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소설을 읽으면 왜 이렇게 아릿할까요?

남 이야기가 남 이야기가 아니게 되니까요

by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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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고3 때 읽었어요. 어린 왕자 같은 류겠지. 상징과 은유로 채워진 맑고 깨끗한 동화인 줄 알았어요. 고 3만 아니었다면 쳐다도 안 봤을 거예요. 꼭 대학에 들어가야 한다. 딴짓하면 안 된다. 그게 딴짓을 얼마나 맛깔나게 하는지 모르시죠? 짝이 그 책을 왜 빌려 줬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요. 도서관에 반납할 거면, 내가 읽고 줄게. 그러면서 가져왔던 것 같아요. 독서실 내 자리에서 책을 펼쳤죠. 공부만 하겠다는 마음으로 사설 독서실을 끊었지만, 나만의 칸막이 세상은 그렇게 잠이 잘 올 수가 없고, 딴짓이 재미있을 수가 없는 공간이었죠. 그곳에서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 방구시의 이야기가 펼쳐져요. 감정 이입이 절로 되더군요. 입 잘못 놀려서 제제(주인공)가 죽도록 맞는 장면은 남 이야기가 아니었어요. 저는 외삼촌에게 죽도록 맞았어요. 그때 한국과 중국 농구 결승전이었나? 큰 경기가 있었어요. 저는 MBC에서 방영하는 미국 드라마 '하바드 대학의 공부 벌레들'을 봐야 한다고 우겼죠. 왜 그깟 공놀이로, 킹스필드 교수와 하트(주인공)의 위대한 논쟁을 볼 수 없는 거냐고요? 또래 아이들 누구도 관심 없는 '하바드 대학의 공부 벌레들'이 저는 꼭 봐야 하는 드라마였어요. 삼촌에게 뒈지게 맞았죠. 삼촌은 혼신의 힘을 다해 저를 팼고, 저는 악을 내지르며 반항했어요. 제제처럼 저에게도 악마가 살았으니까요. 폭력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안 되는 거 맞는데, 어른이 된 저는 왜 삼촌 편일까요? 조카의 미래를 위해, 교육적인 프로그램에 양보하라는 조카가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요? 형한테는 만만해서, 엄마한테는 형과 싸운다는 이유로, 어른들한테는 말대꾸하는 왕싸가지라는 이유로 동네북이었죠. 무시무시한 가정 폭력의 피해자인 제제는 남이 아니었어요. 제제가 아버지 허리띠로 죽을 때까지 맞는데 어떻게 몰입이 안 될 수가 있겠어요?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어떻게 넘어간 줄 모르겠더군요. 포르투까 아저씨를 만나는 것 역시 제 이야기와 닮았어요. 구멍가게 일로 바쁘신 어머니를 대신해서 저를 유독 챙겨줬던 형이 있었어요. 저를 씻기고, 제 옷을 갈아 입히던.


-걔 엄마가 룸살롱을 했지, 아마. 너를 진짜 예뻐했어야. 참 잘 생겼었는디. 그게 기억이 난다고? 네 살 기억이 난다고잉?


기억이 나다마다요. 동네북을 예뻐해 줬던 단 한 명의 형이었는데요. 소설은 완벽한 제 이야기가 돼서, 슬픈 결말로 치닫죠. 그렇게 아픈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눈물만 나오면 어떻게 해보겠는데, 목에서 꺼이꺼이 괴성이 삐져나오는 거예요. 독서실에서요. 화장실로 뛰어가서 정말 펑펑 울었네요. 지금 젊은 친구들한테는 그 정도로 와 닿을 것 같지는 않아요. 가정 폭력이나 가난이 극단적으로 느껴질 테니까요. 우리에겐 전혀 극단적인 게 아니었어요. 학교나 집이나 폭력이 흔한 시대였으니까요. 최근에 그나마 성장 소설로 화제가 된 건 '완득이' 정도일까요? 그것도 최근은 아니군요.


내 안에 싸움 못 해 안달 난 악마가 사는 '호밀밭의 파수꾼'도, 정채봉 선생님의 '초승달과 밤배'도 저에게 큰 영향력을 미쳐요. 호밀밭의 파수꾼 홀든(주인공)의 시한폭탄 같은 불안감이 불편하고, 안쓰럽고, 이해가 되면서, 이해하기 싫었죠. 정채봉 선생님의 '초승달과 밤배'는 너무 기구하고, 아름다워서 읽는 내내 울기만 했네요. 고통 없는 성장은 불가능하죠. 몸은 자꾸만 커져 가지만 마음은 아무런 대비도 되어 있지 않죠. 미래는 공포스럽기만 하고, 현실은 불만족스럽기만 하고요. 그 어떤 성장 소설에도 자기 자신이 있어요. 그래서 애틋하고, 절절해요. 아, 제가 쓴 '마흔 살의 여덟 살'도 아주 매력적인 성장 소설입니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엄청 재밌어요.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안 읽었다면 '마흔 살의 여덟 살'도 나올 수 없었죠. 이렇게 슬쩍 묻어가 보는 거죠, 뭐. 글쟁이는 자신의 책이 읽히고 싶은 거니까요. 가을이네요. 헛헛한 마음을 쥐고 흔드는 성장 소설 한 권 읽고 싶네요.


PS 오늘 하루는 어떤 하루였나요? 매일 조금씩 죽어가듯이, 매일 조금씩 성장함을 믿습니다.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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