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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Oct 03. 2020

태국은 항공사가 망했는데 도넛을 판다고요?

태국 사람들이 보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요?

태국 최고 항공사 타이 항공이 법정관리에 들어갔어요. 네, 망했다고요. 법정관리니까 완전히 망한 건 아니죠. 채권자, 주주가 합의 본 법정관리인이 호흡기로 연명하는 타이 항공을 어떻게든 정상화시켜야죠. 누구 아이디어일까요? 본사 앞에서 가스통 내놓고 튀김 도넛을 팔아요. '빠통꼬'라고 해서 태국 사람들이 두유랑 아침 식사로 즐겨 먹는 메뉴죠. 돈이 되는 거라면 뭐든 해야 맞지만, 그게 튀김 도넛이라고요? 한 세트에 2천 원 짜리 팔아서 항공사가 재기할 수 있어요? 대한항공 임원진 회의에서, 국물 떡볶이를 팔아 회사를 살려 봅시다. 누군가가 이렇게 말한다면 재떨이부터 날아오지 않을까요? 


지금 TV에선 50대 중반의 전 미스 태국이 서른 살 어린 남자 친구와 나왔어요. 남자 출연자 한 명을 여러 여자 출연자 중 한 명과 맺어 주는 프로그램인데, 거기에 남자 친구를 내보낸 거예요. 애인 있는 남자가 나오면 안 되죠. 여자 출연자들을 속인 거죠. 남자 친구가 여자들에게 얼마나 인기가 좋나 확인하고 싶었대요. 잘 생기고, 어린 남자 친구를 자랑하고 싶었나 봐요. 


태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살인 사건 용의자는 이제 가수로 이름을 날리고 있어요. 사건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섯 살 여자 아이가 산등성이 돌 위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돼요. 강력한 용의자인 이모부는 결백을 주장하고요. 이모부는 당당하고, 차분해요. 심지어 잘 생겼어요(젊을 때 잘생겼었다가 팩트입니다만). 태국 사람들은 인터뷰를 보면서 이모부를 믿게 돼요. 누명을 쓴 거라고 확신하죠. 전국에서 온갖 구호품이 쏟아져요. 전기도 안 들어오는 깡촌에서 가난하게 살고 있었거든요. 누군가는 집까지 지어줘요. 태국에서 올해 가장 히트 친 노래 가수가 이 남자와 뮤직 비디오를 찍고 싶대요. 이미 유튜브 조회수는 천만 뷰를 돌파했어요. 매일 전국을 돌며 순회공연 중이죠. 가끔은 패션모델로 무대 위에 서기도 해요. 삼촌이 살인자일 가능성은 없어 보여요. 아이를 죽였다면, 굳이 발견될 수 있는 곳에 시신을 방치하는 바보는 없을 테니까요. 그러면 아이가 스스로 올라가서 죽었을까요? 가장 설득력 있는 추론은 사고로 죽은 아이를, 살인자, 혹은 목격자가 발견되기 쉬운 곳에 놔두고 도주했다. 그게 가장 설득력이 있지 싶어요. 머리카락이 하나 발견되긴 했는데, 친가 쪽 여성 거라고 해요. 엄마나 이모, 외가 쪽 친척 거라는 거죠. 머리카락 하나로 범인을 단정할 수는 없고요. 성적 추행 흔적은 없대요. 


https://www.youtube.com/watch?v=Bw4a2cuIaTU

( 용의자 이모부가 메인인 뮤직 비디오. 3:37초에 등장하는 오른쪽 남자는 무려 이 사건을 취재하던 TV 리포터입니다)


항공사 본사에서 도넛을 팔고, 엄연히 데이트 프로그램인데 애인 있는 남자를 등장시켜서 남자 친구 자랑을 하고, 아이가 죽었는데 용의자가 톱스타가 돼요. 제가 보는 세상과 태국 사람이 보는 세상은 이렇게나 달라요. 불행이 닥쳐도, 그걸 바라보는 관점이 하늘과 땅 차이겠죠. 세상이 우습나요? 태국 사람들은 세상 일을 너무 만만하게 봐요. 진지해져야 할 때조차, 너무나 해맑아요. 혹시 동화나 만화 속에서 살고 있는 건가요? TV 뉴스에서 친구가 살해됐는데, 마침 생일이라고 케이크를 사 와서는 장례식장에서 생일 축가를 부르더군요. 엄마를 잃은 딸과 함께요. 내가 지금까지 배워온 지식은 뭔가? 분별력은 뭔가? 삶과 죽은은 또 뭔가? 내 사고의 근간이 뿌리째 흔들리고, 뽑히는 경험이죠. 나의 관점이 전부는 아니다. '일반적'이라는 말 자체도, 세상에 없는 거짓이다. 태국에 머물면서 '무한한 다름'을 배워요. 저에겐 큰 공부라고 생각해요. 여행이 주는 가치가 이런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내가 어떤 글을 쓸지 몰랐어요. 오늘은 나도 내일의 내가 어떤 글을 쓸지 몰라요. 매일 새로 태어나서 글을 쓰고, 잠이 들면서 하루의 나는 죽어요. 그렇게 매일 새로 태어나서, 새롭게 글을 씁니다. 매일매일 생일처럼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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