맨이 존재할 수 없다.

강호동 VS 유재석. 내가(유재석) 더 낫다.

나는 런닝맨에서 빼고 싶었던 멤버가 있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아내와 결혼하겠다.


이 짤이 유명한 건 마지막 질문 때문이다. 유재석은 아내와 결혼하겠다고 한다. 거짓말이다. 천하의 유재석도 결혼은 힘들구나. 그냥 피식 웃고 넘기면 되는 짤. 유재석 씨는 강호동 씨와의 비교 질문에 단 한 번도 자신이 낫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했다. 표정이 진지하다. 빼고 싶었던 멤버도 진심 없었던 듯하다. 표정만 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런닝맨이 대본 예능인 건 아는데, 유재석 씨는 진짜 그런 사람일 것 같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글을 잘 쓴다고 떠벌린다. 날고 기는 모든 작가들을 무시한다. 그들의 글에 무관심할수록 내가 위대해진다고 생각한다. 기개라고 생각한다. 허세라도 없는 것보다 낫다. 움츠러드는 글로 우울한 세상에 일조할 필요는 없지. 큰 반성 없이, 거만하다. 유재석 씨에게서 겸손함이 탐나지는 않는다. 그에게서 배우고 싶은 자세는, 얼마만큼 왔나? 뒤돌아보지 않는 자세다. 지금까지의 성취, 최고의 예능인. 누구라도 인정하는 현실을 그는 외면한다. 담담하다. 지금까지 달려왔고, 앞으로도 달린다. 달리는 것만 생각하는 남자가 분명하다. 이룬 자들도 이루지 못한 자들과 완벽히 같은 삶을 사는 건 아닐까? 단지 누구는 달리고, 누구는 돌아본다. 달리는 사람은 지금의 치도, 돈도 의미가 없다. 어차피 달려야 한다. 이루지 못한 이들은 결과에 관심이 많다. 얼마큼 왔고, 얼마큼 가야 하는지에 대해 연연한다. 그래서 그 위치에 도달하지 못하고, 혹 그 위치에 도달했다 하더라도, 흔들린다. 광폭하게 돌변한다. 똑같이 라면을 먹고, 양반김에 밥을 싸 먹는다. 한 사람은 그걸 먹고 달린다. 또 한 사람은, 양반김에 밥을 싸 먹는 그 사람을 미화한다. 양반김에 밥을 싸 먹을 리 없다고 생각한다. 굉장한 부와 권력으로 누리는 삶만 생각한다. 그 돈과 권력을 쓰는, 삶의 지극히 일부분일 뿐인 것을, 전부로 여기고 부러워한다.


좋은 교훈이다. 나는 쓴다. 누군가의 달리기처럼, 나는 쓰기를 택했다. 쓰고, 쓰고, 쓴다. 얼마큼 썼는지, 얼마나 좋은 글을 썼는지는 내 알바 아니다. 우리의 모든 순간은 완벽히 같다. 내 안의 지껄임이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귀담아들을 필요 없다. 일단 별 다섯 커피부터 내린다. 유재석 씨도 이 맛을 모를 거야. 내가 사실은, 그 누구보다 이루었다. 이깟 커피가 자부심을 준다. 말도 안 되는 향이다.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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