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아이들은 정말 이상해요 - 버르장머리 영재들

가끔은 신비롭기까지 해요

by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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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일요일은 빵을 먹는 날이에요. 제가 정한 즐거운 규칙이죠. 평소에 밀가루 음식을 자제하는 대신 이틀은 좀 봐주는 거죠. 치팅데이라고 하나요? 빵집에서 늘 마주치는 가족이 있어요. 남편이 싱가포르나 홍콩, 말레이시아 사람인가 봐요. 아이들과도 영어로 말하더군요. 남자아이가 네 살, 혹은 다섯 살 정도로 보이고요. 여동생은 세 살 정도나 됐을 거예요. 우리나라에서는 아이들 먹이느라, 뛰어다니는 거 제지하느라 부모는 먹는 걸 반은 포기해야죠. 세 살 아이가 너무도 차분하게 자기 빵을 먹고 있어요. 오빠와 서로 티격태격할 나이인데, 서로에게 거의 무관심해 보이더군요. 태국 아이들은 떼를 쓰는 걸 거의 본 적이 없어요. 일본 아이들도 그렇긴 한데, 태국이 좀 더 놀라워요. 주눅 들어서 경직된 느낌이 아니에요. 그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어요. 자발적으로 다소곳한 아이요? 태국 오시면 실컷 보실 수 있어요.


저희 아파트 청소 도우미 아주머니는 방학 때면 일주일에 4,5일은 여덟 살 아들과 같이 와요. 이 아이는 비상구에 돗자리를 펼쳐 놓고 종일 있어요. 딱히 돌볼 사람이 없는 거죠. 안쓰러워서 사과나 요거트 같은 걸 자주 챙겨 줬어요. 어느 날은 어머니를 도와 청소를 하더군요. 여덟 살 아이가요. 한참 놀 나이인데 주말에 부모님 가게일을 돕거나, 설거지를 하는 아이가 너무너무 많아요. 태국에서도 미성년자 노동은 법으로 금지예요. 돈을 벌 수 없어요. 집안일을 돕는 것까지는 제제하지 않는 모양이더라고요. 우리는 무조건 공부, 공부죠. 여섯 살, 일곱 살 아이가 얼마나 도움이 된다고요?


-부모님이 고생하시는 걸 보면서 뭐라도 하고 싶은 거지. 부잣집 아이들은 또 안 그래. 부모가 고생하는 모습을 볼 수 없으니까.


태국 친구 말대로라며 자발적인 건데요. 제가 생각하는 아이들은 그냥 놔두면 거의 악마거든요. 울고, 떼쓰고, 뺏고, 때리고. 태국에서는 길에서 부모가 아이를 때리거나, 다그치거나, 아이들끼리 싸우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어요. 그렇다고 살인이나 폭력이 아주 없다는 건 아니에요. 빈도수의 문제인 거죠. 십 년 넘게 살면서 아이들이 부모에게 떼쓰는 모습을 한 번도 못 본 건 신기하지 않나요? 신기한 나라에 살고 있는 건 확실해요.


제가 태국 사람이 아니니까, 이유야 정확히 모르죠. 확실한 건 선을 넘지 않는다는 거예요. 자신의 욕망이 물러서야 할 때를 정확히 알아요. 제가 어릴 때 왜 떼를 썼나? 곰곰이 생각해 봐요. 떼를 쓰면 이루어질 것 같아서였죠. 순순히 포기하는 건, 억울한 삶을 택한 거나 다름없으니까요. 나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지 않은 무책임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어요.


성전환 수술을 한 남녀가 우르르 나오는 TV 프로그램이었어요. 남자는 여자가, 여자는 남자가 된 거죠. 서로 사귈 수 있냐고 했더니 절반이 넘게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우리나라라면 달랐을 거예요. 힘들게 수술까지 했는데, 이왕이면 완벽한 남자, 완벽한 여자와 사귀고 싶다. 사귈 수 있냐는 질문에 소수만 끄덕일 것 같지 않나요? 욕망의 선을 어디에 긋는가? 우리는 좀 더 끝에, 태국은 좀 더 중간에 선을 그어요.


장단점이야 있죠. 우리의 끝을 보는 정신이 식민지 시절 항일운동을 주도하고, 촛불 정신으로 계승됐죠. 태국에선 아래로부터의 혁명은 힘들어 보여요. 하지만 한국은 자신이 그르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짓밟는데도 주저함이 없죠. 돌이켜보면 학창 시절 왕따가 없었던 때는 한 번도 없었어요. 저도 공범이죠. 쉬는 시간 종이 쳤는데 질문을 하는 아이, 아무도 안 물어봤는데 자기 자랑만 하는 아이, 말을 잘 못 알아듣는 아이, 지저분한 아이를 조롱하는데 죄의식이 없었어요. 함께 조롱하고, 그 아이가 쩔쩔매는 게 정의라고 느끼기도 했으니까요.


바람직한 곳으로 길을 냈으면 해요. 뜨거운 욕망은, 좋은 에너지이기도 하니까요. 브레이크 없는 광기는 확실한 제제가 있어야죠. 익명의 공간에서 스스로의 정의로, 전가의 보도를 휘두르는 게 맞는 걸까요? 그게 민주주의 정신인가요? 책임은요? 책임질 수 없는 목소리는 정의가 아니지 않나요? 이젠 정말 자기를 모두 드러내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시대여야 하지 않을까요? 태국 아이 칭찬에서, 왜 인터넷 실명제로 결론이 나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글을 쓰지만, 가끔 저란 인간이 신기합니다. 엉뚱합니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세상은 변하지만, 인간은 변화를 감지하기엔 많이 모자랍니다. 글을 쓰면서, 조금이라도 깨달음에 가까워지기를 바랍니다. 변화를 보는 눈을 가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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