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모든 아픔도 와라
밤새 식은땀을 흘렸다. 이런 게 치통이구나. 누가 저렇게 인사돌을 사 먹나? 광고를 볼 때마다 의아했다. 음식을 씹을 때마다 힘겨워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낯설었다. 내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누군가에게 일어났다. 그래서 낯설었다. 자, 이제 마흔일곱이 된 내게 그 고통이 찾아왔다. 공포의 밤이었다. 어떻게 해도 고통이 사그라들지 않아서 혀로 아픈 이빨을 꾹 눌렀다. 지혈이라도 하는 것처럼.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았다. 믿고 싶었다. 고통이 100이라면 100분의 1이라도 덜어내야 한다. 그래야 잠이 온다. 새벽 두 시 반. 몸이 차갑다. 방안 공기가 갑자기 차가워질 리 없는데, 차갑게 느껴진다. 체온은 모두 고통과 싸우는 중. 덜덜 떨린다. 사투다. 미련한 새끼. 자연치유를 기대하고 버텼다. 좋아질 땐 완치를 확신했다. 나빠지고, 좋아지고. 희망을 가질 만했다. 의심도 할 만했다. 제대로 씹지 못한 지 거의 6개월이다. 치과 안 가고 6개월이다. 모두 내게 욕을 해주었으면 한다. 당사자가 되면 한없이 멍청해진다. 망설이고, 미룬다. 잇치라는 치약도 썼고, 코코넛 오일로 오일 풀링도 했다. 오일 풀링은 기름으로 입을 헹구는 것이다. 매일 아침 했다. 5년 정도 했고, 쌩쌩한 잇몸으로 날아다녔다. 일주일 정도를 못했다. 여행 중이었다. 그리고 잇몸이 욱신거렸다. 오일풀링이 이렇게 신비로운 거구나. 오일풀링만 다시 시작하면 되겠군. 회복이 안됐다. 잇치로 잇몸을 문지르며 양치했다. 거의 낫는 듯 개운했다. 다시 나빠졌다. 남부 터미널 큰 약국에서 8만 원짜리 잇몸약을 샀다. 흡수 잘 되는 칼슘 약도 권했는데 사양했다. 삼일 먹었다. 그리고 나는 불면의 밤을 보냈다. 아침이 이리 반가울 수가. 어쨌든 세 시 이후로는 잠이 들었다. 오일 풀링은 효과가 있는 것일까? 잇치는 효과가 있는 것일까? 8만 원 잇몸 약은 잇몸을 파괴하는 약일까? 치과는 정말 정답일까? 현대 의학은, 과학은 최선일까? 생각이 많은 것 같지만, 게을러서다. 겁쟁이라서 그렇다. 병원이 무섭다. 병원 의사들은 사형 선고가 취미인 사이코패스 같다. 그래서 안 갈 핑계를 늘 만들었다. 미루고 미룬 죗값을 받고 있다. 더 아파라. 미련한 놈아. 지금 나의 유일한 낙은 고통이 끝나는 순간을 상상하는 것. 이런 몸으로 여행 가서 뭐하나? 다 귀찮고, 철없는 생각이다. 눕고 싶다. 천장을 보면서 입만 뻐끔거리고 싶다.
-작가님 눈팅만 하는 샤이 독자예요. 강원도에서 에어비엔비를 하고 있어요. 내일부터 삼일 방이 비네요. 힐링하고 가세요.
일정을 확인한다. 고기리 별 다섯 카페에 가서 커피 공부를 하는 날이다. 다음날엔 북촌에서 밥 약속이 있다. 금요일엔 모임이 있고, 토요일에는 인천 강연이 있다. 못 간다. 에어비엔비로 강원도의 그 숙소를 검색해 본다. 히노끼 탕이 있다. 나무 냄새를 맡으며, 더운물에 몸을 담글 수 있다. 수두룩 레코드 판이 있고, 작은 선인장이 오종종 환한 방이 있다. 사방으로 터진 창으로 나무들이 힐끗거린다. 식물원 같다. 당장 짐 싸고 싶다. 눈물이 핑 돈다. 다 귀찮다더니, 가고 싶다. 예쁜 방을 보면서 내가 생각났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덜 외롭다. 원고가 인쇄소로 들어가는 날, 비행기 표를 끊는다. 아무리 비싸도 끊는다. 어차피 신한 카드로 긁는다. 강연료가 곧 들어온다. 노트북도 산다. 맥북으로 산다. 200만 원 정도 하는 맥북 프로로 산다. 물론 그 돈은 없다. 나는 벼랑 끝에서 빛난다. 어떻게 하지? 어쩌면 좋지? 나를 키우는 힘이다.
-유경아, 서울 왔니? 전주에서 했던 강연 한 번 더 할까?
유경이가 전주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샹그리아를 담고, 훈제 오리쌈과 케이퍼가 들어간 연어 샐러드를 만드는 금손. 나는 뭐든 해야 한다. 유경이의 화려한 솜씨로 떠들썩한 파티가 될 것이다. 시간이 없다. 4월 19일. 그러니까 내일모레. 그냥 지르고 본다. 미쳤지, 미쳤지. 미친 에너지를 믿어본다.
- 24일 일정 괜찮으신가요? 확실한 건 아니고요. 강연 의뢰입니다. 강연료는 60만 원입니다.
1분 만에 답메일을 보낸다. 보통 때라면 하루는 늦추고, 답을 한다. 다급해진 나는, 아무런 전략이 없다. 다급해하고, 후회하겠다. 아프고, 가난하다. 이제 기적이 답을 할 차례다. 너무 확신하면, 기적이 아니잖아. 위태로울수록, 꼭 온다. 즐거운 모순이다, 즐기겠다. 노트북 가방도 20만 원짜리로 산다. 아니, 너무 나갔다. 13만 원 정도 하는 쌔끈한 걸로. 허리와 어깨가 걸을수록 가벼워지는, 가끔은 날개가 삐져나오는, 그런 백팩으로 바꾼다. 실감이 나기 난다. 조지아야, 아르메니아야, 와라! 나는 조금만 더 아프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