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통, 발치, 취업 - 여행자 박민우의 기적

고기리 별 다섯 커피에 출근도장 찍는 남자

by 박민우

-올리브 홀딩스의 장인수 대표입니다. 브런치 글을 보고 연락드려요.


이메일이 왔다. 응? 연락? 내가 왜? 용무부터 밝히는 게 순서지. 목적이 애매하면 의심부터 간다. 박민우 작가 낯짝 좀 봅시다. 그런 거 아니겠어? 올리브 홀딩스 장인수. 검색을 해본다. 있는 회사다. 있는 회사에, 진짜 대표다. 연락 정도야, 뭐. 절차의 문제였지, 내내 마음 상한 것도 아니고. 그깟 전화 한 통이 뭐 대수라고. 메일에서 살짝 부티가 느껴지긴 했다. 짧지만, 뭔가 좀 경건하달까? 비장함은 또 아니고. 글재주에 깜짝 놀랐소. 원하는 게 뭐요? 내가 원하는 올리브 홀딩스의 용무다. 행운은 늘 늦다. 늦더라도 오면, 삐지지 않고, 받아주겠다. 언제라도 오렴. 허심탄회하게. 눈치 보지 말고. 알겠냐, 행운 새끼야!


- 고기리 제 카페에서 보실래요? 교통이 마땅치 않으니까요. 미금역에서 픽업을 하겠습니다.


고기리? 픽업? 고기리는 용인, 분당 사람들의 피서지다. 고만고만한 계곡이다. 촌스런 음악다방, 불륜의 온상이었다. 20년 전 이야기다. 그때의 고기리만 안다. 거기에서 카페를 한다? 나를 그리로 데려간다? 고기리라면 납치 장소로도 딱히 흠이 없다. 나를 납치해서 어디다 쓰게? 왜? 왜 쓸모가 없어? 내 머리통이 궁금할 수 있지. 매일 나불나불대는 글발이, 어떤 머리통에서 나오는 걸까? 뇌를 끄집어내고 싶을 수도 있지. 스토커일 수도 있어. 입마개와 개목걸이를 채우고 나란히 '나 혼자 산다'를 보고 싶은 거야. 짖지도 않지, 물지도 않지. 털도 안 빠지지. 그냥 개보다 여러모로 낫다. 미금역 8번 출구. 내 앞에 기아 카니발이 섰다. 차 번호를 찍어서 어머니께 보낸다는 애초의 계획은 일단 실패. 두려우면 순발력부터 사라진다. 이 차가 BMW나 제네시스였다면, 짙게 선팅한 차였다면, 훨씬 무서웠을 것이다. 기아 카니발이다. 납세의 의무가 유일한 취미인 모범 아빠가 떠오른다. 차가 카니발이라는 이유로, 묘하게 안심이 됐다.


- 매장은 자리 잡았어요. 홈커피에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장인수 대표는 좋은 커피를 집에서 마시는 세상을 꿈꾼다. 회원제 커피 배달. 그런데, 왜, 나를?


- 커피는 자신 있어요. 우리 커피를 알리고 싶어요. 누구나 집에서 드립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날이 올 거예요. 별 다섯 커피의 열혈 팬클럽을 원해요. 우리를 응원하고, 우리의 커피를 세상에 알리는 열혈 팬클럽이요. 연결고리가 되어 주세요. 소비자들의 마음을 흔들 수 있는 문구들을 만들어 줘요.


장 대표는 글을 읽는다. TV도 잘 안 보는 남자가 브런치는 본다. 인문학적으로 깊은 남자다. 예사로운 글이 아니로군. 단박에 알아보는 재주를 보면 안다. 이 다독가는 내게 일을 맡기고 싶어 한다. 어떤 사람이 자본주의의 승자가 되는가? 천재를 알아보고, 천재를 자기편으로 만드는 사람이다. 빽다방은, 이디야는, 스타벅스는 긴장 좀 해야겠어. 특히, 이디야. 독자 응모에 이 귀한 몸이 친히 응모했었지. 이디야에 얽힌 재미난 에피소드를 보내주세요. 그래서 이디야 카페를 찾는 땀 뻘뻘 자전거 여행기를 보냈어. 뭐, 따로 쓴 건 아니고. 매일 일기를 쓰는데, 일기 내용이 얼추 부합하는 것 같아서 보냈다. 아끼면 똥 되는 건 글도 마찬가지다. 1등을 달라는 것도 아니야. 그냥 입상, 텀블러 하나 정도. 이디야는 텀블러 하나 없이 내 글을 쌩깠다. 천재 작가의 자존심이 뭉개지는 순간이었다. 별 다섯 커피는 이미 안목의 승자. 뒤끝 없는 박민우지만, 이디야는 이겨야겠어. 한국 커피의 지각 변동은 이미 시작됐다. 장인수 대표님, 천재의 몸값은 얼마인가요?


코커서스 3국으로 석 달간 떠나야 한다. 최소 5백만 원이 필요하다. 비행기 값, 노트북, 먹고 자는 거. 최소, 최소 5백만 원이 필요하다. 뿌리까지 썩은 사랑니를 뺐다. 옆 이는 반쯤 썩었다. 썩은 반을 긁어내고 금이나 사기로 채워 넣어야 한다. 48만 원짜리 금니 혹은 사기를 권했다. 신한카드 결제 예정액 50만 원. SK 텔레콤 자유 요금제 6만 5천 원, 교통 카드 4만 7천5백 원. 씨티은행 통장 백십만 원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 하지만 나는 내 여행을 확신한다. 새 노트북 역시 확신한다. 새 노트북은 맥북이어야 한다.


"첫 달은 일이 많을 거예요. 다음 달부터는 여행을 떠나시니까요. 첫 달만 정직원으로 일해 주세요. 연봉 4천8백으로 계산해서요. 4백만 원입니다. 여행 중에는 백만 원. 어때요?"

"여행 중에는 백오십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치통으로 밤새 오들오들 떨었다. 대표도 김이사도 나가고, 혼자 남았다. 그들의 합의가 필요하다. 집에 가고 싶다. 자고 싶다. 이미 난타를 당한 권투 선수가 링 위에서 오들오들 떤다. 경기의 결과가 안 궁금하다. 썩어 문드러진 사랑니가 유일하게 궁금하다. 배팅은 역시 내 체질이 아니야. 그래서 도박 영화가 그렇게 지루하다. 고스톱으로 집을 날린 아버지의 유전자가 나를 비켜갔다. 돈이 더 생긴다고 행복할까? 조금 더 자유롭기는 하겠지. 매일 묵는 방이 조금은 더 환해지고. 그 정도다. 나는 그냥 여행 중 백오십이 통장에 찍혔으면 한다.


"150 좋습니다. 별 다섯 커피의 식구가 되었네요. 오래 봅시다. 끝까지 갑시다."


이루었다. 내 여행은 이루었다. 오늘만 이루었다. 내일은 또, 내일의 변수가 기다린다. 나는 기적을 확신했고, 기적이 일어났다. 기적? 나는 순진하지 않다. 세상 공짜 없다. 돈값은 해야 한다는 몸부림이 기다린다. 국민 모두가 별 다섯 커피를 배달받는 날, 오늘의 일기는 성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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