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부잣집 아이들의 특징은 뭘까요? 자기 명의로 억대 통장 하나씩은 갖고 있나요? 기사 딸린 차로 통학을 하고, 미국 시민권 정도는 다들 가지고 있나요? 우리 때 부잣집 아이들은 이랬어요.
1. 유치원 안 다니면 있는 집 아님
유치원이 누구나 다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어요. 여유가 있거나, 교육열이 있는 집 아이들만 유치원을 보냈죠. 친구들 유치원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저 같은 사람도 많았어요. 못 가진 게 커 보인다고, 유치원복이 참 예뻐 보이더군요. 제가 그렇게 유치원을 보내 달라고 졸랐대요.
2. 사립 국민학교 정도는 나와줘야죠
그때도 인기 사립학교는 경쟁이 치열했어요. 보통 추첨제였는데, 진짜 있는 집 아이들은 추첨에서 떨어져도, 전학으로라도 다시 사립학교로 옮기더군요. 사립학교도 역시 교복이 있었어요. 제가 사는 미아리에는 지금의 영훈 초등학교(그때는 영훈 국민학교)가 있었죠. 교복을 입은 이이들과 사복을 입은 아이들, 대놓고 빈부의 차가 드러났죠. 삼성 이재용 아들이 영훈 초등학교를 나왔죠. 저 때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어요. 리라 국민학교가 최고였죠.
3. 보이 스카우트, 걸 스카우트는 기본
반에서 극 소수만 보이 스카우트, 걸 스카우트가 될 수 있었어요. 지금도 그 아이들이 뭘 하는 건지는 전혀 모르겠어요. 어마어마하게 부티와 귀티가 나는 유니폼을 입는다는 것, 그리고 학교 운동장에 텐트를 치고 야영이라는 걸 한다는 것. 비교적 잘 생기고, 예쁜 아이들이었다는 것. 저도 너무너무 보이 스카우트가 되고 싶었지만, 어머니가 허락해 주지 않으셨어요. 아무리 졸라도 안 되는 건 안 되더라고요. 학교 운동장에서 텐트 치고 잠을 자는 게 너무 부러워서 눈물이 다 나더라고요. 그게 왜 부러웠을까요? 있어 보였으니까요. 상류층 아이들이 신분제를 다지는 자신들만의 파티로 보였으니까요. 꿈에서라도 한 번 입어 보고 싶었는데, 그 보이스카웃 복을 한 번 못 입어 봤네요.
4. 서민은 부르뎅, 원 아동복, 사는 집은 김민제 아동복
어머니가 사주신 부르뎅 아동복 바지를 참 좋아했어요. 김민제 아동복은 사실 커서 알았어요. 서민 동네여서, 개구리 마크 김민제 아동복을 볼 기회가 없었으니까요. 남대문 시장에서 시작한 부르뎅, 원 아동복, 포키가 지금도 있다면서요? 국민학교 입학식 한쪽 가슴팍엔 손수건이 기본 착장이었죠. 지금 생각하니 좀 뜬금없네요. 옷핀으로 이름표와 손수건을 고정하고 누런 콧물을 수시로 닦을 수 있도록 했죠. 옷소매가 반짝반짝 콧물 코팅으로 그렇게 더러울 수가 없었으니까요. 사립학교 다니는 애들은 콧물도 안 흘리더라고요. 맞죠? 콧물 빨아먹은 기억 없으시죠?
5. 도깨비 시장에서 빠다, 델몬트 후루츠 칵테일은 쟁여 놔야 방귀 좀 뀌는 집
남대문 지하 수입 상가를 도깨비 시장이라고 불렀어요. 빠다(버터), 치즈, 땅콩잼, 델몬트 후르츠 칵테일에 일본 코끼리 밥솥을 사려면 도깨비 시장을 가야 했죠. 수입 자유화가 있기 전에는 이런 물건들이 불법이었어요. 미군부대에서 빼돌린 것들, 개인이 조금씩 사 온 물건들이 은밀하게 거래됐죠. 단속반이 들이닥치면 빛의 속도로 물건을 숨겨야 했어요. 그래서 도깨비 시장이라 불렸죠. 뜨거운 밥에 미제 치즈, 생달걀에 일본 간장 기꼬만으로 비비면 그게 바로 좀 사는 집의 비빔밥이었어요.
6. 2층 양옥집에 니스로 칠한 마룻바닥
잘 사는 집은 복층이 많았고, 거실에 피아노가 꼭 있었어요.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나 어울릴 법한 전화기가 번쩍번쩍 자태를 뽐냈죠. 어머니들은 발목까지 내려오는 홈드레스를 입어줘야 했고, 마룻바닥은 니스를 칠해놔서 맨질맨질했죠. 안방은 무조건 나전칠기 장롱이었어요. 학이 우아하게 날아다니는 장롱은 서민들 집에도 웬만하면 있기는 했는데, 크기와, 새겨진 학의 기품이 확실히 달랐어요.
7. 대학생 삼촌이 입주 과외를?
재워주고, 먹여 주는 입주 과외를 하는 대학생 형, 누나들이 있었어요. 아무나 그런 사람을 거둘 수 있나요? 잘 사는 집은 명문대 생 형, 누나를 24시간 개인 교사로 두고 아이들 공부를 관리했죠. 그때 대학생은 엄청 귀했어요. 대학생이기만 하면 왕자님, 공주님이었죠. 그런 대학생을 고용할 정도면, 확실히 잘 살아야 했어요. 부럽지는 않았어요. 집에서도 공부만 전담해서 괴롭히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는 거였으니까요.
돌이켜 보면 참 별거 아닌 것들이 대단했어요. 포니 자동차, 레코드 판을 돌릴 수 있는 전축, 커다란 괘종시계, 뱀이나 인삼이 들어간 술 항아리들. 지금의 가치도 마찬가지겠죠? 그게 뭐라고? 시간이 지나면 하찮아지는 것들이 대부분 아닐까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어떤 날은 쓰고 싶어서 쓰고, 어떤 날은 쓰기 싫어도 쓰고, 어떤 날은 여기까지 왔는데 어떻게 안 써? 순례자의 마음으로 씁니다. 어찌 됐건 씁니다. 쓰고 나면 기분이 좋아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