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 비과학 소설 - 이보다 완벽한 여행은 없다

꿈이라도 꾸자고요. 꿈도 못 꾸나요?

by 박민우
20190731_124208.jpg 사진은 조지아 우쉬굴리 캬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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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규정상 퍼스트 클래스 식사는 제공이 어렵습니다. 비빔밥과 치킨 데리야키 중에 뭘로 하시겠어요?

-어이, 어이. 내 거 줘, 내 거. 나는 아침까지 깨우지 말고.


영화배우 K였다. 면세점에서 산 시슬리 나이트 크림 절반을 얼굴에 처바르고 손가락만 까닥했다. 진짜 기분 더럽네. 누가 퍼스트 클래스에 태워 달라고 했어? 자리가 없다고 양해를 구한 건 너희들이잖아. 멀쩡한 손님 거지로 만들면 재밌어? 배우면 다야? 대종상, 청룡 영화 주연상 한 번 안 타본 사람 있어? 나는 없지. 마음만 먹으면 개나 소나 타는 걸로 지가 톱스타인 줄 아나 봐? 누구 맘대로 줘라 마라야? 연예인 병 말기에는 약도 없다는데, 내 타이레놀이라도 좀 줄까? 나는 너 같은 인간이랑 차원이 다른 부류임을 증명하지. 전채 요리부터, 후식까지 풀코스로 다 먹어 주마. 네가 예뻐서 먹는 거 아니야. 나도 안 먹겠다고 지랄하면 승무원들이 얼마나 비참하겠어? 하아 내 돈 주고, 내 이코노미석에도 못 앉는 더러운 인생. 다리도 좀 오므리고, 폐소 공포증에 시달리다가 드디어 방콕이다. 그 지독한 해방감을 기대했는데, 이게 뭐야? 다리를 감전된 개구리처럼 일자로 펴고 자는 게 무슨 비행기야? 왜 벌써부터 호텔이냐고? 좁아터진 이코노미석 당장 대령하라고오오오오.


내가 와인을 여러 번 마신 건, 신라면까지 탈탈 챙겨 먹은 건 공짜여서가 아니야. 다들 먹는 거에 무심한 게 괘씸해서야. 돈 처들이고 앉아서 금식을 하지를 않나. 깨작깨작 남기지를 않나. 깨워도 꺼지라고 짜증이나 내지를 않나. 우아한 진상들은 퍼스트 클래스에 다 모아 모아 놓았더구먼. 나라도 정성껏 먹어줘야, 승무원들 덜 심심하고, 월급 타는 보람도 느낄 거 아니냐고. 이렇게 전투적으로 먹는다고 누가 알아주기나 하나? 착하고, 책임감밖에 모르는 바보. 신라면이 알덴데로 끓여졌으니 페스토 소스를 종지에 담아달라고 하려다 참는다. 나는 배려심밖에 모르는 바보기도 하니까.


2


-수코타이 호텔을 가는 셔틀버스가 혹시 있나요?


혹시 몰라? 혹시? 영어로는 Maybe. 수코타이 호텔이라고 쓰인 종이를 들고 손님을 마중 나온 사람에게 물어볼 수도 있는 거 이냐? 셔틀버스 있으면 좋은 거고, 없으면 택시 타고 가는 거지. 이래 봬도 방콕 5성급 호텔 수코타이에서 묵는 사람이라고. 1년 내내 모으고, 호사 좀 부리는 게 뭐? 내일이면 게스트 하우스로 옮기는 이 시한부 사치가 내게 얼마나 중요한 의식인 줄 알아? 누가 리무진을 태워 달라고 했어?


-어차피 호텔로 돌아가기는 해야 해요. 차도 호텔 주차장에 반납해야 하고.


신혼부부를 기다리던 리무진 운전기사였는데, 신혼부부가 비행기를 못 탔다는 거야. 부부가 쌍으로 얼마나 술을 퍼마신 거야? 혹시 오전, 오후를 착각한 건가? 새벽 한 시 비행기인데, 오후 한 시 비행기인 줄 아는 멍청이가 1 제곱 킬로미터에 다섯 명씩은 산다더니 그게 사실인가?


-거기 샴페인 좀 드셔 주세요. 우리 집은 술을 아무도 못 마시니까요. 결제는 이미 다 끝난 거니까요. 드세요. 그냥 드시라고요.


이 양반이 보자 보자 하니까, 고작 모엣 상동 가지고 유세는. 돔 페리뇽도 아니고, 모엣 상동으로 내 귀한 입을 헹궈야 하는 거야? 마셔 달라고 하니까, 마셔는 줄게. 다음부터는 말버릇 좀 어떻게 해보라고. 리무진이 너무 길어서 목소리가 커진 거라고 이해는 해줄게.


3


-정말 정말 죄송한데요. 고객님께서 구입하신 마사지 패키지 상품을 오늘 쓰셔야 하나요?


내 마음이지. 사실은 내일 마사지를 받을까 했는데, 그렇게 애처로운 표정을 하면 오늘 쓰고 싶어지잖아. 사람 마음이란 게 다 비슷해. 악마 한두 마리는 입양해서 가슴팍에 품고 살거든.


-호텔 브로셔 작업 중인데 생각보다 마사지실 촬영이 길어져서요. 사실은 마사지받는 모델이 필요한데, 여자 손님들은 노출에 민감하셔서요. 혹시 모델이 잠시 되어 주실 수 있나요? 아, 아닙니다. 당장 거절해 주십시오. 실수했습니다. 모델은 저희가 찾아보겠습니다. 감히 손님에게. 무례했습니다.


뭐야? 모델을 해달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나는 마사지 침대에 엎드려만 있으면 되고, 마사지는 예정대로 다 진행된다 이거지? 등짝과 귓바퀴 노출이 가능하겠냐고? 대신 스위트 룸으로 업그레이드 해준다고? 무료 숙박권 하루치를 얹어서? 그깟 하루 더 여기서 묵는다고, 입이 찢어져라 좋아할 줄 알았어? 돕고 사는 거지. 힘든 세상이니까, 팍팍한 세상이니까. 그러니 인상 좀 펴. 당신 오늘 운 좋은 줄 알아. 나 하나 희생하면 다들 퇴근도 빨라지는 거지? 부탁이 있는데 아침밥 먹을 때, 냅킨 좀 내가 줍게 놔둬. 떨어질 때마다 달려와서 무릎에 올려놓고 가지 말고. 불편해. 민망해. 룸키나 빨리 줘. 배우 K가 오고 있잖아. 물광 피부는 무슨. 저거 다 시슬리로 떡칠한 거라고. 디스패치 기자 숨어 있지 말고 나랑 병나발 합시다. 방귀 뿡뿡 끼고, 잠꼬대로 비행기 창에 머리통 찧는 거 이 귀하신 몸이 다 찍어 놨으니까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가끔은 웃음을, 가끔은 여운을, 가끔은 공감을 드리고 싶습니다. 짧은 일생을 많은 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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